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풋풋하고 올곧은 정당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지식인, 생활인들이 중심이 돼 ‘아토피정치’, ‘생활정치’ ‘풀뿌리정치’ 등을 내세우며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초록정치연대의 역사가 마감을 했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초록정치연대는 지난 7월 12일 총회에서 주·객관적 여건의 어려움과 창당실패에서 쌓인 피로감과 상처로 결국 해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계속해서 초록당 창당을 모색할 ‘초록당사람들’이 제안됐다. 현재 ‘초록당사람들’(준)(명칭 미정)은 앞으로 어떻게 초록정치연대의 한계를 극복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밑그림 그리기에 바쁘다. 

2007년 창당을 추진했던 거친 호흡과 올 상반기 진보정당과 연합을 모색하며 대화를 시도했던 목소리를 잠시 잠재우고, 간략하게나마 지금까지 초록정치연대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자.

초록정치연대의 결성과 히트상품

초록정치연대의 역사는 2002년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지방의원 배출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정치를 녹색정치로 삼고, (가칭)녹색정치네트워크 결성을 목표로 녹색정치준비모임이 만들어졌다. 이 모임은 처음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문에서 녹색정치에 관한 관심을 촉발하고 이를 연계하는 일에 대한 헌신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았다.

특히, 앞서 초록정치연대의 히트로 언급했던 녹색정치의 순번제 운영위원제도가 이때 도입됐다. 녹색가치로써 대안정치를 표방했다면, 관료제와 위계제를 극복한 평회원 중심의 대안적 조직운영원리를 실현하고자 애썼던 셈이다.  

이 제도는 모든 회원은 운영위원을 할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으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제비뽑기를 통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운영위원이 되는 제도다. 임기는 6개월로 하며 3개월마다 정원의 절반을 추첨을 통해 다시 뽑음으로써 더 많은 회원들이 운영위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또 초록정치연대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8대 가치를 수차례 회원토론과 설문을 통해 제시했다. ‘생명, 평화, 풀뿌리, 지구, 나눔, 미래, 성평등, 다양성’.
8대 가치와 회원 중심의 발랄한 활동을 자원으로 삼아 가치지향과 정책, 활동, 조직원리에서 참된 대안을 구현하는 초록정당을 만들겠다고 ‘야심찬’ 의지를 밝히며 힘차게 출발했다. 그 로드맵으로 2006년 지방선거 참여를 통해 초록정치를 실현할 지역적 토대를 마련해 철저한 풀뿌리 원칙으로 초록정당을 창당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이른바 ‘지역정당 창당론’은 조직구성에서도 여실히 그 특성을 드러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의원들의 모임인 <지방의원단>과 지역운동의 정책활동과 지방자치참여를 교육하는 <풀뿌리정책지원단>은 지방자치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지방자치교육을 담당했다. 

다양한 빛깔의 여러 회원 소모임도 초록정치연대의 발랄한 자산이었다. <농업연구모임>, <무지개평화행동>, <청년모임 ‘푸르세’>, <국제연대 소모임 ‘지구를 향한 시선’>, <웹진 초록정치 온라인 활동 모임>등이 그것이다(참고로 그때 만들어진 유기농가와 도시가구 간의 직거래장인 <초록장터>는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20여 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소모임 활동에는 <무지개평화평화행동>의 파병반대 활동이었다. 회원들이 중심이 돼 <이라크평화네트워크>랑 공동으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고 김선일씨 죽음에 대한 속죄와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당시로선 실험적인 시위형태인 ‘피스몹’을 선보였다. 첫 시위 이후 여성단체, 인권단체가 이를 본받아 잇달아 피스몹 추모가 열렸을 정도로 시민사회단체내의 반응이 좋았다. 연달아 파병반대를 요구하는 노래 시위로 ‘널린노래방’을 파병에 찬성한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개장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도 당시 화젯거리였다.

지역정당, 네트워크정당으로 창당에 시동을 걸다

서울에서부터 지방정책의 대안을 만들어 변화를 끌어내며 서울 지역당의 존립근거를 마련하여 다른 지역으로 바람을 전파시켜 전국적인 지역정당들간의 연대로 초록정당을 만들겠다는 창당기획은 2005년부터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지방정책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으로 2005년 1월에 녹색교통, 도시연대, 문화연대 등을 비롯한 1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가칭)서울시민연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서울시민연대는 이명박 서울시장체제의 청계천복원, 시청잔디광장, 뉴타운개발 등 반생명, 반문화, 반생태적 시정을 비판하고 서울지역의 시민단체, 풀뿌리지역단체 등이 시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기 위해 결성했다.

그 해 하반기에는 이듬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록정치연대의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하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됐다. 이로써, ‘서울지역 풀뿌리초록정당’ 만들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의 풀뿌리초록정치운동/정당과 연대를 통해 힘 있는 전국적 제도정당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구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의욕적으로 서울예비당원 캠페인 활동을 벌이면서 서울지역당 만들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회원수를 채우지 못했고 창당 전략 또한 대폭 수정됨으로써 종결을 못 지은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2006년 창당전략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다양한 풀뿌리, 초록후보들이 모두 참여하는 네트워크 형태를 통해 선거에 참여해 성과를 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초록정당을 만들자는 구상으로 변모됐다.

풀뿌리, 초록후보들의 연대틀은 <5.31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공동행동(약칭 풀초넷)>으로 나타났다. ‘풀초넷’이란 상큼한 어감의 네트워크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해왔던 활동가 출신의 후보들과 아토피정치, 유기농급식 등의 초록의제들로 언론의 눈길을 받았다.

‘풀초넷’은 서울, 경기도, 대전, 충청, 강원도, 전북, 경남 등지에서 총 21명의 지방선거 후보를 출마시켰다. 하지만 정당공천제라는 제도적 장벽과 한나라당의 광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2명만을(과천시, 춘천시) 당선시키곤 무참히 패배했다. 이로써 더 이상 창당논의를 지속할 힘을 잃고 말았다.

“초록정당을 제안합니다”

2006년 총회에서는 정관을 제정하고 초록정치연대의 목표가 초록정당 창당임을 확고히 했다. 지방선거의 실패, 창당에 대한 이견으로 인한 일부 회원의 탈퇴 등으로 조직은 위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총회에서 초록정치세력화집단임을 스스로 재확인하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초록당 창당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청사진을 담은 창당제안서를 작성해보라는 임무를 창당특별위원회에 맡긴다. 무려 7개월간의 토론, 설문조사, 여론조사 등을 통해서 얻은 창당제안서가 드디어 그 이듬해인 2007년 2월 총회에 제출됐다. 참석회원들 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2007년 초록당 창당, 2008년 총선 참여, 전국 투표율 2퍼센트 득표, 제도정당으로 진입, 이와 같은 창당로드맵이 이 자리에서 통과된다.

초록당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을 준비했던 <초록정당을만드는사람들>은 5월 31일에 마포실업극복국민재단에서 제안행사를 열어, 시민사회단체에게 초록정당 창당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했다. 초록정당을 만드는 방식, 사람들, 창당시기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을 시민사회단체, 풀뿌리운동과 평화운동, 다양한 생협과 생명운동단체들, 생명평화가치를 체현하는 종교인들, 대안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했던 것이다.

<초록정당을만드는사람들>은 창당 제안서를 갖고, 시민사회와 지방회원들을 밤낮으로 만나러 전국을 다니며 수차례의 대화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반응은, 정당의 필요성은 공감하되 상대적으로 초록당을 창당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배적인 다수의 견해였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시민사회운동으로부터 초록당 창당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얻었고 동의절차를 밟았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가 창당의 초기주체가 되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에 이르렀고, 스스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다음 순서를 이어가야만 했다.

이윽고 2007년 10월 20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100여 명의 초록당 창당의 씨앗들이 모여 초록당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연다. 아울러 이날 양단으로 반응이 갈렸던 초록당 대통령후보 선출대회도 함께 열렸다.

초록당 대통령후보는 당시 2008년 2월 창당을 앞두고 대선시기 통과가 불가피한 시점에서 초록답게 대선을 돌파하자는 바람을 담아 ‘반정치의 정치’의 일환으로 전개된 캠페인이었다. 이 대선캠페인에서는 한국의 개발과 성장기조를 생명, 지속가능성 등 생명평화가치를 비유하는 도롱뇽, 동물, 밥, 자전거, 어린이, 건강한 마음 등의 상징적 후보들이 초록당의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유세를 벌였다.

홍익대와 명동에서 열린 2차례의 선거유세와 합동토론회를 거쳐 온·오프라인 투표를 거쳐 초록당 대통령후보로 마침내 동물후보가 당선됐다. 이 캠페인은 특히 젊은층의 유권자들에게 참신함으로 다가갔으며, 연합뉴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비롯한 메이저 방송과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특히 kbs 제1라디오에서는 장장 50분에 걸쳐 ‘기호 0번 초록대통령후보’ 제목의 다큐멘터리 극이 방송되어 전국적으로 초록당창준위가 전파를 타는 기쁨의 순간을 누렸다.

‘너무 가볍다’와 ‘신선하다’ 는 양단의 반응 속에서도 무사히 마친 초록대통령후보 대선캠페인은 나름대로 몇 가지 화제를 남기며 막을 내렸던 것이다. 조직적 성과로서는 동물단체와의 교류로 생명권운동과 이슈가 확장될 수 있는 자원을 생성시켰다는 것이었다. 또 특히 여성과 젊은층이 초록정당의 잠재적 지지층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창당 실패, 여전히 길에 있다

애초 새로운 개념의 대선캠페인을 통해 지방선거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일으킬 창당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선 시기와 창당 시기가 겹쳐 회원들의 참여와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창당에 실패하면서 2008년 총회에서 ‘조기창당론’이 무리였다는 총평을 내렸다. 이와 함께 대선 이후 나타난 ‘진보진영의 재구성’ 과정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그 결과 초록당창준위를 해소하고 초록정치연대의 새 진로 모색과 총선 이후 독자창당, 연대창당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사회당, 진보신당 등과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것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혀졌다.

사회당과 연대창당 모색은 초록정치공동위라는 연대기구를 통해 연대창당의 가능성을 서로 탐색했다. 진보신당과는 진보신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논의주체로 참여를 허용했다. 초록과 진보가 함께 하는 정당을 바라는 회원들이 집담회를 열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켜 보려 했으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초록당이 독립당으로 존재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간접적으로 드러난 셈이었다.

결국, 초록정치연대는 내부동력의 소진,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다른 정치집단으로의 선택지가 생성되면서 정치적 선택의 차이, 창당을 수행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틀 등을 이유로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초록정당 창당을 계속 이어가자는 그룹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길찾기를 모색하고 있다.  

침체된 분위기속에서 초록정당 깃발을 들고 걸어가야 할 길이 당장에는 고난의 길이지만,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이 시절에도 한줄기 빛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머지않아 주변을 희망의 길로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정화 전초록정치연대 홀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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