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이 지난 지금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이 벌어졌다. 영국 항의 방문 기자회견장에 모인 취재진들 ⓒ김은숙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대하면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의문이 몇 개 있다. 하나, 왜 사건이 알려진 지 5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거지? 둘, 검찰은 왜 이제야 수사팀을 꾸려서 수사에 나선거지? 셋, 다른 나라에서는 만들지도 팔지도 않았다는데 왜 한국에서만 만들고 판 걸까? 넷,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걸까? 다섯, 제조사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제품이 위험한 걸 몰랐을까? 여섯, 제품판매가 17년간이나 지속되었다는데 왜 2011년에야 문제가 불거진 걸까?
검찰 수사, 사과 그리고 불매운동까지
지난 1월부터 5월말까지의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올초에 개편된 검찰 수뇌부가 이 사건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갖고 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시작했고 압수수색 등을 통해 예상외의 성과를 올렸다.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사건이 널리 알려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옥시의 은폐조작 행위에 도매금으로 덤터기를 쓸까 우려한 롯데가 기습적으로 공식사과하면서 제조판매사들 간의 침묵의 카르텔이 깨졌고 언론의 보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언론의 관심이 홈플러스로 향하자 홈플러스는 할 수 없다는 듯 사과의사를 밝혔고 며칠 후 사장이 직접 사과했다. 언론의 관심은 이번엔 쉽게 식지 않았고, 옥시의 전 사장 신현우를 소환할 때 롯데의 사과 때보다 더 많은 보도가 쏟아졌다. 옥시측이 소위 이메일 사과를 했지만 비난의 목소리에 묻혔다. 피해자모임이 임시총회를 열고 옥시제품 불매운동과 집단 민사소송을 결의하자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받아 전국적인 옥시불매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깜짝 놀란 옥시의 외국인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지만 너무 늦었고 피해대책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영국항의방문단이 옥시 영국본사의 주주총회장을 찾아가 본사의 책임을 촉구했고 BBC, AP, 로이터와 같은 국제 언론들은 이 문제를 크게 다뤘다. 외국인 임원에 대한 수사를 미적대던 검찰은 옥시의 재정담당 이사를 소환한데 이어 현재 구글코리아 사장이자 옥시의 전 외국인 CEO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총선 내내 이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던 정치권이 여소야대의 변화 속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나둘 이 문제를 언급했고 청문회, 특별법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거론하자 뒷짐 지고 있던 환경부가 할 수 없다는 듯 나서서 피해신고를 재개하겠다고 한 발, 건강영향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 지원 대상을 늘리겠다고 한 발, 살생물제 규제법을 만들겠다며 다시 한 발 그렇게 뒷걸음 쳤다. 그러다 환경부장관이 국회에서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할 일 없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피해자를 왜 만나냐’는 식의 발언을 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샀다. 환경장관을 경질하라는 동아일보의 사설을 시작으로 ‘옥시의 대변인 환경부장관을 해임하라’는 시민사회와 야당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266명 사망도 빙산의 일각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 환경부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춘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통해 생활 속의 여러 화학물질함유 제품의 안전문제가 폭넓게 점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점 중 유독 한 가지 문제가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데 바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가?’라는 질문이다. 정부와 학계의 조사를 근거로 많게는 200만 명에서 적어도 15만 명에 이르는 사용자들이 고농도에 노출되었거나 건강피해를 경험했다는 추산이 제시되고 있다. 4월 25일까지 정부와 민간으로 접수된 피해신고 수가 1848명이고 이중 266명이 사망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숫자이지만 잠재적인 피해자와 비교하면 1퍼센트도 채 안 된다. 글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5월 2일 옥시 사장이 소환하는 날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의 외국인 임원도 모두 소환해 수사하라는 요구와 함께 검찰청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검찰은 5월 19일 옥시의 재무담당 독일인 이사를 소환조사했고 22일에는 미국인 존리 전 대표이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이렇게 검찰은 외국인 임원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신고되지 않는 잠재적인 피해자를 찾아 나서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느 언론사도 신고되지 않는 피해자를 추적하지 않고 있다. 벌써 한 달 넘도록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정작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사건의 몸통은 드러나지 않고 있고 드러내려는 사법당국과 언론의 움직임도 없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왜 진즉에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느냐며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검찰이 주는 단발적인 기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탐사보도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 찾아 나서야

2011년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 ⓒ함께사는길 이성수
잠재적인 피해규모가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어서 도무지 파고들 엄두를 못 내는 것일까? 아니면 실체가 드러난 후에 감당하지 못할 사회적 부담이 두려운 걸까?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고 병원을 통한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벌써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피곤함이 번지고 있기 때문일까?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환경보건학 박사
5년이 지난 지금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이 벌어졌다. 영국 항의 방문 기자회견장에 모인 취재진들 ⓒ김은숙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대하면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의문이 몇 개 있다. 하나, 왜 사건이 알려진 지 5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거지? 둘, 검찰은 왜 이제야 수사팀을 꾸려서 수사에 나선거지? 셋, 다른 나라에서는 만들지도 팔지도 않았다는데 왜 한국에서만 만들고 판 걸까? 넷,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걸까? 다섯, 제조사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제품이 위험한 걸 몰랐을까? 여섯, 제품판매가 17년간이나 지속되었다는데 왜 2011년에야 문제가 불거진 걸까?
검찰 수사, 사과 그리고 불매운동까지
지난 1월부터 5월말까지의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올초에 개편된 검찰 수뇌부가 이 사건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갖고 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시작했고 압수수색 등을 통해 예상외의 성과를 올렸다.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사건이 널리 알려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옥시의 은폐조작 행위에 도매금으로 덤터기를 쓸까 우려한 롯데가 기습적으로 공식사과하면서 제조판매사들 간의 침묵의 카르텔이 깨졌고 언론의 보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언론의 관심이 홈플러스로 향하자 홈플러스는 할 수 없다는 듯 사과의사를 밝혔고 며칠 후 사장이 직접 사과했다. 언론의 관심은 이번엔 쉽게 식지 않았고, 옥시의 전 사장 신현우를 소환할 때 롯데의 사과 때보다 더 많은 보도가 쏟아졌다. 옥시측이 소위 이메일 사과를 했지만 비난의 목소리에 묻혔다. 피해자모임이 임시총회를 열고 옥시제품 불매운동과 집단 민사소송을 결의하자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받아 전국적인 옥시불매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깜짝 놀란 옥시의 외국인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지만 너무 늦었고 피해대책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영국항의방문단이 옥시 영국본사의 주주총회장을 찾아가 본사의 책임을 촉구했고 BBC, AP, 로이터와 같은 국제 언론들은 이 문제를 크게 다뤘다. 외국인 임원에 대한 수사를 미적대던 검찰은 옥시의 재정담당 이사를 소환한데 이어 현재 구글코리아 사장이자 옥시의 전 외국인 CEO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총선 내내 이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던 정치권이 여소야대의 변화 속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나둘 이 문제를 언급했고 청문회, 특별법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거론하자 뒷짐 지고 있던 환경부가 할 수 없다는 듯 나서서 피해신고를 재개하겠다고 한 발, 건강영향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 지원 대상을 늘리겠다고 한 발, 살생물제 규제법을 만들겠다며 다시 한 발 그렇게 뒷걸음 쳤다. 그러다 환경부장관이 국회에서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할 일 없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피해자를 왜 만나냐’는 식의 발언을 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샀다. 환경장관을 경질하라는 동아일보의 사설을 시작으로 ‘옥시의 대변인 환경부장관을 해임하라’는 시민사회와 야당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266명 사망도 빙산의 일각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 환경부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춘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통해 생활 속의 여러 화학물질함유 제품의 안전문제가 폭넓게 점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점 중 유독 한 가지 문제가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데 바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가?’라는 질문이다. 정부와 학계의 조사를 근거로 많게는 200만 명에서 적어도 15만 명에 이르는 사용자들이 고농도에 노출되었거나 건강피해를 경험했다는 추산이 제시되고 있다. 4월 25일까지 정부와 민간으로 접수된 피해신고 수가 1848명이고 이중 266명이 사망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숫자이지만 잠재적인 피해자와 비교하면 1퍼센트도 채 안 된다. 글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5월 2일 옥시 사장이 소환하는 날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의 외국인 임원도 모두 소환해 수사하라는 요구와 함께 검찰청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검찰은 5월 19일 옥시의 재무담당 독일인 이사를 소환조사했고 22일에는 미국인 존리 전 대표이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이렇게 검찰은 외국인 임원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신고되지 않는 잠재적인 피해자를 찾아 나서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느 언론사도 신고되지 않는 피해자를 추적하지 않고 있다. 벌써 한 달 넘도록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정작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사건의 몸통은 드러나지 않고 있고 드러내려는 사법당국과 언론의 움직임도 없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왜 진즉에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느냐며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검찰이 주는 단발적인 기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탐사보도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 찾아 나서야
2011년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 ⓒ함께사는길 이성수
잠재적인 피해규모가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어서 도무지 파고들 엄두를 못 내는 것일까? 아니면 실체가 드러난 후에 감당하지 못할 사회적 부담이 두려운 걸까?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고 병원을 통한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벌써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피곤함이 번지고 있기 때문일까?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환경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