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만큼 한국이 각종 ‘균’들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던가. 메르스(MERS)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잘못’ 배송되었다는 살아 있는 탄저균에 대한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고추 탄저병처럼 식물에 나타나는 병인가 싶었던 ‘탄저균’의 위력은 알고 보니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하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치사율이 80~95퍼센트에 이르는 고위험성 병균이자 100킬로그램을 공기 중에 살포하면 100만~3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다. 과거 일본 731 부대가 탄저균을 에어로졸로 살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하고, 영국 역시 스코틀랜드 연안의 그뤼나드섬에서 탄저균 폭탄 실험을 했다가 포름알데히드 수백 톤으로 섬 전체를 소독하고서야 46년 만에 탄저균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9년 구소련에서의 탄저균 실험 사고와 2001년 미국에서의 탄저균 편지 배달 사건까지 탄저균의 살상력을 입증할만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 오산미군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들어왔다 ⓒU.S. Air Force
한국으로 살상무기 탄저균 택배 보낸 미군
이처럼 치명적인 생물무기가 활성화된 채로 민간 택배업체를 통해 국내에 반입되었다. 그것도 동맹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국방부가 보낸 것이었다.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탄저균이 국내 반입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인데 미군의 태도는 안일하기만 하다. 5월 22일 미국 내에서 문제제기가 된 지 5일이 지난 27일에서야 오산 기지 내 탄저균 샘플을 폐기 조치하고도 ‘모든 조치가 잘 이뤄졌고 피해가 없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한미 당국 모두 ‘배달 사고’에 불과하다며 애써 이 사건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 실수에 의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명백한 국내법을 위반한 사건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명확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탄저균의 개발, 생산, 저장, 취득, 비축은 국제조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따라 금지되어 있으며 국내법인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예방법에 의해서도 반입·이동 시 사전신고·허가를 받도록 엄격하게 관리·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번에 반입된 탄저균이 ‘비활성화’된 줄 알았기 때문에 사전 신고하지 않았다며 이를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 역시 탄저균의 활성화 여부를 구분지어 규제하고 있지 않다. 만일 비활성화된 탄저균을 국내 반입했더라도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예방법은 그대로 적용된다. 국제법도 마찬가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8일, 미 국방부의 발표로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사건’이 알려진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한미 양국은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 당초 미 기관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의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워렌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내 9개주 연구시설과 오산기지에만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되었고 그 외 해외기지에 오배송된 건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20여일이 지난 지금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까지 총 5개국 69개소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보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일본에서 유사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행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위험천만한 배송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탄저균 실험을 이번에 처음 실시하였다고 발표했지만 이 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무책임한 미국과 무능한 한국 정부
미국이 전 세계 각지를 대상으로 탄저균을 활용한 실험을 진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합동위협인식체계(JUPITR, 이하 주피터)라는 미군의 생물탐지분석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저균이 반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체는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과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지, 탄저균을 포함하여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각종 세균을 어떻게 운송·처리·취급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미국은 “북한의 생물위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반도에서의 생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저균을 사용한 훈련을 한다지만, 생물무기는 방어용과 공격용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배양과 실험, 운송 그 자체만으로도 생물무기금지협약 위반의 소지가 있어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 공개의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탄저균보다 10만 배나 독성이 강한 ‘보툴리눔’까지 실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한미 정부의 분명한 입장과 온갖 의혹을 해명하기 위한 공동조사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부 반응을 볼 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정부는 지금껏 흔한 유감성명조차 발표하지 않았고 합동조사단을 꾸린다는 말만 한 채 미국의 자체 조사만을 기다리는 무책임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맹’을 내세워 연합 훈련을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고 한미 공동 생물무기감시포털 구축 협약까지 맺었지만 한국 국방부는 문제가 되었던 오산공군기지 내 실험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미군이 조치를 끝낸 이후 보고할 시점, 다시 말해 국내 언론들이 미국발 소식을 빌어 사건을 보도할 즈음까지 국방부는 미군이 탄저균을 활용한 어떤 실험을 진행했는지, 어떤 경위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되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5월 29일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언론에 이미 알려진 주한미군 보도자료 내용 이상의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오산 기지에 탄저균이 배송된 날짜도 처음에는 5월초라고 두루뭉술하게 보고했다가 6월 16일 윤후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4월 29일이라고 변경해 적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5월 28일 주한미군과 “합동”으로 오산기지 조사를 진행했다고 보도자료까지 발행했지만, 진성준 의원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미 실험실에 차단선이 설치돼 일체 접근하지도 못하고 미군의 설명만 듣고 돌아왔다는 것이 실제 정황이다.

탄저균 반입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퍼포먼스. 미국은 민간택배업체를 이용해 탄저균을 국내 반입시켰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미군의 고위험성 세균 사전 통제 어려워
미국의 행태를 용인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에 참담함을 느낄수록 한미 양국관계의 고질적인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절실해진다. 이번 사건의 발단에는 애초에 미군이 국내법을 무시하고 어떠한 사전통보나 신고 없이 국내에 탄저균을 반입한 탓이 크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SOFA 즉 한미 간 주둔군지위협정의 탓도 크다. 현행 SOFA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포함한 그 어떤 생물무기를 반입하더라도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9조 통관과 관세)하고 있다. 합의의사록에 미군은 자신들이 반입하는 군사물품이 한국 법령에 위배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취하게 되어 있지만, 위반하더라도 세관에 통지하는 정도의 조처만이 단서로 달려있어 사실상 이번 사례와 같이 위험물질이 국내로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 또한 한미 SOFA 26조의 보건과 위생 분야를 규정한 항목을 적용하더라도 질병 발견 시 미군 자체적으로 조치 후 한국 정부에는 사후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실제 고위험성 세균과 같은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을 사전에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과거 전례를 볼 때 미군이 탄저균과 같은 생물작용제가 아닌 환경오염 물질 또는 방사성 물질을 한국 정부 몰래 들여와 각종 오염 및 안전사고를 내더라도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규제를 가할 수 없었다. 한강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사건과 방사능 무기인 열화우라늄탄 국내 반입 사건은 이러한 위험물질 반입에 대한 통제권한이 없어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SOFA와 비교하면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군 병력 규모, 무기체계 변화, 위험무기의 반입이 있을 때 사전에 통보를 받거나 협의를 하도록 규정한 경우가 많다. 독일 주둔 미군에 대한 독일보충협정의 경우 위생 및 검역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을 경우 독일당국과 협의하여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법상 수입이 금지된 물품은 독일당국의 동의를 받고나서야 수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군의 선 조치 후 통보를 받게 되어 있는 한미 SOFA와는 대조적이다. 또한 수입 금지물품에 대한 허가제 역시 한미 SOFA에는 없는 부분이다. 미군이 1998년 재배치되기 이전 필리핀과 미국 사이에 맺은 SOFA에서도 필리핀 내 상주하는 미군의 주요변화나 장비 및 무기체제상의 변화에 대하여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자국 내 들어오고 나가는 군수물자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에서 참고할만하다.
국민 안전 위해 불평등한 SOFA 개정해야
불평등한 SOFA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6월 1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당정협의를 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위험성 물질의 국내 반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며 SOFA 운영방법 및 절차상 문제점을 검토하여 7월에 예정된 SOFA 합동위 회의에서 관련사항을 의제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조차도 공염불로 끝날 모양새다. 6월 16일 있었던 국회 국방위의 현안질의 시간에 한민구 국방장관은 SOFA 협정 개정 관련 질의에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데 그쳤기 때문이다.
한미당국은 결코 이번 사안을 은폐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한반도가 미국의 생물무기와 같은 위험물질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자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부는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그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생화학전 대응 실험 및 훈련을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향후 미군이 생화학물질, 핵물질 등 대량살상용 무기와 위험물질을 한반도에 반입하지 못하도록 불평등한 한미SOFA를 개정해야 한다. 평택 기지 주변 주민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미군의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과 이후 무책임한 한미 당국의 태도에 공분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그냥 넘길 것인가? 한미 양국 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만큼 한국이 각종 ‘균’들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던가. 메르스(MERS)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잘못’ 배송되었다는 살아 있는 탄저균에 대한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고추 탄저병처럼 식물에 나타나는 병인가 싶었던 ‘탄저균’의 위력은 알고 보니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하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치사율이 80~95퍼센트에 이르는 고위험성 병균이자 100킬로그램을 공기 중에 살포하면 100만~3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다. 과거 일본 731 부대가 탄저균을 에어로졸로 살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하고, 영국 역시 스코틀랜드 연안의 그뤼나드섬에서 탄저균 폭탄 실험을 했다가 포름알데히드 수백 톤으로 섬 전체를 소독하고서야 46년 만에 탄저균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9년 구소련에서의 탄저균 실험 사고와 2001년 미국에서의 탄저균 편지 배달 사건까지 탄저균의 살상력을 입증할만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 오산미군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들어왔다 ⓒU.S. Air Force
한국으로 살상무기 탄저균 택배 보낸 미군
이처럼 치명적인 생물무기가 활성화된 채로 민간 택배업체를 통해 국내에 반입되었다. 그것도 동맹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국방부가 보낸 것이었다.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탄저균이 국내 반입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인데 미군의 태도는 안일하기만 하다. 5월 22일 미국 내에서 문제제기가 된 지 5일이 지난 27일에서야 오산 기지 내 탄저균 샘플을 폐기 조치하고도 ‘모든 조치가 잘 이뤄졌고 피해가 없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한미 당국 모두 ‘배달 사고’에 불과하다며 애써 이 사건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 실수에 의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명백한 국내법을 위반한 사건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명확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탄저균의 개발, 생산, 저장, 취득, 비축은 국제조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따라 금지되어 있으며 국내법인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예방법에 의해서도 반입·이동 시 사전신고·허가를 받도록 엄격하게 관리·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번에 반입된 탄저균이 ‘비활성화’된 줄 알았기 때문에 사전 신고하지 않았다며 이를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 역시 탄저균의 활성화 여부를 구분지어 규제하고 있지 않다. 만일 비활성화된 탄저균을 국내 반입했더라도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예방법은 그대로 적용된다. 국제법도 마찬가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8일, 미 국방부의 발표로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사건’이 알려진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한미 양국은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 당초 미 기관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의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워렌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내 9개주 연구시설과 오산기지에만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되었고 그 외 해외기지에 오배송된 건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20여일이 지난 지금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까지 총 5개국 69개소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보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일본에서 유사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행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위험천만한 배송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탄저균 실험을 이번에 처음 실시하였다고 발표했지만 이 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무책임한 미국과 무능한 한국 정부
미국이 전 세계 각지를 대상으로 탄저균을 활용한 실험을 진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합동위협인식체계(JUPITR, 이하 주피터)라는 미군의 생물탐지분석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저균이 반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체는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과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지, 탄저균을 포함하여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각종 세균을 어떻게 운송·처리·취급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미국은 “북한의 생물위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반도에서의 생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저균을 사용한 훈련을 한다지만, 생물무기는 방어용과 공격용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배양과 실험, 운송 그 자체만으로도 생물무기금지협약 위반의 소지가 있어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 공개의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탄저균보다 10만 배나 독성이 강한 ‘보툴리눔’까지 실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한미 정부의 분명한 입장과 온갖 의혹을 해명하기 위한 공동조사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부 반응을 볼 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정부는 지금껏 흔한 유감성명조차 발표하지 않았고 합동조사단을 꾸린다는 말만 한 채 미국의 자체 조사만을 기다리는 무책임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맹’을 내세워 연합 훈련을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고 한미 공동 생물무기감시포털 구축 협약까지 맺었지만 한국 국방부는 문제가 되었던 오산공군기지 내 실험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미군이 조치를 끝낸 이후 보고할 시점, 다시 말해 국내 언론들이 미국발 소식을 빌어 사건을 보도할 즈음까지 국방부는 미군이 탄저균을 활용한 어떤 실험을 진행했는지, 어떤 경위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되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5월 29일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언론에 이미 알려진 주한미군 보도자료 내용 이상의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오산 기지에 탄저균이 배송된 날짜도 처음에는 5월초라고 두루뭉술하게 보고했다가 6월 16일 윤후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4월 29일이라고 변경해 적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5월 28일 주한미군과 “합동”으로 오산기지 조사를 진행했다고 보도자료까지 발행했지만, 진성준 의원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미 실험실에 차단선이 설치돼 일체 접근하지도 못하고 미군의 설명만 듣고 돌아왔다는 것이 실제 정황이다.
탄저균 반입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퍼포먼스. 미국은 민간택배업체를 이용해 탄저균을 국내 반입시켰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미군의 고위험성 세균 사전 통제 어려워
미국의 행태를 용인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에 참담함을 느낄수록 한미 양국관계의 고질적인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절실해진다. 이번 사건의 발단에는 애초에 미군이 국내법을 무시하고 어떠한 사전통보나 신고 없이 국내에 탄저균을 반입한 탓이 크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SOFA 즉 한미 간 주둔군지위협정의 탓도 크다. 현행 SOFA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포함한 그 어떤 생물무기를 반입하더라도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9조 통관과 관세)하고 있다. 합의의사록에 미군은 자신들이 반입하는 군사물품이 한국 법령에 위배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취하게 되어 있지만, 위반하더라도 세관에 통지하는 정도의 조처만이 단서로 달려있어 사실상 이번 사례와 같이 위험물질이 국내로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 또한 한미 SOFA 26조의 보건과 위생 분야를 규정한 항목을 적용하더라도 질병 발견 시 미군 자체적으로 조치 후 한국 정부에는 사후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실제 고위험성 세균과 같은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을 사전에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과거 전례를 볼 때 미군이 탄저균과 같은 생물작용제가 아닌 환경오염 물질 또는 방사성 물질을 한국 정부 몰래 들여와 각종 오염 및 안전사고를 내더라도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규제를 가할 수 없었다. 한강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사건과 방사능 무기인 열화우라늄탄 국내 반입 사건은 이러한 위험물질 반입에 대한 통제권한이 없어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SOFA와 비교하면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군 병력 규모, 무기체계 변화, 위험무기의 반입이 있을 때 사전에 통보를 받거나 협의를 하도록 규정한 경우가 많다. 독일 주둔 미군에 대한 독일보충협정의 경우 위생 및 검역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을 경우 독일당국과 협의하여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법상 수입이 금지된 물품은 독일당국의 동의를 받고나서야 수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군의 선 조치 후 통보를 받게 되어 있는 한미 SOFA와는 대조적이다. 또한 수입 금지물품에 대한 허가제 역시 한미 SOFA에는 없는 부분이다. 미군이 1998년 재배치되기 이전 필리핀과 미국 사이에 맺은 SOFA에서도 필리핀 내 상주하는 미군의 주요변화나 장비 및 무기체제상의 변화에 대하여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자국 내 들어오고 나가는 군수물자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에서 참고할만하다.
국민 안전 위해 불평등한 SOFA 개정해야
불평등한 SOFA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6월 1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당정협의를 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위험성 물질의 국내 반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며 SOFA 운영방법 및 절차상 문제점을 검토하여 7월에 예정된 SOFA 합동위 회의에서 관련사항을 의제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조차도 공염불로 끝날 모양새다. 6월 16일 있었던 국회 국방위의 현안질의 시간에 한민구 국방장관은 SOFA 협정 개정 관련 질의에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데 그쳤기 때문이다.
한미당국은 결코 이번 사안을 은폐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한반도가 미국의 생물무기와 같은 위험물질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자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부는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그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생화학전 대응 실험 및 훈련을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향후 미군이 생화학물질, 핵물질 등 대량살상용 무기와 위험물질을 한반도에 반입하지 못하도록 불평등한 한미SOFA를 개정해야 한다. 평택 기지 주변 주민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미군의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과 이후 무책임한 한미 당국의 태도에 공분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그냥 넘길 것인가? 한미 양국 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 |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