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까 먹을까” 음식과 쓰레기 사이에서

스무 살,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무한 샐러드바로 운영하는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샐러드바에 음식을 채워놓기 무섭게 음식들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 채우고 하다보면 어느덧 밤. 손님들이 다 떠나고 불 꺼진 식당 안은 그 때부터 은밀한 일들이 진행된다. 공급했던 음식들을 수거하는 일이다. 접시에 담긴 채 그대로 남겨진 음식,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과일, ‘한 모금 마셨을까?’ 하는 주스나 음료수를 테이블마다 모아서 음식물쓰레기통, 일명 짬통에 버린다.  

‘기껏 만들었는데 뭐야.’ 야속한 마음도 잠시, 주방에서도 작업이 시작된다. 식재료로 사용하던 각종 면, 고구마, 호박 등을 비롯한 식재료들이 순식간에 짬통으로 들어가 음식물쓰레기들과 섞인다. “오늘도 다 버려요? 내일 사용하면 안 돼요?” 소심한 알바생의 항변에 돌아오는 답은 “응, 버려. 회사 방침이라서 어쩔 수 없어. 그날 사용 못한 것들은 다 폐기해야 하는 거 알면서.” 매니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버리는 식재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사정은 마찬가지. “마감이 끝나면 진열대 빵들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아. 50리터 쓰레기봉투로 한 4개 정도 나올 때도 있어.”(빵집 알바생)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은 골라서 폐기해.”(편의점 알바생).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식품들이 버려지고 있는 걸까.  

 

멀쩡한 식품이 버려지는 이유

신선도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진열대에서 밀려난 식품들은 박스에 담겨진다. 이곳에서도 팔리지 않으면 식품들은 폐기 처분된다 ⓒ전민지 


음식물쓰레기.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물만이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체 음식물쓰레기 중 먹고 남긴 음식물은 30퍼센트인 반면 유통,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57퍼센트, 보관하다 폐기하는 식재료 7퍼센트, 먹지 않은 음식물 4퍼센트를 차지한다. 음식물 쓰레기의 반 이상이 생산, 유통, 조리과정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멀쩡한 식품들이 위생, 신선도유지로 폐기처분되거나 유통기한 때문에 그대로 버려지는 식품들이 상당하다.  

문득 식품들이 넘쳐나는 대형마트가 궁금했다. 유명한 대형마트 두 곳에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판매가 부진한 식품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었다. A대형마트 “매장에 진열된 상품도 선도가 떨어진 상품을 골라내어 신선식품은 당일 할인판매 또는 폐기를 하고 있다. 문의하신 타 기관에 기부는 위생상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기부는 하지 않는다.” B대형마트 “점포에서 만들어지는 제빵 상품들은 하루가 지나면 복지관으로 전달을 하며, 기타 상품들에 대해서는 유통기간이 지나면 폐기를 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식품들을 쓰레기로 버리고 있는지 그 수치와 처리비용은 업무상 비밀이라며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한 식품들을 폐기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실제로 녹색소비자연대가 조사한 유통매장 유형별 식품폐기물 발생현황에 따르면 대형마트에서는 최대 15퍼센트의 식품이 버려진다. 또 다른 조사를 보면 2009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식품 폐기량은 총 2756만 톤에 이르며, 금액으로 치면 58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멀쩡한 식품들을 폐기하는 걸까. “소비자들이 예쁜 과일, 흠집이 없는 완전한 상태의 식품을 선호하면서 유통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드는 과일들이 거의 폐기 처분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식품들의 유통기한이 실제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보다 지나치게 짧다는 점도 식품폐기물의 양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다.” 대형마트의 식품폐기량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녹색소비자연대 활동가의 말이다.  

식품폐기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영국기계엔지니어학회(IMechE)는 식품폐기물의 원인으로 ‘원 플러스 원(1+1)’ 상품과 짧은 유통기한,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음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음식물 쓰레기로 요리할 수 없다면 

세계 경제 중심지인 뉴욕 밤거리에서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음식을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식품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프리건(Freegan)’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프리건이란 자유롭다(free)와 채식주의자(vegan)의 합성어이자 ‘Freegan’ 즉 ‘무료로 얻는다’라는 뜻이다. 2004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이 미국에서 생산되는 총생산물 중 40~50퍼센트만이 소비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자본주의가 낭비를 유발하므로, 여기에서부터 나오는 쓰레기만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프리건(Freegan) 운동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로 프리건들은 마트나 식당의 쓰레기봉투에서 통째로 버려진 바게트, 크로와상, 고구마, 바나나, 스프 등 다양한 식료품을 찾아다니는데,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싱싱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식료품들이 신선도 유지를 위한 당일폐기란 미명으로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업체가 바뀐 경우도 있다. 유통업체인 테스코(TESCO)는 영국 폐기물 재활용 운동단체(WRAP)와 함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품의 폐기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포장된 샐러드 제품의 68퍼센트가 매장과 가정에서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졌으며, 사과와 포도는 40퍼센트, 바나나는 25퍼센트가 폐기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테스코(TESCO)는 소비자들이 필요한 양만 사도록 채소류에 대한 묶음 판매를 중단하고, 소량 포장 판매를 늘리겠다는 해결책을 발표했다. 또한, 수요에 맞춰 매장의 제빵 상품 진열량을 줄이고, 물류기간을 단축하거나 소비자에게 음식재료 보관법을 알리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네덜란드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유통기한이 이틀 남은 물건을 진열장에서 발견하는 손님은 그냥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갑자기 “우리나라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멀쩡한 식품을 버리고 또 그에 따른 비용도 지불해야 하는 마트는 손해 보는 게 아닐까. 버릴 바에는 차라리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지 않나? “식품 제조업체는 원가비용을 포함하여 반품되는 비용까지 포함된 가격을 책정하여 유통업체에 판매하기 때문에 유통업체에 경우, 식품이 반품되어도 손해가 없다. 따라서 식품 폐기량을 줄여야 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힘들다.” 에코생협 최재숙 이사의 말에 한숨이 나온다.   

생활협동조합은 식품폐기에서 그나마 자유로웠다. 에코생협은 조합원들이 필요한 식품들을 4일전에 주문을 받아서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하고 신선한 식품을 소비자가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품 폐기량을 줄일 수 있도록 한다. 최 이사는 식품 폐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유통기한은 식품들이 업체를 통해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이기 때문에 식품의 특성에 맞게 보관했을 때,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인 품질유지기한을 별도로 표시를 할 수 있는 활발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통해 현명한 식품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리지 말고 먹으세요 

어디를 가든 음식들로 넘쳐난다. 우리는 풍요롭고 풍족해진 물질에 익숙해져서 아깝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버릴 바에는 차라리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에 시장자본주의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공짜는 있을 수 없다며 그런 순진한 생각은 지워버리라는 훈계도 들린다. 그래도 지금 멀쩡한 식품을 버리는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알바를 간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음식들을 버려야 할지, 빵집과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식품들을 폐기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도 기대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음식물을 남기는지, 식품들을 버리고 있는지 안다면 바뀌지 않을까.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업체도 동참한다면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힘없는 알바생은 잔소리라도 해야겠다. “먹을 만큼 담으세요. 버리지 말고 먹으세요.” 

 

글 | 전민지 대학생이자 함께사는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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