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네팔 지진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지난 4월 슬로바키아 쿤스트할레에서 개인 전시회를 할 때였다. 한 네팔인 이주노동자 부부가 방문했다. 처음으로 만난 아시아인, 반갑게 대화 끝에 주말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다. 네팔에 터진 진도 7.8의 대지진이 그들의 발길을 막았다는 걸.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다. 귀국해 ‘네팔 지진 피해 구호기금전’을 열어 기금을 만들었다. 기금을 들고 지진 발생 한 달 후 카트만두 행 비행기를 탔다. 

 

카트만두 외곽에 위치한 발라주 지역은 많은 건물들이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지진이 앗아간 것들 

카트만두는 황폐했다. 랜드마크들이 완전히 무너졌고 곳곳의 건물들에는 금이 가 있었다. 도착 당일 마련된 기금을 네팔의 ‘Bindu A space for artists’(이하 빈두)에 전달했다. 지진 후 한 달. 긴급구호 시점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의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네팔의 미술가들은 지진 피해를 입은 예술가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고 워크샵, 전시회 등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서로를 돕고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 기금으로 한 자매의 병원비를 처음 지원했다. 박타푸르의 딸 다섯을 둔 한 가정. 지진으로 주변 건물 다섯 채가 집을 덮쳤고 딸 셋이 묻혔다. 나머지 두 딸이 구조됐다. 그중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던 샤르밀라는 뇌출혈과 오른쪽 얼굴 근육 마비, 공교롭게도 오른팔 근육을 못 쓰게 됐다. 시각디자이너의 꿈을 지진이 앗아간 듯했다. 

간호사를 꿈꾸던 마리샤는 발목을 못 쓰게 됐다. 그들 근처의 한 임시숙소에 아이 한 명과 친정어머니를 잃은 가정이 있었다. 미술가인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다닌다. 슬픔 속에서도 그 가정은 이방인 방문자에게 따뜻한 짜이를 대접했다. 그들에게 사진 한 장을 선물하고 싶어 촬영을 제안했다. 카메라 앞에 그들의 미소가 오히려 슬퍼 보였지만 피하지 않고 그대로 필름에 담았다. 그들을 돕는 것 외에 우리 기금은 빈두의 예술가들을 통해 카트만두 인근의 지진 피해 지역 난민캠프를 순회하며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교육에 쓰게 됐다. 그늘 가득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미술수업을 받으며 조금씩 웃음을 머금었다. 기쁘고 가슴이 저렸다. 

민수 씨(텐징 델렉)가 지진 직후 법보신문 등을 통해 모금한 기금을 가지고 네팔에 들어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 그를 만났다. 과거 티베트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며 알게 된 사이로 그는 서울에서 티벳/네팔음식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민수 씨는 접근이 힘든 신두팔촉 등의 오지에 긴급구호물품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나섰다. 동행길에 네팔의 티베트 난민들과 지진으로 인해 2중의 곤란에 처한 그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네팔에는 1만4000명의 티베트 난민이 살고 있다. 그들 가운데 지진 사망자는 13명. 네팔 전체로는 인구 약 3000만 명 중에 약 8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중국의 식민 지배를 피해 네팔로 넘어온 티베트 난민의 역사는 벌써 60년이 흘렀고 난민캠프의 건물은 대부분 시멘트 벽돌 건물로 대체되었다. 티베트 난민들은 네팔여권을 발급받지 못하며 아무런 국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도 주장할 수 없다. 인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가 발급하는 효력이 없는 여행자 증명서만 있을 뿐이다. 국민이 아닌 이들은 이번 네팔 구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망자는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은 금이 간 집을 나와 천막 생활을 하고 있다. 오지에 세운 사원들은 대부분 파괴됐다.  

이번 네팔 지진의 가장 큰 피해지역은 북쪽의 신두팔촉 지역이다. 카트만두 시내를 나와 신두팔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대부분의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다섯 시간 지프차를 타고 차감 여승원(Chagam nunnery)에 도착했다. 250여 명의 티베트 여승들이 6개월에서 4년까지 묵언수행을 하는 곳이었다. 여승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지어 세상과 격리된 채 수행하던 곳이었다. 지진으로 그들이 지은 건물은 거의 다 무너졌다. 70여 명의 연로한 승려들이 남아서 사원을 지키고 있었고 나머지 승려들은 묵언수행을 깨고 카트만두의 임시거처로 옮겨갔다. 우기가 시작됐다. 지진 후 자주 발생하는 산사태가 언제 차감 여승원을 덮칠지 모른다. 

 

네팔 티베트 난민 노인들. 카트만두 외곽에 캠프를 지어 생활했지만 이번 지진으로 인해 건물에 금이 가 캠프 근처 공사장에 머물고 있다

 

몽키템플로 유명한 수왐부나트.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은 수작업으로 서서히 철거중이다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문화유산인 더르바르 광장의 파괴에 망연자실한 시민들

 

네팔과 티베트에 관심과 지원을 

부처님이 탄생한 사가다와 축제기간에 티베트 난민들은 보드너트 사리탑(Boudnath Stupa)에 모여 네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많은 NGO와 국제기구가 현재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티베트 난민들에 대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문화재이자 관광지인 박타푸르와 산쿠의 도심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처럼 보였다. 수천 개 폭탄이 퍼부어진 듯한 형상이었다. 메르스 발생 후 한국에서 네팔지진은 잊혀져간다. 한국은 자연재해와 재난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라인가? 아니다. 지금 세계의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도와야 우리는 미래에도 이웃일 수 있다. 

 

글·사진 | 강제욱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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