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엘레지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새끼가 부리로 아비의 부리를 두드린다. 

아비의 부리에서 새끼의 부리로 삭은 오징어, 크릴, 정어리와 함께 라이터, 페트병 뚜껑, 칫솔, 부서진 신용카드 조각, 부러진 볼펜이 넘어간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바다에는 물고기만큼 많은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알바트로스와 펭귄은 그들의 공통조상이 지구에 처음 나타났던 백악기 말부터 바다에서 먹이를 구해왔다. 6500만 년 이상 안전한 밥상을 차려주던 바다였다. 알바트로스는 색색으로 빛을 내며 헤엄치는 플라스틱을 물고기와 차별할 이유가 없다.

바다를 바라본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어머니,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그들의 조상이 나타났던 6500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정말 그런가

플라스틱산업은 출현 이후 위기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산업은 원유에서 다양한 부산물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의 자식들 가운데 하나다. ‘검은 황금’을 강철 격벽 방마다 가득 실은 수백 미터짜리 유조선들이, 먼바다를 건너와 대륙의 많은 나라 해안으로 흩어진다. 석유화학공단의 불빛 속에 원유가 끓어오르고 유증기가 피어오른다. 그 뒤를 따라 휘발유가 흘러나오고 다시 나프타, 경유, 등유, 역청 등이 점점 더 높은 온점에서 분리된다. 

 원유에서 분리된 나프타가 플라스틱의 원료 물질이다. 여기에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노닐페놀 같은 화학물질들이 첨가되어 비닐에서 페트까지 다양한 재질의 화학합성 수지, 섬유, 그리고 고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변의 굴뚝과 크랙커에서 태어난 플라스틱은 세상 모든 곳의 공장으로 실려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제품에 들어간다. 마트의 비닐봉지와 페트병, 병원의 주사기와 혈액백, 에너지제로하우스의 단열재와 그 집 소녀의 바비인형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없다. 그 모든 제품이 다시 플라스틱 포장재에 싸여 출하된다.

태평양 한 복판 사람 없는 섬, 미드웨이. 모자는 '밥'을 구하러 '바다'로 나아간 아비를 기다린다. 알바트로스는 암수가 번갈아 새끼 먹이를 구해온다

바다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있고 그만큼 많은 손쉬운 먹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해양에 약 1억50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존재한다

부모의 부리를 두드려 먹이를 받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야 할 새끼가 죽는다

죽음의 원인은 바람이 새끼의 살을 말려 속을 보여 줄 때가 되어야 알 수 있다

튼튼하지만 값싼 덕분에 플라스틱은 쉽게 쓰레기로 버려져 땅에 묻히거나 태워진다. ‘운 좋게’ 재활용 상자와 소각장 컨테이너를 피해 ‘함부로’ 버려진 것들은 자유의 몸이 된다. 땅을 구르다가 하천과 강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 파도에 부딪혀 더러 쪼개지기도 하면서 그들은 ‘제국행 환류 열차’에 올라탄다. 종착역은 한국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그들만의 제국, 플라스틱 섬이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부딪히고 파도에 쓸려 10억분의 1미터보다 작아진다. 작아지면서 바다에 흘러든 갖가지 화학물질을 빨아들인다. 그 사이 먹기 적당한 크기의 것들을 고래, 바다거북, 다랑어, 새우, 오징어 그리고 알바트로스가 먹는다. 아주 잘게 쪼개진 것들은 바다 먹이사슬의 1층 거주자, 플랑크톤이 먹는다. 그 먹이사슬 전체를 인간이 먹는다.

딱딱 딱딱딱!

해변의 굴뚝에서 가장 먼 섬 미드웨이, 알바트로스의 번식장에서 새끼가 어미 부리를 두드린다. 그 한 끼를 먹이려고 1000킬로미터의 비행에서 돌아온 어미의 부리가 열린다. 알록달록 플라스틱 조각들이 ‘꼴깍’ 새끼 목으로 넘어간다. 식곤증에 잠든다.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바람에 마른 깃털 날리고 흰 뼈와 부리가 남는다. 페트병 마개, 1회용라이터, 칫솔, 깨어진 그릇조각들도 남는다. 마침내 뼈도 부리도 사라진다. 플라스틱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진 / 크리스 조던 포토그래퍼・다큐멘터리스트

글 / 박현철 편집주간 


크리스 조던의 아름다움 너머 展

크리스 조던(Chris Jordan)은 태평양 한복판, 미드웨이섬을 10여 년간 오가며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왔다. 2009년 첫 발표한 ‘미드웨이’시리즈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죽어간 어린 알바트로스의 사진이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2003년부터 현대인의 ‘거대한’ 소비 결과를 예술로 치환한 ‘숫자로 그린 자화상’,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 등을 발표했고 최근 세계 곳곳의 숲과 바다를 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성곡미술관에서 2월22일~5월5일 사이 열리는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에는 사진, 비디오아트, 다큐멘터리를 포함, 초기부터 현재까지 작품 80여 점이 소개된다. 특히 멀고도 가까운 숲과 바다를 담은 작가의 대형 신작들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서울 전시 이후 5월 말 부산, 8월말 순천, 10월 제주 순으로 전국 순회전시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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