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2015년 11월 13일 시민들이 반올림에 제보된 75명의 삼성직업병 사망자들을 대신해 방진복을 입고 삼성본관 앞을 행진했다
지난 11월 24일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직업병 대책을 발표했다. 2014년 10월에 발족한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공장의 유해요인과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조사한 후 제안한 보상제도, 안전보건 개선방안 등을 회사가 모두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에서 시작된 반도체 직업병 논란이 SK로까지 번지게 된 계기는 한겨레가 보도한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라는 기사였다. 2014년 7월에 그 기사가 나온 후, 1년 4개월 만에 SK는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원조’격인 삼성전자의 상황은 어떨까. 2007년 3월, 고 황유미 씨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이 요원하다. 이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유미 씨의 아버지는 지금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중이다. 벌써 100일째다.
유사한 문제를 놓고, 두 기업에서 이토록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무얼까.
삼성과 SK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 약속
먼저 2010년의 삼성과 2014년의 SK를 비교해 보자. 당시 삼성은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에 대한 사실 관계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규명”하겠다며 처음으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2007년 11월(시민사회에서 대책위(지금의 ‘반올림’)를 꾸려 첫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후, 3년 여 만의 일이었다. SK는 2014년 10월 “객관적이고 정밀한 실태조사”를 약속하며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한겨레 기사가 보도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즉 두 기업은 대응 속도부터 많이 달랐다.
더욱 극명한 대비는 ‘누구에게’ 조사를 맡겼는가다. 2010년의 삼성은 ‘인바이런’이란 컨설팅 회사를 고용했다. 삼성은 이들을 “미국의 세계적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라 홍보했지만 국내외 시민사회에는 소위 ‘청부과학의 대표주자’로 더 알려진 회사였다. 산업현장에서의 크롬 노출, 베트남 전쟁에서의 고엽제 노출, 간접흡연 등의 위험성에 대해 자본이나 정부의 이익에 치우친 조사 결과를 만들어낸 전력이 있었다.
반면 2014년의 SK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라는 기구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외부인사 7인과 노사 각 2인으로 구성되었는데(총 11인), 외부 인사의 구성에는 회사가 관여하지 않은 채 산업보건전문가 5인, 법률전문가 1인, 시민단체(여성환경연대) 관계자 1인이 참여했다.
각각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모습은 어땠을까. 삼성은 2011년 7월 인바이런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사전에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고 현장 촬영과 녹음은 금지되었으며 두 장짜리 보도 자료만 배포되었다. 발표 내용은 “백혈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떠한 과학적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았다”, “노출평가결과 측정한 모든 항목에서 노출수준이 매우 낮게 나왔고 모든 노출위험에 대해 회사가 높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식이었는데, 그 근거나 조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015년 11월 산업보건검증위원회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누구나 참석 가능한 열린 공간이었고 촬영과 녹음도 자유롭게 허용되었으며, 20여 페이지의 자료가 배포되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도 공개한다고 밝혔는데, 그 보고서에는 ‘작업환경 내 유해인자 관리 실태 조사’ 및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조사’의 방법과 결과가 적혀 있었고, 그에 따른 ‘보상지원 방안’과 127개의 ‘산업안전보건 개선 방안’이 제안되어 있었다.
비슷한 목적의 자체 조사를 벌이며 삼성은 공장의 안전을 ‘홍보’하는 이벤트를 했지만, SK는 공장의 위험을 ‘진단’하는 말 그대로의 조사를 실시했던 것이다.
“안전하다” “알려 줄 수 없다”를 반복하는 삼성
‘인바이런’ 조사 이후에도 삼성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이미 2009년 서울대 조사에서 많은 문제가 지적이 되었고,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에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이 추가로 드러났으며, 2010년부터 지금까지 노동자의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뇌종양 등이 직업병 인정을 받았지만, 삼성은 정말 단 한 번도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이것은 2013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진단한 후, ‘안전보건 문화’에 관해 보고서에 적은 내용이다. 직업병 문제를 대하는 삼성의 일관된 태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 딱 이렇다.
삼성은 줄곧 “우리 공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삼성반도체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페이지를 올렸는데, 온통 “쾌적”, “안전” 투성이다. 외부 보고서의 내용을 왜곡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산안공단 역학조사, 2009년 서울대 조사,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이루어진 노동부 조사를 언급하며 “회사에서 근무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 조사들은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 공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근 AP통신이 보도한 직업병 문제 관련 기사에 대해 바로 반박문을 내면서도 “Samsung abides to all relevant laws regarding environmental safety at its facilities.”(삼성은 시설의 환경안전에 관한 모든 법률을 준수한다)라고 했다(2015. 12. 12.) 불과 3년 전 노동부 조사에서 2000여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었고(화성공장), “화학물질 관리 전반에 상당한 문제점이 관찰된다”는 진단을 받았던(기흥공장), 그 기업이 말이다.
또한 삼성은 내부 문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온갖 정보를 은폐해왔다. 산재 소송에서조차 “재해노동자가 취급하였거나 노출가능했던 화학물질 정보”, “공장 내 가스 및 유기화합물 누출 기록”, “엔지니어에게 배포한 환경수첩”,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노동자에 대한 보호구 지급 현황”, “공장의 중대재해 발생 현황” 등을 은폐해 왔다. 심지어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조사를 할 때는 노동자 측이 현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차단해 왔다. 공장의 안전문제를 지적한 ‘2009년 서울대 조사 보고서’, ‘2013년 산안공단 보고서’에 대해서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최근 ‘조정권고안’을 거부하고 자체 보상을 강행하는 과정은 이러한 태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4년 전 반올림 측에 교섭을 먼저 제안한 이도, 2년 전 반올림의 반대에도 조정위원회 도입을 강행한 이도, 모두 삼성이었다. 그런데 그 조정위원회가 삼성에 독립된 제3자(공익법인)로 하여금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권고안(전체적으로 SK가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통해 해결책을 도출한 방식과 유사하다)을 제시하자, 이를 거부한 채 자체 보상절차를 강행해 버렸다. 그 보상절차라는 것은 결국 보상대상 심사는 물론 보상액 산정까지 삼성이 직접하고, 누가 어떤 보상을 받는지는 삼성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외부를 통한 문제 해결의 경험 필요”
9년이 다 되어가도록 삼성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차가운 길 위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를 놓고, SK는 내부 문제를 드러내며 외부 전문가쪾시민단체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한 반면, 삼성은 내부 문제를 은폐하고 외부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단을 고집했다.
삼성의 이러한 모습은 비단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안전보건’ 문제와 관련하여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고집할 때 전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메르스 사태’를 통해 겪었다. 그래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결코 그 공장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업에게 외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이닉스에게는 이미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하이닉스는 이번에도 굉장히 중요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본다.”
2015년 12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과 하이닉스 사례로 본 반도체 직업병 문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형렬 직업환경의학과 교수(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의 발언 내용이다.
외부를 통한 문제 해결의 경험. 내가 아는 바로는 삼성은 아직 그러한 경험이 없다. 최근 2년간 SK가 보여준 모습이 간접경험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그런 걸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조직이다. 결국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이제라도 그런 경험을 갖도록, 직업병 피해당사자들이, 현장 노동자들이,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과 소비자들이 한 목소리로 힘 있게 요구해야 한다. 반올림이 70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많은 분들의 지지와 방문을 바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 | 임자운 반올림 상임활동가
사진제공 | 반올림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2015년 11월 13일 시민들이 반올림에 제보된 75명의 삼성직업병 사망자들을 대신해 방진복을 입고 삼성본관 앞을 행진했다
지난 11월 24일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직업병 대책을 발표했다. 2014년 10월에 발족한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공장의 유해요인과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조사한 후 제안한 보상제도, 안전보건 개선방안 등을 회사가 모두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에서 시작된 반도체 직업병 논란이 SK로까지 번지게 된 계기는 한겨레가 보도한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라는 기사였다. 2014년 7월에 그 기사가 나온 후, 1년 4개월 만에 SK는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원조’격인 삼성전자의 상황은 어떨까. 2007년 3월, 고 황유미 씨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이 요원하다. 이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유미 씨의 아버지는 지금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중이다. 벌써 100일째다.
유사한 문제를 놓고, 두 기업에서 이토록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무얼까.
삼성과 SK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 약속
먼저 2010년의 삼성과 2014년의 SK를 비교해 보자. 당시 삼성은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에 대한 사실 관계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규명”하겠다며 처음으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2007년 11월(시민사회에서 대책위(지금의 ‘반올림’)를 꾸려 첫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후, 3년 여 만의 일이었다. SK는 2014년 10월 “객관적이고 정밀한 실태조사”를 약속하며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한겨레 기사가 보도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즉 두 기업은 대응 속도부터 많이 달랐다.
더욱 극명한 대비는 ‘누구에게’ 조사를 맡겼는가다. 2010년의 삼성은 ‘인바이런’이란 컨설팅 회사를 고용했다. 삼성은 이들을 “미국의 세계적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라 홍보했지만 국내외 시민사회에는 소위 ‘청부과학의 대표주자’로 더 알려진 회사였다. 산업현장에서의 크롬 노출, 베트남 전쟁에서의 고엽제 노출, 간접흡연 등의 위험성에 대해 자본이나 정부의 이익에 치우친 조사 결과를 만들어낸 전력이 있었다.
반면 2014년의 SK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라는 기구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외부인사 7인과 노사 각 2인으로 구성되었는데(총 11인), 외부 인사의 구성에는 회사가 관여하지 않은 채 산업보건전문가 5인, 법률전문가 1인, 시민단체(여성환경연대) 관계자 1인이 참여했다.
각각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모습은 어땠을까. 삼성은 2011년 7월 인바이런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사전에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고 현장 촬영과 녹음은 금지되었으며 두 장짜리 보도 자료만 배포되었다. 발표 내용은 “백혈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떠한 과학적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았다”, “노출평가결과 측정한 모든 항목에서 노출수준이 매우 낮게 나왔고 모든 노출위험에 대해 회사가 높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식이었는데, 그 근거나 조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015년 11월 산업보건검증위원회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누구나 참석 가능한 열린 공간이었고 촬영과 녹음도 자유롭게 허용되었으며, 20여 페이지의 자료가 배포되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도 공개한다고 밝혔는데, 그 보고서에는 ‘작업환경 내 유해인자 관리 실태 조사’ 및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조사’의 방법과 결과가 적혀 있었고, 그에 따른 ‘보상지원 방안’과 127개의 ‘산업안전보건 개선 방안’이 제안되어 있었다.
비슷한 목적의 자체 조사를 벌이며 삼성은 공장의 안전을 ‘홍보’하는 이벤트를 했지만, SK는 공장의 위험을 ‘진단’하는 말 그대로의 조사를 실시했던 것이다.
“안전하다” “알려 줄 수 없다”를 반복하는 삼성
‘인바이런’ 조사 이후에도 삼성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이미 2009년 서울대 조사에서 많은 문제가 지적이 되었고,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에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이 추가로 드러났으며, 2010년부터 지금까지 노동자의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뇌종양 등이 직업병 인정을 받았지만, 삼성은 정말 단 한 번도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이것은 2013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진단한 후, ‘안전보건 문화’에 관해 보고서에 적은 내용이다. 직업병 문제를 대하는 삼성의 일관된 태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 딱 이렇다.
삼성은 줄곧 “우리 공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삼성반도체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페이지를 올렸는데, 온통 “쾌적”, “안전” 투성이다. 외부 보고서의 내용을 왜곡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산안공단 역학조사, 2009년 서울대 조사,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이루어진 노동부 조사를 언급하며 “회사에서 근무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 조사들은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 공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근 AP통신이 보도한 직업병 문제 관련 기사에 대해 바로 반박문을 내면서도 “Samsung abides to all relevant laws regarding environmental safety at its facilities.”(삼성은 시설의 환경안전에 관한 모든 법률을 준수한다)라고 했다(2015. 12. 12.) 불과 3년 전 노동부 조사에서 2000여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었고(화성공장), “화학물질 관리 전반에 상당한 문제점이 관찰된다”는 진단을 받았던(기흥공장), 그 기업이 말이다.
또한 삼성은 내부 문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온갖 정보를 은폐해왔다. 산재 소송에서조차 “재해노동자가 취급하였거나 노출가능했던 화학물질 정보”, “공장 내 가스 및 유기화합물 누출 기록”, “엔지니어에게 배포한 환경수첩”,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노동자에 대한 보호구 지급 현황”, “공장의 중대재해 발생 현황” 등을 은폐해 왔다. 심지어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조사를 할 때는 노동자 측이 현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차단해 왔다. 공장의 안전문제를 지적한 ‘2009년 서울대 조사 보고서’, ‘2013년 산안공단 보고서’에 대해서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최근 ‘조정권고안’을 거부하고 자체 보상을 강행하는 과정은 이러한 태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4년 전 반올림 측에 교섭을 먼저 제안한 이도, 2년 전 반올림의 반대에도 조정위원회 도입을 강행한 이도, 모두 삼성이었다. 그런데 그 조정위원회가 삼성에 독립된 제3자(공익법인)로 하여금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권고안(전체적으로 SK가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통해 해결책을 도출한 방식과 유사하다)을 제시하자, 이를 거부한 채 자체 보상절차를 강행해 버렸다. 그 보상절차라는 것은 결국 보상대상 심사는 물론 보상액 산정까지 삼성이 직접하고, 누가 어떤 보상을 받는지는 삼성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외부를 통한 문제 해결의 경험 필요”
9년이 다 되어가도록 삼성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차가운 길 위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를 놓고, SK는 내부 문제를 드러내며 외부 전문가쪾시민단체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한 반면, 삼성은 내부 문제를 은폐하고 외부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단을 고집했다.
삼성의 이러한 모습은 비단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안전보건’ 문제와 관련하여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고집할 때 전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메르스 사태’를 통해 겪었다. 그래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결코 그 공장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업에게 외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이닉스에게는 이미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하이닉스는 이번에도 굉장히 중요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본다.”
2015년 12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과 하이닉스 사례로 본 반도체 직업병 문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형렬 직업환경의학과 교수(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의 발언 내용이다.
외부를 통한 문제 해결의 경험. 내가 아는 바로는 삼성은 아직 그러한 경험이 없다. 최근 2년간 SK가 보여준 모습이 간접경험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그런 걸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조직이다. 결국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이제라도 그런 경험을 갖도록, 직업병 피해당사자들이, 현장 노동자들이,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과 소비자들이 한 목소리로 힘 있게 요구해야 한다. 반올림이 70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많은 분들의 지지와 방문을 바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 | 임자운 반올림 상임활동가
사진제공 | 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