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Friends of the Earth 83] SNS에선 볼 수 없는 불편한 진실들

2019-01-01

인도네시아 작은 시골마을 호숫가에 위치한 나무집 ⓒ김혜린

하루하루 버티며 정신없이 살다가 불현듯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멈춘다는 것은 뒤처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을 고르고 천천히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운이 좋으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당연하게 혹은 중요하게 여겨왔던 수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연말과 새해에 이런 순간이 가장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아직 2018년과 2019년 사이 그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는 분들에게 잠시 멈춰볼 것을 제안하며 글을 시작한다. 

 

국가와 자본에 빼앗긴 삶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극한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이런 저런 말로 포장해도 결국은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소비와 소유로 점철된 쳇바퀴를 끊임없이 굴려야만 지속가능한 삶. 특히나 도시에서의 삶은 소비하지 않고서는 변변한 놀거리를 찾기조차 힘들다. 많은 이들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발전한다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삶의 패턴은 소비를 중심으로 점점 비슷해진다. SNS 피드에는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 메워진다. 이쯤 되면 나의 소비 행위 전반에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인 선택’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새벽 4시, 온 동네 닭이 우렁차게 운다. 닭이 정말 ‘꼬끼오’하고 우는 구나. 비현실적이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하루를 시작하다니. 마을 사람들은 이미 일하러 나갔고, 게으른 외국인만이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뜬 채 거실로 나온다. 노릇노릇한 바나나 튀김과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곳은 인도네시아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나무로 지어진 널찍한 집 주변에는 텃밭이 있고 그곳에 쳐진 얕은 울타리를 경계로 가축들이 노닌다. 부엌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면 곧장 호숫가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 시간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열대림 파괴로 오랑우탄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김혜린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정든 고향에서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안을 정부와 기업이 빼앗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국토의 약 70퍼센트가 산림지대로 세계 제 2위의 열대림을 보유한 나라다. 숲은 사람들이 땀 흘려 노력한 만큼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편히 쉴 안식처와 일용할 양식,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땅 등. 사람들은 숲이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업에 사업허가권을 남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숲과 그곳에 깃든 생명체들은 힘없이 아스러졌다. 카사바, 코코넛, 양배추, 쌀, 천연 고무 등 여러 작물과 다양한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던 숲은 처참히 파괴되고 석탄광산 혹은 거대한 단일작물농장(플랜테이션)으로 바뀌었다.  


존중받지 못하는 원주민들

국가와 자본 권력에 의해 선조 때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과 고유한 문화를 가진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이 인도네시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흔히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미국의 4개 주를 잇는 약 1200마일의 초대형 송유관 건설 사업인 ‘다코타 엑세스’가 대표적인 예다. 예산 규모 38억 달러에 달하는 다코타 엑세스는 송유관을 통해 하루 47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한다는 계획으로,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인 ‘스탠딩 록’ 구간의 공사만 남겨둔 상황이다. 스탠딩 록 구간은 원주민들의 성지이자 선조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으로 특별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곳에는 원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인 미주리 강 저수지가 있다. 환경단체와 원주민들은 원유 유출 시 초래할 식수오염과 환경파괴, 원주민 주권 침해 등을 이유로 약 9개월간 공사 예정지 맞은편에서 반대 농성을 펼쳐왔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지난 2016년 마지막 단계 건설을 불허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하도록 했지만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다코타 액세스 신설을 재협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프리카의 부시맨, 아메리카의 인디언, 용산의 철거민. 이들은 모두 원주민이라 불린다. 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사전적 의미처럼 그 지역에 본디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제도권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점이다. 송유관, 아파트, 군사기지, 대규모 개발사업장 등 다양한 이유와 필요로 인해 원주민들은 삶에 터전에서 쫓겨난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과 대체되는 그 어떠한 것에 비해서도 모든 면에서 약자다. 사실상 결정권한이 없고,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킬 수도 없다. 정치권력과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대부분의 원주민은 가난하다. 개발 세력은 가난한 이들에게 사업의 과실을 나눠주겠다며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주민이 이주를 거부하고 사업에 반대하는 순간 무언가 더 얻어내려고 하는 폭력적인 집단이기주자로 매도해버린다. 원주민들이 말하는 생명, 평화, 생태적인 가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그들을 평가한다.  이렇게 정치, 경제적으로 약자인 원주민은 그들의 삶의 양식과 존재 자체를 존중받지 못한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존재, 그래서 문명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럼에도 아직 미개하여 개발의 필요성을 모르는 존재로 치부된다. 


소비 충족을 위해 사라지는 것들

SNS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에서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 가득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지역 주민들이 어떤 모습인지. 프라이빗 비치가 아닌 구역에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떠다니는지. 오늘도 우리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도넛, 빵, 초콜릿과 같은 간식에 들어가는 팜유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도네시아 산림이 사라진다.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과 함께. 

우리의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파괴되는 누군가의 오랜 삶과 전통. 이런 모습은 왜 SNS에서는 볼 수 없을까.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이루어졌다는 불편한 사실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한 컷 프레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삶과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획일화된 가치 속에 누군가의 삶은 미개한 것으로 간주되고, 너무나도 손쉽게 파괴된다. 

한 해의 시작이다. 당신에게는 잠깐 멈추고 우리 삶을 구성해주는 수많은 생명의 다채로움을 축하할 여유가 있는가.

 

 글 | 김혜린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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