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별을 따라간 곳 동아시아의 안부를 묻다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가 공동주최하는 피스앤그린보트는 2005년 8월 첫 출항을 시작으로 매년 아시아를 항해하며 환경과 평화를 위한 항해를 하고 있다. 피스앤그린보트라는 배 안에서 한국과 일본 시민들은 함께 생활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생명을 위해 지혜와 경험을 나눈다.  

2013년 10월 19일 피스앤그린보트는 6번째 여정을 떠났다. 한국인과 일본인 1000여 명을 실은 피스앤그린보트는 부산에서 출발해 바다 위에 별 모양을 그리듯 대만 지룽, 일본 오키나와(태풍으로 회항), 중국 상하이,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28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동아시아 바다 위 별을 따라간 곳, 그 이야기를 담는다.  


대만 투청에서 만난 류 선생의 꿈

대만 투청에 사는 류 선생은 농부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는다. 퇴비도 음식물쓰레기로 만들어 사용한다. 활달하고 웃음 많은 그녀, 하지만 지역에서는 문제적 인물로 찍혔다. 개발에 맞서 토지를 지키려고 한 그녀의 행동이 정부와 경찰에 찍힌 것이다.

그녀가 사는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탄약고가 있었다. 대만정부가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주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하고 1955년 탄약고를 만들었다. 면적만 200평에 달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탄약고 때문에 주민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군인들은 마을 입구에 서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했고 저녁 8시 이후에는 차 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탄약고에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다. 일상이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고향을 버릴 수 없었다. 호미를 들고 땅을 일궜다. 마을 전체를 유기농 마을로 만든 것이다. 물이 풍부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덕분에 농사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와 주민들은 근처 지역의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도시민들에게 텃밭도 분양했다. 그러던 중 2006년 한 마을에서 탄약고가 폭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녀의 마을에서도 탄약고 철수 운동이 벌어졌고 이듬해인 2007년 정부는 탄약고 철수 및 이전을 결정, 현재는 탄약고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야 마을을 되찾았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부의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도로를 내고 상업단지와 주택단지를 만들고 교도소까지 이곳으로 이전해오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 계획대로 개발이 된다면 주민들이 그동안 일궈온 유기농지는 물론 자연생태계까지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탄약고 때문에 개발이 되지 않은 대신 희귀조류 30여 종, 희귀식물 70여 종이 서식하는 생태계보고이며 타이베이 시 주변에서 반딧불을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미 대만의 많은 농촌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땅을 빼앗겼다. 콘크리트는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땅은 모든 것을 키워낸다. 우리는 이대로 농사를 짓고 싶을 뿐”이라며 류 선생은 호소했다. 그리고 한 가지 작은 소망도 더했다. “탄약고가 있던 자리에 학교를 만들고 싶다. 탄약고과 자연생태계를 통해 평화와 생명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피스앤그린보트 탑승자들은 그녀와 투청 주민들의 꿈을 응원했다. 


후쿠시마 다음은?  

후쿠오카 나가타항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사가현 겐카이 마을이다. 10월 27일 일요일, 공원은 주민들로 북적였다.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에 참여한 주민들이다. 겐카이 마을엔 총 4호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전문가들은 현재 운전중인 일본 내 핵발전소 가운데 겐카이 발전소 1호기가 사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겐카이 3호기는 MOX 연료를 사용하는 플루서멀이다. MOX 연료는 사용한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우라늄과 혼합한 연료로 MOX 연료를 사용하는 원전은 그만큼 더 사고 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마을에 핵발전소가 세워진 것은 40년 전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해왔다는 나리토미 씨는 1975년 당시 지역의 정치인과 전력회사가 단합해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했다고 전한다. 지역발전을 기대한 주민들도 있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 지역경제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7000명의 지역주민 중 겐카이 핵발전소에 고용된 이가 600명이나 되고 직간접적으로 핵발전소와 관련 있는 이는 전체 주민의 70퍼센트에 달한다. 전력회사는 학교 건설 지원금 등 다양한 형태로 지자체에 지원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어업조합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진행되자 전력회사는 어업조합에 10억 엔을 지원했다. 어업조합은 와해됐고 반대활동도 흐지부지됐다. 전력회사는 이런 식으로 반대운동을 와해시켜 왔다.  

때문에 사가현에서 핵발전소 반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리토미 씨는 “큰 사고가 일어나야 사람들이 알까 싶었다. 그런데 2011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지역 여론은 변했다. 핵발전소 안전 신화에 금이 갔고 핵발전소를 없애야 한다는 주민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틀 전에 전력회사와 정부에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때 대책이 있냐고 물었더니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지금부터다.”라고 그는 기대했다.  

사가현에 거주하며 ‘겐카이 핵발전소 플루서멀 재판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시마루 하츠미 씨 역시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깨졌다고 말한다. “핵발전소에서 심야에 방사능 가스를 내보낸다는 제보를 듣고 전력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력회사 과장에게도 물었다. 역시 답이 없었다.”라며 그녀는 전한다. “일본정부와 전력회사는 핵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으면 전력이 부족할 것이며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기를 아껴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 전역은 아주 더웠지만 원전은 1기만 가동됐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탈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피스앤그린보트에서 만난 사람

핵 설계하다 핵 반대로 돌아선 마사시 고토 씨

마사시 고토 씨는 1989년부터 19년간 도시바에서 원자로 격납용기를 설계하는 일을 했다. 격납용기는 핵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자로와 부속장치로부터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는 방사선 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치하는 용기다. 핵 발전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핵 발전이 정말 안전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에 그는 기술자로 본 핵 발전 안전의 문제점에 대해 잡지나 인터넷에 익명으로 제보하기도 했다. 그가 우려했던 일들은 결국 2011년 3월 11일 현실로 나타났다. “교수나 과학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양심을 버리고 거짓말 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가 일었다. 물론 나도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기술자의 눈으로 본 원전의 진실을 알려야겠다.”라며 그날 이후 공개적으로 핵 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핵 발전 반대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일본 물고기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걱정은 당연하다. 일본에서도 검사를 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오염을 측정하는 건 불가능하고 오염수를 완벽하게 막는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대한 위험을 막기 위해 지하수가 더 이상 흘러내려오는 것을 막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염수보다 원전 재가동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지진 때문인지 사고 때문인지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은 후쿠시마 사고보다 더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라며 “정부는 안전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안전대책이 정말 작동될 수 있는지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사고가 나야 무엇이 안 되는지 알게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 핵발전소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자연현상이라는 것은 지진이나 쓰나미뿐만 아니라 태풍, 번개, 폭설도 있다. 이런 자연현상들의 조합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드리마일 사고는 자연현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작업자와 점검자의 실수가 겹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노후 원전에 대해 우려했다. “오래된 원전의 격납용기 안전밸브는 유사시에 부서져 버릴 수도 있다. 안전밸브가 파괴되면 압력을 조절할 수 없고 결국 격납용기가 폭발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또 “금속은 깨지기 쉬운 성질로 변하는 온도가 있는데 수명이 오래된 금속일수록 그 온도가 높고 위험하다. 유사시 원자로 압력용기에 냉각수를 부을 경우 압력용기가 균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핵발전소의 최악 시나리오다. 후쿠시마가 별게 아닐 정도로 최악의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일본 전문가들이 금속 상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한국이 일본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나왔다.”라고 경고했다. 

“원자력발전소는 러시안룰렛과 같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가 러시안룰렛 대상이다. 핵발전소는 우리 목숨과 직결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하게 알 권리가 있다. 안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왜 안전하다는 것인지 들을 권리가 있다. 납득할 때까지 질문을 해야 한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측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절대 조건이다. 이것은 찬성 반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 확보가 되어 있는지, 그것에 대해 묻는 것이다.”라고 고토 씨는 당부했다.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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