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Friends of the Earth 26] 2만 명 죽음으로 모는 남아공의 위험한 거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는 대기오염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며 지난해 처음 오염된 공기를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대기오염은 그간 심장이나 폐 관련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암을 유발한다는 소식은 처음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대기오염과 싸우고 있다. 2005년 남아공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공의 공기는 전체적으로는 기준에 부합하나 부분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문제 구역, 이른바 ‘핫스팟(hot spot)’을 갖고 있다고 나타났다. 문제 구역은 대기환경개선법에서 ‘우선 지역(priority area)’으로 분류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지목받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Gerhard Roux 


화력발전으로 오염된 대기 

남아공의 대기 거버넌스는 2000년까지 거의 절멸 상태였다. 2004년 만들어진 대기환경개선법(Air Quality Act)은 기존의 대기관리법을 대신해 오염에 대한 예방적 조처를 하고자 한 시도였다. 남아공 정부는 이 법 제정을 통해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2010년 남아공 정부는 대기환경개선법에 부합되도록 산업계에 적용될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발표했다. 

그런데 남아공에서 매머드급 전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기 회사가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준수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에 한국전력이 있다면 남아공에는 에스콤(ESKOM)이 있다. 공기업 에스콤은 석탄화력을 중심으로 원자력, 수력 등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남아공은 물론 국경 너머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공급하고 있다. 에스콤이 공급하는 전기는 남아공 전기의 95퍼센트, 아프리카 대륙 전기의 45퍼센트에 달한다. 

에스콤은 14개 석탄화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건설중에 있는 4800메가와트급 메두피(Medupi) 발전소가 완공되고 나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화력발전소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에스콤의 14개 화력발전소가 모두 대기오염 문제 구역인 ‘우선 지역(priority area)’에 위치해 있다. 에스콤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음푸말랑가(Mpumalanga) 주에 12개나 밀집해 있다. 

음푸말랑가 주에 있는 ‘우선 지역’인 하이펠트(Highveld)는 시급히 대기 개선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곳이다. 하이펠트의 주민 토마스 응구니(Thomas Mnguni) 씨는 “나와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미들버그(Middleburg)의 공기는 남아공 내에서 제일 나쁜 편이다. 내 아이들을 비롯해 마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천식을 앓고 있다. 에스콤은 직접적으로 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적반하장, 법을 바꿔 달라는 기업 

그러나 에스콤은 사회적 책임보다는 이익에 급급해한다. 2004년 이전보다 오염물질 배출 기준이 강화된 대기환경개선법이 제정되고 에스콤은 무려 5년간 오염물질 배출 당사자로 오염물질 배출 기준 설정에 대한 세부 논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2010년 배출기준이 강화된 대기환경개선법이 전면 시행되었고 모든 업계는 이 기준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에스콤은 이를 따르지 않고 버티다 2013년 6월 자사가 보유한 16개 발전소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 중 14개 발전소는 석탄화력이었다. 석탄화력 발전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미립자 물질,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수은 등을 배출시켜 건강에 몹시 해롭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에스콤은 2013년 12월 배출기준 적용을 연기해 달라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거기에 더해 현재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더 완화해달라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정부는 에스콤의 뻔뻔한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다. 남아공 정부는 에스콤의 오래된 공장에 대해 새로운 배출기준 적용을 2015년 4월까지 유예해주고 2020년 4월 1일까지 모든 공장들이 새 배출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라며 사실상 에스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에스콤뿐만 아니라 에너지화학기업 새솔(Sasol)과 정유시설 나트레프(Natref)도 비슷한 요구를 한 상태라 남아공정부는 이들에게도 ‘합법적인 불법’의 길을 터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11일 지구의벗 남아공 그라운드워크(groundWork)와 시민단체 <어스라이프 아프리카(Earthlife Africa) 요하네스버그>는 에스콤에 유예기간을 허락함으로써 배출되는 유해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발표했다. 기준보다 초과해 배출되는 아황산가스는 2800만 톤, 질소산화물은 290만 톤, 수은 210톤, 미세물질은 56만 톤에 이른다. 사망, 호흡질환, 심장마비, 아동발달장애 등 이로 인해 초래되는 공공보건상의 문제도 함께 공개됐다. 에스콤은 자사에 대한 예외적 적용이 건강에 미칠 영향을 함께 평가해 보자는 시민사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부는 국민 건강 생각해야  

프리토리아(Pretoria) 대학에서 수행한 연구에서는 이미 오염이 심각한 ‘최우선 지역’에 건설된 쿠사일(Kusile) 발전소로부터 미화 2억 달러의 공공보건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나타났다. 게다가 인근 병원 입원 건수의 절반에 달하는 책임이 에스콤에 있다고 밝혔다. 에스콤이 방침을 바꾸면 1600명 어린이의 생명을 포함해 무려 2만 명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벗 남아공 활동가 리코 유리피도우(Rico Euripidou) 씨는 “에스콤의 준법 연기는 다가오는 10년 동안 더욱 심각한 대기오염을 낳게 될 것”이라며 “수천 명의 남아공 사람들이 죽거나 건강을 해치게 되면 남아공 납세자들에게 수천억 란트의 건강보건 비용이 발생할 텐데, 이는 법 준수로 인해 에스콤이 지불해야하는 비용보다 크다.”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아공 환경부는 현재 대기오염 상쇄 정책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개발중이다. 오염자들이 대기오염을 감소시키는 다른 조치를 하면, 그들의 오염물질 배출을 상쇄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로비에 밀려 거꾸로 가고 있는 남아공 정부는 지금이라도 모든 국민에게 건강과 복지에 해롭지 않은 환경을 보장하는 남아공 헌법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글 | 김현지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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