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천간은 하늘이 정하는 때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간은 땅이 정하는 때다. 두 때를 합친 60갑자를 세상과 인간의 한 바탕 시간의 순회로 보는 생활문화의 전통에 따라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새해를 상징하는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견도(母犬圖), 이암(李巖, 1507~1566), 73×42.2센티미터
무술년(戊戌年)인 올해는 5번째 천간인 무(戊)와 11번째 지간인 술(戌)이 만난 해로 무의 상징색인 황색과 술의 상징동물인 개가 합쳐진 때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에서는 황금 마케팅에 바쁘다. 황색이 어떻게 황금이 되는지 신묘한 상술이다 싶다. 그런 상술에 혹하기보다 더 생활에 밀착된 의제에 관해 사색하는 데서 새해 상징동물의 의미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
털이 누런 개를 누렁이라 불러온 정겨운 반려견 작명사가 존재한다. 누렁이를 식용견의 대표명사쯤으로 소비하던 시절은 이미 정점을 지난 생활문화사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지만 잔인하게 길러 더 잔인하게 죽이고 그 살을 먹는 사육과 유통, 소비의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17년 3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그 ‘잔인한 사육과 살해’를 금지하고 8월에는 추가로 이를 강화하려는 국회 내 움직임이 있었다. 9월이 되자 이에 반발하는 개사육업자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에서 사육견을 철창에 싣고 와서 ‘개를 키우고 먹는 일을 제도로써 허하라!’고 일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 가을 낙엽이 물 들 때의 일이다.
법이 허하면 당대의 시민들이 그 법을 따라 개식용을 계속하리라 보는 건가? 놀라운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2015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개고기를 먹는 것에 관해 ‘좋게 본다’는 37퍼센트였고 ‘좋지 않게 본다’는 44퍼센트였다. 특히 최근 1년간의 개고기 취식률을 세대별로 보자면 20대의 경우 남녀 공히 20퍼센트 이하였고 50대 이상으로 가야 50퍼센트를 겨우 넘었다. 2000년대 초반의 ‘개고기 먹는 게 왜?’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개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우리의 생활사에서 서서히 퇴출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개를 먹으면 왜 안 돼”냐고 생뚱맞게 물을 필요가 없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개를 먹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하면 된다. 그게 법보다 가까운 생활의 압력이자 문화의 압력이다. 누렁이의 해다. 누렁이를 ‘와그작’ 씹어 먹는 일에 관해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반려로 함께 살기 위한 생각을 누구와도 자신 있게 말하는 올해가 되길 소망한다. 누렁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365일, 시간의 의미를 ‘누렁이를 고기가 아니라 생명으로 대접하는 일’에서 찾아보자.
글 | 박현철 편집주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천간은 하늘이 정하는 때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간은 땅이 정하는 때다. 두 때를 합친 60갑자를 세상과 인간의 한 바탕 시간의 순회로 보는 생활문화의 전통에 따라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새해를 상징하는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견도(母犬圖), 이암(李巖, 1507~1566), 73×42.2센티미터
무술년(戊戌年)인 올해는 5번째 천간인 무(戊)와 11번째 지간인 술(戌)이 만난 해로 무의 상징색인 황색과 술의 상징동물인 개가 합쳐진 때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에서는 황금 마케팅에 바쁘다. 황색이 어떻게 황금이 되는지 신묘한 상술이다 싶다. 그런 상술에 혹하기보다 더 생활에 밀착된 의제에 관해 사색하는 데서 새해 상징동물의 의미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
털이 누런 개를 누렁이라 불러온 정겨운 반려견 작명사가 존재한다. 누렁이를 식용견의 대표명사쯤으로 소비하던 시절은 이미 정점을 지난 생활문화사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지만 잔인하게 길러 더 잔인하게 죽이고 그 살을 먹는 사육과 유통, 소비의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17년 3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그 ‘잔인한 사육과 살해’를 금지하고 8월에는 추가로 이를 강화하려는 국회 내 움직임이 있었다. 9월이 되자 이에 반발하는 개사육업자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에서 사육견을 철창에 싣고 와서 ‘개를 키우고 먹는 일을 제도로써 허하라!’고 일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 가을 낙엽이 물 들 때의 일이다.
법이 허하면 당대의 시민들이 그 법을 따라 개식용을 계속하리라 보는 건가? 놀라운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2015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개고기를 먹는 것에 관해 ‘좋게 본다’는 37퍼센트였고 ‘좋지 않게 본다’는 44퍼센트였다. 특히 최근 1년간의 개고기 취식률을 세대별로 보자면 20대의 경우 남녀 공히 20퍼센트 이하였고 50대 이상으로 가야 50퍼센트를 겨우 넘었다. 2000년대 초반의 ‘개고기 먹는 게 왜?’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개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우리의 생활사에서 서서히 퇴출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개를 먹으면 왜 안 돼”냐고 생뚱맞게 물을 필요가 없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개를 먹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하면 된다. 그게 법보다 가까운 생활의 압력이자 문화의 압력이다. 누렁이의 해다. 누렁이를 ‘와그작’ 씹어 먹는 일에 관해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반려로 함께 살기 위한 생각을 누구와도 자신 있게 말하는 올해가 되길 소망한다. 누렁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365일, 시간의 의미를 ‘누렁이를 고기가 아니라 생명으로 대접하는 일’에서 찾아보자.
글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