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째 시리아 내전이 진행중인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반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반전 시위 ⓒAlisdare Hickson
2월 20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웬 여자아이의 몸이 보인다. 생매장 직전에 있던 소녀의 이름은 ‘아야(Aya)’. 구조대원은 정신을 잃은 ‘아야’를 꺼내 들쳐 엎고 병원으로 뛴다. 다행히도 생명엔 지장이 없단다.
시리아 정부군은 휴전 논의 중에도 반정부군에 대한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아야와 같은 민간인 피해는 복잡한 양상으로 치달은 시리아 내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6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
시리아는 6년째 내전 중이다. 2011년 발발한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의 싸움은 정부군의 과잉진압 속에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곧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확대됐다. 1800만 국민의 삶과 평화가 산산조각 난 시리아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난민이 되거나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전쟁 속의 주민으로 남아야 했다.
지난 12월 30일 0시부터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시리아 전역에서의 전면적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은 2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화협상 재개를 앞두고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장악 지역에 폭격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31만 명. 정부군과 반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상을 마다 않고 폭력을 동원해 온 결과다.
시리아에서는 1963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트당을 기반으로 40년 넘게 부자세습의 독재정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리아의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아들이다. 1970년 정권을 탈취한 하페즈 알아사드는 2000년 사망할 때까지 시리아를 통치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다른 종파의 이슬람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수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으며 아들을 대통령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헌법을 수정하기도 했다.
독재 타파를 원하는 시리아 시민들은 2011년 3월 15일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바트당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역 치안 부대의 과잉진압에도 시위는 시리아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시위대를 향한 발포도 잇따랐다. 2011년 4월에는 시리아 육군이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대를 막는 데 투입됐다. 바샤르 알아사드가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유혈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달 뒤 시위는 무장폭동으로 변했다. 반군은 탈영군인과 민간인 자원군으로 구성됐다. 시리아의 모든 곳에서, 일괄 지휘를 받지 않는 비대칭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군중은 반정부 시위자를 살해한 자에 대한 재판 실시, 정치범 석방, 오랜 독재의 수단이 되어온 시리아 비상사태법 철폐, 부패 종식 등을 외쳤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는 이를 억제하기 위한 검문소가 설치되고 병사가 배치됐다.
유혈이 낭자한 시리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심각한 국제이슈로 대두됐다. 2012년 6월 유엔은 시리아 사태가 전면 내전 상황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3만 명 정치범으로 희생

정부군의 총기 난사 공격을 받은 시리아 알레포 ⓒFreedom House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뿐만 아니라 여러 층위의 전선이 복잡다기하게 형성되어 있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민주화를 둘러싼 대정부 갈등 너머에는 시리아 내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등 이슬람교 시아파 집권 세력과 다수 종파인 이슬람교 수니파 간 분쟁이 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연맹을 통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는 반면,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의 미국은 반군을,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도왔다.
갈등은 범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슬람 과격단체 ‘히즈브 우트타흐리르’가 반정부 시위를 확산시킨다든지, 아사드 가문의 자금을 받은 3000명 이상의 폭력조직 ‘샤비하’가 개입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증폭되어 왔다. 2013년에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라크에서 등장한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내전 중 시리아 동부를 점령하며 반군과 묘하게 결합하는 등 복잡해졌다.
주변국인 터키와의 외교도 얽혔다. 시리아 내전이 주변국의 대리전 성격으로 확대되어 무기지원을 받는 등 갈등을 해소하기 어려워진데다 이 갈등을 이용하려는 또 다른 세력이 대두된 것이다.
휴전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시리아는 이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폭력의 일상화 속에서 민간인 희생과 더불어 인권탄압은 심각한 수준이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최근 시리아의 세이드나야(Saydnaya) 감옥에서 이뤄진 집단처형 등 사법 위에 존재하는 시리아 정부의 문제적 행적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이 된 소녀와 엄마 ⓒemon halim
보고서에는 2011년부터 2015년 시리아 내전 기간 중 매주 1회, 많게는 주 2회에 걸쳐 약 5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밤중 감옥에서 끌려나와 목이 매달리는 등 처형된 사실이 담겼다. 이들에겐 아무 예고도 없이 처형 직전 1~2분 만에 뚝딱 해치우는 식의 군 약식 재판이 있었는데 차마 재판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방법이다. 요컨대 5년간 1만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민간인임에도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형소에서 비밀리에 처형된 것이다.
이 조사는 이전 정부 관료, 판사, 억류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물과 음식 공급, 긴급 의료 등 인도적 조치가 없었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시리아 수형소에서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의도적 고문이 횡행했다. 이 때문에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인간 도살장과 다를 바 없는 시리아의 인권 침해를 국제사회가 즉시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보다 앞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1만7000명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래 악조건과 고문의 결과로 옥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번에 밝혀진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추가 처형자 1만3000명을 포함하면 민간인 3만 명이 정치범으로 희생된 것이다.
시리아의 봄을 기대하며
시리아 내전의 격화 속에 7만8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시리아 민방위대 ‘하얀 헬멧’이 주목 받고 있다. 3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하얀 헬멧’은 2013년 활동을 시작해 내전통에 많은 목숨을 구했다. 하얀 헬멧은 지난해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이들의 활동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시리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큰 민간인 희생을 낳기 전에 최근 이야기 되고 있는 휴전 논의가 부디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글 | 김현지 환경운동연합 회원
6년째 시리아 내전이 진행중인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반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반전 시위 ⓒAlisdare Hickson
2월 20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웬 여자아이의 몸이 보인다. 생매장 직전에 있던 소녀의 이름은 ‘아야(Aya)’. 구조대원은 정신을 잃은 ‘아야’를 꺼내 들쳐 엎고 병원으로 뛴다. 다행히도 생명엔 지장이 없단다.
시리아 정부군은 휴전 논의 중에도 반정부군에 대한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아야와 같은 민간인 피해는 복잡한 양상으로 치달은 시리아 내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6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
시리아는 6년째 내전 중이다. 2011년 발발한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의 싸움은 정부군의 과잉진압 속에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곧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확대됐다. 1800만 국민의 삶과 평화가 산산조각 난 시리아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난민이 되거나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전쟁 속의 주민으로 남아야 했다.
지난 12월 30일 0시부터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시리아 전역에서의 전면적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은 2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화협상 재개를 앞두고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장악 지역에 폭격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31만 명. 정부군과 반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상을 마다 않고 폭력을 동원해 온 결과다.
시리아에서는 1963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트당을 기반으로 40년 넘게 부자세습의 독재정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리아의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아들이다. 1970년 정권을 탈취한 하페즈 알아사드는 2000년 사망할 때까지 시리아를 통치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다른 종파의 이슬람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수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으며 아들을 대통령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헌법을 수정하기도 했다.
독재 타파를 원하는 시리아 시민들은 2011년 3월 15일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바트당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역 치안 부대의 과잉진압에도 시위는 시리아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시위대를 향한 발포도 잇따랐다. 2011년 4월에는 시리아 육군이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대를 막는 데 투입됐다. 바샤르 알아사드가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유혈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달 뒤 시위는 무장폭동으로 변했다. 반군은 탈영군인과 민간인 자원군으로 구성됐다. 시리아의 모든 곳에서, 일괄 지휘를 받지 않는 비대칭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군중은 반정부 시위자를 살해한 자에 대한 재판 실시, 정치범 석방, 오랜 독재의 수단이 되어온 시리아 비상사태법 철폐, 부패 종식 등을 외쳤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는 이를 억제하기 위한 검문소가 설치되고 병사가 배치됐다.
유혈이 낭자한 시리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심각한 국제이슈로 대두됐다. 2012년 6월 유엔은 시리아 사태가 전면 내전 상황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3만 명 정치범으로 희생
정부군의 총기 난사 공격을 받은 시리아 알레포 ⓒFreedom House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뿐만 아니라 여러 층위의 전선이 복잡다기하게 형성되어 있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민주화를 둘러싼 대정부 갈등 너머에는 시리아 내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등 이슬람교 시아파 집권 세력과 다수 종파인 이슬람교 수니파 간 분쟁이 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연맹을 통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는 반면,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의 미국은 반군을,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도왔다.
갈등은 범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슬람 과격단체 ‘히즈브 우트타흐리르’가 반정부 시위를 확산시킨다든지, 아사드 가문의 자금을 받은 3000명 이상의 폭력조직 ‘샤비하’가 개입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증폭되어 왔다. 2013년에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라크에서 등장한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내전 중 시리아 동부를 점령하며 반군과 묘하게 결합하는 등 복잡해졌다.
주변국인 터키와의 외교도 얽혔다. 시리아 내전이 주변국의 대리전 성격으로 확대되어 무기지원을 받는 등 갈등을 해소하기 어려워진데다 이 갈등을 이용하려는 또 다른 세력이 대두된 것이다.
휴전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시리아는 이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폭력의 일상화 속에서 민간인 희생과 더불어 인권탄압은 심각한 수준이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최근 시리아의 세이드나야(Saydnaya) 감옥에서 이뤄진 집단처형 등 사법 위에 존재하는 시리아 정부의 문제적 행적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이 된 소녀와 엄마 ⓒemon halim
보고서에는 2011년부터 2015년 시리아 내전 기간 중 매주 1회, 많게는 주 2회에 걸쳐 약 5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밤중 감옥에서 끌려나와 목이 매달리는 등 처형된 사실이 담겼다. 이들에겐 아무 예고도 없이 처형 직전 1~2분 만에 뚝딱 해치우는 식의 군 약식 재판이 있었는데 차마 재판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방법이다. 요컨대 5년간 1만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민간인임에도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형소에서 비밀리에 처형된 것이다.
이 조사는 이전 정부 관료, 판사, 억류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물과 음식 공급, 긴급 의료 등 인도적 조치가 없었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시리아 수형소에서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의도적 고문이 횡행했다. 이 때문에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인간 도살장과 다를 바 없는 시리아의 인권 침해를 국제사회가 즉시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보다 앞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1만7000명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래 악조건과 고문의 결과로 옥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번에 밝혀진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추가 처형자 1만3000명을 포함하면 민간인 3만 명이 정치범으로 희생된 것이다.
시리아의 봄을 기대하며
시리아 내전의 격화 속에 7만8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시리아 민방위대 ‘하얀 헬멧’이 주목 받고 있다. 3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하얀 헬멧’은 2013년 활동을 시작해 내전통에 많은 목숨을 구했다. 하얀 헬멧은 지난해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이들의 활동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시리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큰 민간인 희생을 낳기 전에 최근 이야기 되고 있는 휴전 논의가 부디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글 | 김현지 환경운동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