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호남평야 길목에서 GM벼 재배라니 이건 재앙!"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농진청의 유전자변형식물 재배 격리 포장시설. 농진청은 이곳에서 GM벼 등을 실험재배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전북 완주군 이서면. 8월의 들녘은 초록으로 일렁인다. 그 들녘에서 농민들은 애가 탄다. “저기 있는 게 유전자조작 벼래요. 어떻게 이리 허술하게 관리할 수 있어요? 이제 곧 벼꽃이 필 텐데 어떡해요. 더 늦기 전에 뽑아 치워야 하는데.” 농민이 가리킨 곳은 농업진흥청(이하 농진청) 농업과학원 산하 농업생명자원부 옆의 농지였다.

지난 8월 8일 농민들과 전북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농촌진흥청 GM작물 개발반대 전북도민행동(이하 전북도민행동)은 농진청 농업과학원 산하 농업생명자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곳이 GM벼 실험재배지라고 지목했다.

농민들이 지목한 농지는 국가기관이 진행하는 GM벼 실험재배지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했다. 모기장 같은 망이 재배지 둘레에 쳐져있을 뿐 위는 아무런 차단장치 없이 개방돼 있어 일반 노지와 다를 바 없었다. “저것도 이틀 전에야 쳤어요. 국정감사 대비해 부랴부랴 공사하는 거죠. 저것만 설치하면 뭐하냐고요. 저 위로 오리도 날아들고 참새들도 들어가고 곤충들도 들어갔다 나왔다하는데.”

 

호남평야 길목에서 GM벼 실험 재배하는 농진청

농진청은 2011년 2월 <GM작물개발사업단>을 출범시키면서 본격적인 GM작물 개발에 뛰어들었다. 기후변화 등 미래를 대비하고, 다국적 기업의 GM작물 관련 원천특허 독점에 대응해 국가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GM작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열린 유전자변형생명체 포럼 세미나에서 GM작물개발사업단장은 “올해 안에 GM벼에 대한 안전성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본격화됐다.

농민, 소비자, 시민사회는 정부의 이같은 계획이 GM벼 상용화 시도라며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농진청은 “밀폐된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을 통해 레스베라트롤 성분만 추출하여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농진청은 GM벼 반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이 같은 해명을 되풀이했다.

8월 5일 『함께사는길』이 농진청에 유전자조작 벼 재배지 확인을 요청했을 때에도 농진청은 논에서 유전자조작 벼를 재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농진청 대변인실은 전화통화에서“농민들의 반발이 거세 시험재배를 하고 있지 않다. 현재 건물 안 실험실에서만 재배하고 있다. 상용화시킬 것도 아니고 방출실험도 안하는데 농민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의 이런 해명과 입장은 8월 8일 전북도민행동의 기자회견 이후 달라졌다. 대변인실은 ‘유전자조작 실험재배에 대해 잘 모른다, 담당자에게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바꿨다. 확인 결과 농민들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농진청은 농업생명자원부 옆 농지가 유전자변형작물 연구용 시설이 맞다고 인정했다. 다시 말해 유전자조작 실험재배 격리포장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농진청은 GM벼의 유전자 이동에 관한 품종별 비교 연구(300㎡)를 비롯해 제초제저항성 GM들잔디의 환경위해성 평가(1200㎡), 국내개발 GM 유채의 유전자 전이에 따른 교잡종 적응도 분석 (200㎡), GM 콩 및 야생콩 교잡종의 잡초화 가능성 평가 및 장기 영향평가(2000㎡) 등의 연구를 내세워 GM벼, GM들잔디, GM유채, GM콩 등을 재배하고 있다.

농진청은 GM작물 시험재배에 대해 전문가심사위원회의 사전 심의·승인을 받고, 격리포장 구비조건 및 조치사항을 준수하여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농민들과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주민들은 알 필요 없다?

호남평야 길목에 자리한 농진청의 유전자변형식물 재배 격리 포장시설 ⓒ함께사는길 이성수

 

농민들은 GM벼 개발 추진에 앞장 선 곳이 농진청이란 사실에 더 분노한다. 2014년 농진청이 전북 혁신도시로 이전할 때만 해도 인근 농민들은 환영했다. 평생을 일군 문전옥탑을 농진청에 내주기도 했다. “농진청이 농업을 진흥하고 농업기술을 발전시키는 곳이잖아요.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바로 옆에서 보고 또 농진청이 선진 농업기술을 지역사회에서 실현한다며 이곳이 지붕 없는 농업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죠.”

특히나 이곳은 완주군의 로컬푸드 성공에 힘입어 친환경농법을 하는 농민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농진청이 들고 온 것은 GM 작물이었다. 농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농진청은 마을과 도로 사이를 두고 유전자조작 사과를 실험재배하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이를 처음 발견하고 주민들에게 알린 이는 인근에서 유기농법으로 쌀을 생산하는 농민 여성만 씨였다. “도로 옆에 철조망이 쳐지고 표지판이 붙어 있길래 봤더니 ‘유전자변형생물체 사과 시험재배지’래요. 농진청에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인근에 사과 재배하는 곳도 없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별 문제가 없대요.” 주민들은 걱정이 됐지만 국가기관에서 진행하는 시설이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던 시험재배지 비닐이 돌풍에 날아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설치한 지 1년도 안 된 비닐이 태풍도 아니고 돌풍에 날아갔어요.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냐고 했더니 농진청 하는 말이 설치업자가 불량 비닐을 설치해서 일부러 뜯어놓은 거라는 거예요.”

주민들은 농진청이 거짓말만 한다고 분노한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하면 왜 공개를 안 해요? 적어도 인근 농민들에게는 알려줘야죠. 아무 말도 안하고 저렇게 다 심어놓으면 어쩌란 말이에요.”

이에 대해 농진청은 승인된 GM작물 시험에 대해서는 연구책임자, 작물, 재배지역, 재배면적, 시설등록번호 등의 관련 정보를 관련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며 농민들에게 숨긴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재배지와 작물 재배에 대해 농민들과 상의할 필요가 없으며 그 결과는 농민들이 직접 알아서 찾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설명이다.

 

너무 허술한 GM벼 실험재배지 

전북도민행동은 지난 8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식량안보 위협하는 GM 작물 시험재배 중단하고 시험재배장 즉각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농진청 인근 마을과 유기농단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이곳은 김제, 고창으로 이어지는 호남평야의 길목이다. GMO 유전자가 시험재배지를 벗어나는 유출사고가 생기면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가 GMO에 오염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농진청은 외부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관련 법규에 따라 재배하고 있으며 주변지역으로 혹시라도 있을 종자의 유출이나 꽃가루 비산 등에 의한 생태계 영향을 조사하기 위하여 매년 2차례 주변지역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설명은 이미 유전자조작 사과 재배지를 지켜본 농민들에게 전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GM재배지 안에 침수정이 있다고하는데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어요. 비가 오면 GM시험재배지에 물이 마을 논으로 다 쏟아져 들어와요. 새들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해요. 관리규정을 전혀 준수하지 않고 있어요.”라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 GMO 국가에서 ‘GMO 오염’ 사례는 적지 않다. 바람이나 곤충, 새 등에 의해서 혹은 운송 과정에서 GMO가 인근 비GMO 재배지에 들어가 번식해 낭패를 겪는 농가가 적지 않다. 시험재배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세계를 발칵 뒤집힌 유전자조작 밀 사건이 대표적이다. 오리건 주의 한 농부가 봄밀과 겨울밀 재배 시기 사이에 자라난 밀을 없애려고 제초제를 뿌렸다가 일부가 죽지 않자 오리건 주립대에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유전자조작 밀이었다. 거대 농업기업인 몬산토가 1998∼2005년 개발했지만 농무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상업화를 포기했던 종자다. 2014년 9월 몬타나주립대학 연구시설에서도 승인 받지 않은 유전자조작 밀이 발견됐다. 이 연구시설은 2000~2003년까지 유전자조작 밀을 실험 재배했다. 두 사건은 철저히 차단된 실험재배에서도 결코 100퍼센트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성만 씨는 “어떤 교수가 심포지엄에 발제자로 나서서 지금 떠도는 GMO 유해성은 다 괴담이고 농진청이 안전하게 재배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헛소문을 터트린다고 하대요. 현장을 확인하고 말을 해야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GM벼는 식량안보 위협하는 사드

전북도민행동은 농진청이 관련 법률에 따른 관리규정도 전혀 준수하지 않고 시험재배를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시험재배를 중단하고 시험재배장을 즉각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유전자조작 작물을 재배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지만 그 어느 나라도 주식을 유전자조작하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이 재배하는 유전자 콩, 옥수수, 카놀라 등은 가공식품 재료로 쓰이거나 사료용이다. 우리는 국가가 나서서 주식인 쌀을 갖고 위험한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농민들만 절박한 문제인가. 우리는 안전한 밥상을 지킬 수 있을까.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 아래 GM벼는 야속하게도 잘도 자란다. 농민들은 애가 탄다. “GM벼시험재배는 식량안보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허무는 최악의 자충수예요. 국민들이 쌀을 지켜주세요. GM벼를 추방해야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습니다.”

들녘에 선 농심은 절박하다.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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