이슈[특집] 돼지를 만나다

2019-01-01

국내의 한 동물복지농장. 하지만 전체 돼지사육 농가 중 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농가는 0.2퍼센트에 불과하다 ⓒ동물권행동 카라

돼지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삼겹살? 고기 말고 진짜 돼지를 떠올려 보라는 뜻이다. 대부분 얼굴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둥글고 분홍색에 콧구멍이 다 보이는 코를 떠올릴 것이다. 이 코는 그냥 코가 아니다. 개코보다 더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코다. 2012년 건국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개는 후각을 담당하는 유전자 수가 1100개지만 돼지는 1300개가 넘는다. 후각만이 아니다. 코끼리만큼은 아닐지라도 돼지에게 코는 손이다. 돼지 코끝은 연골판이 있다. 덕분에 튼튼하다. 땅속을 헤집으면서 지렁이나 식물 뿌리 등을 찾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코를 손처럼 쓸 수 있다. 그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 지역에서는 돼지를 훈련시켜 씨앗을 뿌리는 파종방법이 성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 화전을 일굴 때는 땅속에 남은 식물 뿌리를 캐내는 데 돼지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슬람이 돼지고기를 금지한 이유?

돼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땀샘이 없다는 것이다. 땀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체온 조절이다. 사람은 전신에 약 250만 개의 땀샘이 있어 더울 때 땀을 배출해 체내 온도를 조절해준다. 땀샘이 없는 돼지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통풍이 잘되고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충분한 물을 먹고 피부를 항상 습하게 유지해야 한다. 진흙으로 체온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만약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기 배설물을 묻혀서라도 체온을 조절해야 살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 1위는 돼지고기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가 돼지의 이러한 생태적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610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23년간 알라에게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 꾸란에는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분해놨는데 돼지고기는 후자다. 마빈 해리스와 칼튼 쿤 등의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종교적 교리 또한 중동지역의 환경 변화와 유목민족의 생활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이 시작된 지역은 대부분이 사막과 같은 건조지역이다. 건조와 햇볕에 약하고 물을 좋아하는 돼지가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가축으로도 매력이 없다. 초원과 물을 찾아 넓은 사막을 떠도는 유목생활에 돼지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낙타나 염소, 양처럼 사람들이 먹지 않는 풀, 건초 등을 먹고도 짐을 실어 나르고 귀한 우유도 주며 그들의 털과 가죽으로 추위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아니다. 돼지는 잡식이라 사람이 먹는 것을 먹는데다 기껏 힘들게 키워도 얻을 수 있는 건 고기뿐이었다. 더군다나 그 고기를 보관하기도 여의치 않다. 때문에 그깟 고기 한 점 먹겠다고 돼지를 키우는 일은 어리석인 일인 것이다. 

사실 중동지역이 처음부터 돼지에게 적합하지 않은 곳은 아니었다.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1만5천 년부터 지구의 기온이 오르고 강우량이 증가해 중동지역에 숲이 확산되었으며 인류가 한 곳에 오래 머물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숲에서 나는 도토리는 당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이었을 정도로 숲은 참나무가 울창했다. 그러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농경사회를 이루게 되었으며 도시까지 형성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때만 해도 숲에 돼지가 살고 있었고 돼지를 사육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점점 인구가 늘고 관개시설 증가로 물 사용량이 많아지고 또 벌목 등으로 숲이 훼손되었고 결국 기원전 2200년경 찾아온 가뭄으로 숲은 황량한 사막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서식지를 잃은 돼지는 먹을 것을 찾아 민가까지 내려왔고 인간의 곡식까지 탐을 냈을 것이다. 그때 생긴 돼지의 부정적인 인식은 열악해진 환경 속에서 점점 더 심화됐을 것이고 훗날 무함마드가 ‘돼지고기 식용 금지’를 선언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금지의 법이 생긴 배경에 생태적 제약이 존재했던 것이다.

 

신성한 존재에서 해로운 동물로

우리 민족도 돼지와 오래 전부터 함께 했다. 부여의 건국신화에는 돼지가 등장한다. 왕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계집종이 왕의 아이를 낳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비는 아이를 돼지우리에 던져두었다. 죽으라고 우리에 넣었건만 돼지가 불어넣은 입김을 받고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 아이가 훗날 부여를 세운 동명왕이다. 이 설화를 보면 당시에도 돼지를 사육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의 돼지는 고기를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물용이었다. 삼국시대부터 후삼국시대를 담은 삼국사기에는 돼지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로 신성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돼지는 부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존재였으며 돼지꿈을 꾸면 좋다고 여기는 문화적 전통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돼지의 위상은 전혀 달라지게 됐다. 조선시대 홍석모(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틀까지 십이지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들의 날로 정하고 그날 특별히 행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정월 첫 번째로 맞는 돼지날(상해일)이 되면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나이가 젊고 지위가 낮은 내관들이 횃불을 들고 땅 위로 이리저리 내저으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하며 돌아다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쥐만큼이나 돼지를 곡식을 축내고 농사를 망치는 해로운 동물로 여겼던 것이다. 

신성시했던 동물에서 갑자기 곡식이나 탐내는 동물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진 교수의 『조선의 생태환경사』에 따르면 조선은 건국 초부터 봉산을 제외한 숲을 민간에게 개방했다. 이곳에서 땔감을 구하고 또 숲에 불을 질러 새로운 경작지로 개간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그 면적이 얼마나 방대한지 정약용은 경세유표에 “조선의 화전 면적이 평전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기록할 정도다. 그 과정에서 서식지를 잃은 멧돼지와의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힘들게 산을 개간해 밭으로 일궈 농사를 지은 농민들 입장에선 농작물을 파헤치는 멧돼지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그렇다고 붙잡아 기르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생김새가 이목을 끌지도 않고 돼지에게 먹을 것을 나눠줄 정도로 삶이 넉넉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돼지는 소와 달리 농사일을 돕지 못했다. 게다가 그때의 돼지는 지금처럼 고기를 넉넉하게 주지도 않았다. 1927년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성적요람에 따르면 “조선 재래돼지는 체질이 강건하고 번식력이 강하지만 체격은 왜소하고 성숙이 늦고 비만성이 결핍되었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해 외래종을 수입해 개량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비육돈이라고 하는 돼지의 조상이다.  

 

공장식 축산 농장의 돼지

1970년대만 해도 돼지는 그리 인기가 없었다. 소보다 수가 적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가축 돼지는 소를 넘어서더니 2017년 현재 1127만 마리를 넘었다. 소(302만 마리)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단순히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으로 봤을 때 돼지만큼 효과적인 가축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돼지는 소에 비해 임신기간도 짧고 새끼도 한 번에 8~12마리를 낳는다. 또 돼지를 1킬로그램 찌우는 데는 4.4킬로그램 정도의 사료가 필요하지만 소는 7.5킬로그램 정도의 사료가 필요하다.  

국내 돼지사육 농가 10곳 중 9곳이 공장식 축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황금돼지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동물권행동 카라

돼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 것은 돼지고기 소비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24.5킬로그램을 소비했다. 쇠고기 (11.3킬로그램)보다 두 배 더 먹었고 심지어 치느님이라 불리는 닭(13.3킬로그램)도 무난히 따돌렸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먹는 돼지고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1100만 마리가 넘는 돼지들이 대한민국에서 사육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단 돼지를 키우는 농가가 줄었다. 1970년대 전국에 돼지를 키우는 농장은 88만 호였는데 2017년 6000호로 줄었다. 돼지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농가 수는 거꾸로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농장이 대형화되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철저히 가려져버렸다. 한 농가에서 수많은 돼지를 관리하기 위해선 효율성과 경제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즉 공장식 축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장’이 수식하는 의미처럼 이곳에서 돼지는 하나의 공산품으로 취급된다. 상품인 고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 돼 있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세운 그곳에서 돼지는 그저 먹고 살찌우는 존재로 전락한다. 스툴과 좁은 면적 등은 그런 이유로 정당화된다. 도살되기까지 6개월 길지 않은 시간에도 돼지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낸다.

동물복지 평가를 위한 돼지의 특정 행동 선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관행농장의 돼지들이 동물복지형 농장의 돼지에 비해 이상행동이 많이 나타났다. 관행농장 돼지들은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잘 눕지 못하고 스톨의 바를 무는 등 이상 반복행동이 많이 관찰된 것이다.  

농장 밖 야생에서 사는 돼지는 그나마 습성대로 살 수 있지만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의 2017년 야생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멧돼지의 서식밀도는 100ha당 5.6 마리다. 축구장(7140제곱미터 기준) 140개에 해당하는 면적에 멧돼지 5~6마리가 서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개체수가 늘었다며 사냥을 합법화했다. 지난해 2만4554마리에 이어 올해도 3만8736마리에 수렵허가가 났다. 농작물과 밭을 망치는 유해동물이기 때문이다. 


황금돼지해를 맞아

2019년이 ‘황금돼지해’라며 세밑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우리는 돼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돼지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 죽어서야 그 가치와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올해는 살아있는 돼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길, 그들의 짧은 삶을 최소한 덜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황금돼지해이지 않나.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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