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실천하는 사람” 국어사전에 등록된 ‘활동가’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모든 이들을 활동가라 할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업을 환경운동으로 삼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환경연합 활동가들이다. 현재 2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전국 곳곳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란 이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동시기도 연령도 다르지만 지구를 지키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활동한다는 사명감은 같다. 지난 3월 12일 환경연합 최고참 활동가와 막내 활동가가 만났다. 25년차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과 1년차 박솔비 미디어홍보국 활동가, 2년차 이민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다. 후배는 선배의 모습에서 내일의 나를 그리고 또 선배는 후배의 포부와 꿈을 통해 예전의 초심을 떠올리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의 수다를 전한다. -편집자주

환경연합 활동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박솔미 중앙사무처 활동가,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장, 김은숙 중앙사무처 홍보국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박솔비 환경연합 초기부터 활동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김혜정 고향 울진에 핵발전소가 있다. 88년 당시가 민주화운동 바로 직후라서 이런 (반핵)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환경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이 이런 이슈를 다루는 유일한 단체였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핵발전소 이슈를 제기하다가 공추련 활동가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89년부터 서울에 와서 공추련 활동을 시작하면서 환경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민호 활동 초기부터 계속 탈핵운동을 했나?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김혜정 그 때는 지금처럼 운동 영역이 나눠져 있지 않았다. 환경사안과 관련된 주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는 만능 활동가로 활동했다. 재정사업도 하고 전화 받는 총무도 하고 자료 빌려주는 자료 대출 활동도 하고 손님 오면 방문자 면담도 하고, 활동도 하고…. 그 때는 젊을 때니까 온몸으로 24시간 활동했던 것 같다.
이민호 예전에는 산업발전이 제일 우선이었고 군부독재가 막 끝난 시기인데 초기 환경운동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어땠나?
김혜정 공추련과 환경연합은 처음부터 대중운동 단체로 출범을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다. 화학조미료 먹지 말자는 운동, 일회용품 사용 안하는 운동 등등. 일회용 젓가락을 없앤 일등 공신은 우리다. 그 때는 식당에서 다 일회용품 썼는데 그거 다 없앴다. 나무젓가락이 짧은 기간 내에 식당에서 퇴출된 것은 역사적일 거다. 합성세제 쓰지 않기 운동을 하면서 천연세제 직접 만들어 쓰기 운동도 벌이고 친환경세제를 만든 중소기업 용액을 받아다 팔면서 재정사업도 했다. 동강 살리기 운동, 새만금 살리기 운동 등도 기억난다. 특히 동강 살리기 운동은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공감해준 운동이었다.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오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 환경연합은 처음부터 대중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민호 25년 활동을 해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김혜정 3년 전 주민들이 굴업도 핵폐기장 백지화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상을 하나 주셨다. 그분들이 마음에 빚이 있었는데, 20년 만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고 20주년 잔치를 하면서 상을 주셨다. 최고의 영예인거 같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이런 상을 받았으니 그것보다 더 한 영광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호 탈핵운동을 주로 해왔는데 힘든 점은 없나.
김혜정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9개 있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내 인생을 걸겠다는 심정으로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할수록 발전소가 늘어났다. 2004년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을 주민투표를 통해 유치했는데 그때 상실감이 컸다. 그 때부터 사실 운동이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아무도 우리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태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까지 이어졌다. 근데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살아있을 때 핵발전소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근데 활동가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거지 그 결과를 내가 활동할 때, 살아있을 때 꼭 얻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우리가 바라는 것 또는 꿈꾸는 것, 그런 것들이 금방은 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그 꿈에 닿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가 위험하다 생각하고, 국민의 77.8퍼센트 정도가 전기요금을 올리더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고 여론조사에 답하고 있다. 신규원전 건설은 다수가 반대하고 있고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발표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보니까 이런 변화도 만들어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혜정 후배님들은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되었나.
박솔비 중학교 3학년 때 대안학교 학생들끼리 대운하반대 60일 도보를 했었다. 기획단계에서 지역 환경연합에 도움을 받으면서 환경연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방송국 외주제작사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게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 그러다 친구인 서울환경연합 이동이 활동가의 소개로 환경연합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민호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 진학 대신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사회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군대를 갔는데 그때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졌다.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군 제대 이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력서를 넣었고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혜정 막상 활동해보니 어떤가.
이민호 일이 참 많더라. 하나의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고 이야기하고 요청하고, 시시때때로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등 일들이 많다.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또 다 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 나와 생각이 다 다르더라.
박솔비 시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
김혜정 그건 영원한 과제이다. 사람들이 우리 얘기에 동의하게 만드는 과정이 힘들지만 시민들과 유리되면 어떤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우리 편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은 그게 기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활동가는 늘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사안이 있으면 찾아가서 얘기하고 설명 드리고 도와달라고 하거나 같이하자고 했다. 근데 지금 세대는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대신 카톡 보내는 것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활동하는 사람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원래 나이 많은 사람은 어렵다. 나도 어렵다. 그렇다고 후배가 쉽냐? 그렇지 않다. 후배가 더 어렵다. 그러니까 이건 각각의 입장이 다른 거지 모르는 사람은 서로 다 어렵다. 근데 그 어려움의 돌파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 없어진다.
김혜정 활동하면서 뿌듯한 점도 있지 않나?
이민호 사람들과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이 정책에 포함된다거나 사람들이 동참해주고 지지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박솔미 중앙사무처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박솔비 신고리 5, 6호기 문제에 대응할 때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사람들 마음 얻는 게 쉽지 않구나’ 싶기도 하고 진이 빠졌다. 그런데 최근 일본 방사능 수산물 수입과 관련해 WTO 결정을 규탄한다는 환경연합 활동에 많은 분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김혜정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활동가들은 균형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늘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 또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반 시민에 앞서서 의제를 만들고 그것을 리드해 가는 사람들이다. 사회를 먼저 읽고 이슈에 대해서 문제 핵심을 파악해서 어떻게 풀 건지 생각해서 제시하고, 잘 조직하는 것이 활동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이민호 현재는 미세먼지 대응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하는 활동들을 찾아가고 있다. 미세먼지는 워낙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 함께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싶다. 해결될 때까지 맡은 분야를 계속 하고 싶다.
박솔비 시민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시대흐름에 따라 긍정적인 운동이 늘어나야 할 것 같다. 또한 우리활동을 전달할 때 일반시민들한테 어려운 단어들이나 개념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관심 끌어낼 수 있는 개념정의부터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혜정 20대 때는 도전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 활동에 대한 지향점을 갖고 나아가다보면 꿈을 꾼 것만큼 이루게 된다. 선배들의 좋은 점은 배우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아라. 선배들이 잘 못하는 것들은 후배들이 패기로 바로잡아줘야 한다. 후배들의 비판이 가장 정신 번쩍 든다. 여러분의 비판이 조직에 신선한 문화를 가져온다. 건강한 조직은 선배와 후배들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맙다. 후배님들.
정리 | 김은숙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미디어홍보국장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실천하는 사람” 국어사전에 등록된 ‘활동가’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모든 이들을 활동가라 할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업을 환경운동으로 삼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환경연합 활동가들이다. 현재 2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전국 곳곳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란 이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동시기도 연령도 다르지만 지구를 지키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활동한다는 사명감은 같다. 지난 3월 12일 환경연합 최고참 활동가와 막내 활동가가 만났다. 25년차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과 1년차 박솔비 미디어홍보국 활동가, 2년차 이민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다. 후배는 선배의 모습에서 내일의 나를 그리고 또 선배는 후배의 포부와 꿈을 통해 예전의 초심을 떠올리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의 수다를 전한다. -편집자주
환경연합 활동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박솔미 중앙사무처 활동가,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장, 김은숙 중앙사무처 홍보국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박솔비 환경연합 초기부터 활동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김혜정 고향 울진에 핵발전소가 있다. 88년 당시가 민주화운동 바로 직후라서 이런 (반핵)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환경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이 이런 이슈를 다루는 유일한 단체였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핵발전소 이슈를 제기하다가 공추련 활동가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89년부터 서울에 와서 공추련 활동을 시작하면서 환경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민호 활동 초기부터 계속 탈핵운동을 했나?
김혜정 원전안전특별위원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김혜정 그 때는 지금처럼 운동 영역이 나눠져 있지 않았다. 환경사안과 관련된 주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는 만능 활동가로 활동했다. 재정사업도 하고 전화 받는 총무도 하고 자료 빌려주는 자료 대출 활동도 하고 손님 오면 방문자 면담도 하고, 활동도 하고…. 그 때는 젊을 때니까 온몸으로 24시간 활동했던 것 같다.
이민호 예전에는 산업발전이 제일 우선이었고 군부독재가 막 끝난 시기인데 초기 환경운동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어땠나?
김혜정 공추련과 환경연합은 처음부터 대중운동 단체로 출범을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다. 화학조미료 먹지 말자는 운동, 일회용품 사용 안하는 운동 등등. 일회용 젓가락을 없앤 일등 공신은 우리다. 그 때는 식당에서 다 일회용품 썼는데 그거 다 없앴다. 나무젓가락이 짧은 기간 내에 식당에서 퇴출된 것은 역사적일 거다. 합성세제 쓰지 않기 운동을 하면서 천연세제 직접 만들어 쓰기 운동도 벌이고 친환경세제를 만든 중소기업 용액을 받아다 팔면서 재정사업도 했다. 동강 살리기 운동, 새만금 살리기 운동 등도 기억난다. 특히 동강 살리기 운동은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공감해준 운동이었다.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오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 환경연합은 처음부터 대중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민호 25년 활동을 해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김혜정 3년 전 주민들이 굴업도 핵폐기장 백지화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상을 하나 주셨다. 그분들이 마음에 빚이 있었는데, 20년 만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고 20주년 잔치를 하면서 상을 주셨다. 최고의 영예인거 같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이런 상을 받았으니 그것보다 더 한 영광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호 탈핵운동을 주로 해왔는데 힘든 점은 없나.
김혜정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9개 있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내 인생을 걸겠다는 심정으로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할수록 발전소가 늘어났다. 2004년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을 주민투표를 통해 유치했는데 그때 상실감이 컸다. 그 때부터 사실 운동이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아무도 우리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태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까지 이어졌다. 근데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살아있을 때 핵발전소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근데 활동가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거지 그 결과를 내가 활동할 때, 살아있을 때 꼭 얻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우리가 바라는 것 또는 꿈꾸는 것, 그런 것들이 금방은 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그 꿈에 닿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가 위험하다 생각하고, 국민의 77.8퍼센트 정도가 전기요금을 올리더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고 여론조사에 답하고 있다. 신규원전 건설은 다수가 반대하고 있고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발표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보니까 이런 변화도 만들어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혜정 후배님들은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되었나.
박솔비 중학교 3학년 때 대안학교 학생들끼리 대운하반대 60일 도보를 했었다. 기획단계에서 지역 환경연합에 도움을 받으면서 환경연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방송국 외주제작사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게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 그러다 친구인 서울환경연합 이동이 활동가의 소개로 환경연합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민호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 진학 대신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사회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군대를 갔는데 그때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졌다.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군 제대 이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력서를 넣었고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혜정 막상 활동해보니 어떤가.
이민호 일이 참 많더라. 하나의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고 이야기하고 요청하고, 시시때때로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등 일들이 많다.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또 다 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 나와 생각이 다 다르더라.
박솔비 시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
김혜정 그건 영원한 과제이다. 사람들이 우리 얘기에 동의하게 만드는 과정이 힘들지만 시민들과 유리되면 어떤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우리 편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은 그게 기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활동가는 늘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사안이 있으면 찾아가서 얘기하고 설명 드리고 도와달라고 하거나 같이하자고 했다. 근데 지금 세대는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대신 카톡 보내는 것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활동하는 사람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원래 나이 많은 사람은 어렵다. 나도 어렵다. 그렇다고 후배가 쉽냐? 그렇지 않다. 후배가 더 어렵다. 그러니까 이건 각각의 입장이 다른 거지 모르는 사람은 서로 다 어렵다. 근데 그 어려움의 돌파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 없어진다.
김혜정 활동하면서 뿌듯한 점도 있지 않나?
이민호 사람들과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이 정책에 포함된다거나 사람들이 동참해주고 지지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박솔미 중앙사무처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박솔비 신고리 5, 6호기 문제에 대응할 때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사람들 마음 얻는 게 쉽지 않구나’ 싶기도 하고 진이 빠졌다. 그런데 최근 일본 방사능 수산물 수입과 관련해 WTO 결정을 규탄한다는 환경연합 활동에 많은 분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김혜정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활동가들은 균형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늘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 또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반 시민에 앞서서 의제를 만들고 그것을 리드해 가는 사람들이다. 사회를 먼저 읽고 이슈에 대해서 문제 핵심을 파악해서 어떻게 풀 건지 생각해서 제시하고, 잘 조직하는 것이 활동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이민호 현재는 미세먼지 대응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하는 활동들을 찾아가고 있다. 미세먼지는 워낙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 함께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싶다. 해결될 때까지 맡은 분야를 계속 하고 싶다.
박솔비 시민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시대흐름에 따라 긍정적인 운동이 늘어나야 할 것 같다. 또한 우리활동을 전달할 때 일반시민들한테 어려운 단어들이나 개념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관심 끌어낼 수 있는 개념정의부터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혜정 20대 때는 도전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 활동에 대한 지향점을 갖고 나아가다보면 꿈을 꾼 것만큼 이루게 된다. 선배들의 좋은 점은 배우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아라. 선배들이 잘 못하는 것들은 후배들이 패기로 바로잡아줘야 한다. 후배들의 비판이 가장 정신 번쩍 든다. 여러분의 비판이 조직에 신선한 문화를 가져온다. 건강한 조직은 선배와 후배들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맙다. 후배님들.
정리 | 김은숙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미디어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