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석면에 시달리는 아이들

매년 6~7월 여름방학과 11~12월 겨울방학을 앞두고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환경단체에서 석면 문제를 담당하는 활동가들과 석면추방운동에 앞장서는 학부모들이다. 각급 학교에서 방학 중에 석면 철거공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벌써 10여 년째 반복되는 일이다. 이번 여름에는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운동이 겹쳐 더 정신이 없다. 우선적으로 할 일은 올 여름방학 때 어느 학교에서 석면을 철거하는지 학교 명단을 파악하는 일이다. 더불어 우리 지역에 남은 석면학교 명단을 파악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최근 진행된 석면 철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소개하며 주의를 촉구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사회에 알리는 일이 학교석면 감시운동의 첫 단계다. 모든 학교와 교육청은 자신들의 학교에서 석면 철거를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방학 때마다 학교는 석면 철거 공사판

2023년 2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 석면 철거 현장에서 위법상황이 적발되어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현장에 나왔다. 그들은 뒷북이고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된다


방학 때마다 학교는 공사판이다. 석면 철거 외에도 이러저러한 공사가 늘 진행된다. 때문에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누구도 자신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석면 철거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또 무슨 공사를 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때문에 이들에게 올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위험한 석면 철거공사가 진행되니 주의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석면학교와 석면 철거 대상학교 명단은 환경보건시민센터 홈페이지 www.eco-health.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번째 단계는 직접적인 감시체계를 가동하는 일이다. 원래 석면 철거 과정에는 노동부의 허가 과정을 거쳐 모든 진행 과정을 감리가 총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선 노동부의 행정감시와 감리의 현장 감시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던가. 철거 사업자가 감리를 지정하다 보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감리자를 선정해 사실상 허수아비로 세워놓는다. 대부분의 감리는 건축사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철거 현장에 익숙한 건축사에게 석면 철거 현장의 문제는 늘 그러려니 하며 아무런 감시의지가 없고 그저 일시적인 돈벌이 일거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감리는 무용지물이고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 된다. 

노동부는 어떤가? 한 사람의 근로감독관이 맡아야 할 담당지역이 매우 넓고 담당 현장이 수백 곳이라는 것이 그들이 앵무새처럼 되뇌는 변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면철거업자와 측정업자들에게 학교석면 철거 현장은 그들만의 돈벌이 장소가 된다. 노동부에 신고된 석면 철거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거의 문제가 없지만 그건 서류일 뿐, 실제로는 작업자, 비닐 보양에서 음압기 가동, 철거 방식과 안전장비, 잔재물 조사, 측정 폐기물 처리까지 전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수법이 동원된다. 석면먼지를 막아주는 기본장치인 비닐 보양에선 규정보다 얇은 비닐을 이중삼중으로 하지 않고 홑겹으로 사용하고 음압기는 필터를 교체하지 않고, 또 실제 가동은 하지 않은 채 거짓으로 기준을 맞춰 서류 작업만 하는 식이다. 작업자들이 외부로 나갈 때 반드시 샤워하고 방진복을 갈아입어야 내부의 석면먼지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단언컨대 단 한 곳도 없다. 모두가 위법이고 규정 위반이다. 행정적으로만 위법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 위법행위들은 곧 아이들이 공부하고 뛰노는 교실과 복도를 석면에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석면철거 감리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행동에 나섰다


이렇게 석면 문제를 감시하고 안전을 지키라고 만든 제도인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감리가 제 기능을 못하니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이 나섰다. 10여 년을 떠드니 몇 년 전부터는 감시 모니터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편차가 크다. 부산 같은 곳은 매우 착실하게 진행하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교육감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늘 말하지만 돌아서면 그만이다. 인천은 감시체계가 잘 돌아간다고 해서 몇 군데 현장을 돌아보니 엉망이었다.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의 감시활동은 현장에 늘 긴장감을 일으켜야 제대로 기능한다. 그렇지 않고 철거업체나 감리와 ‘협조적’인 상황이 되면 감시활동마저 ‘통과의례’가 되기 십상이다. 감시의 눈초리가 무뎌지는 순간부터 아이들과 학교는 석면 위험 현장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2022년 발표된 ‘학교석면보고서’에는 이전에 없던 석면유치원 명단이 포함됐다.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가 각 교육청에 요청해 받은 정보공개자료였다. 몇달 지나 시사저널이 석면 기사를 다루면서 이 명단을 소개했는데 전화기에 불이 났단다. “우리 아이를 보내려는 유치원이 석면유치원 명단에 들어 있는데 안전한 건가요?”, “우리 유치원이 명단에 들어 있다며 불안해 하는 문의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는 식의 문의였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학부모들의 석면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의 관심이 가장 높고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심드렁하다. 2010년 학교 운동장에 석면감람석을 깔아 문제가 되었을 때다. 전국 20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시료 채취하고 석면 오염실태를 조사했다. 경기도 과천고등학교에서의 일이다. 가보니 운동장에 이미 석면감람석이 깔렸고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축구하던 운동화에 석면먼지가 묻었고 그대로 집에 가면 2차 3차 석면오염이 우려됐다. 수소문해서 한 아이의 집에 찾아가 신발장 주변에 석면먼지 오염 여부를 조사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학부모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한마디 했다. “석면이요? 저 녀석 담배 펴요!” 아이가 담배 피는 마당에 무슨 석면 문제로 호들갑이냐는 투였다. 이렇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석면 문제에 대한 감수성은 무뎌지고 있었다.  


대학도 석면 안전 불감증 

서울대학교의 한 건물 복도 천장의 모습, 석면텍스가 위험한 상태로 떼어져 있다


매년 반복되는 건 주로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석면 문제다. 그런데 올해는 두 곳의 대학교에서도 석면 문제가 불거졌다. 강원대와 서울대다. 강원대의 경우 의과대학 건물에서 석면 철거를 위해 내부 시설물을 외부로 옮기면서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바로 인근으로 옮겨 석면먼지에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석면 철거 기간 동안 건물 내 일부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어 이용자들이 석면에 노출될까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교수들이었다.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며 노출될 경우 긴 잠복기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암, 석면폐, 후두암, 난소암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의대 교수의 입장에서 여러 차례 우려를 제기했지만 학교 당국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괜찮다고만 한다며 환경단체에 조언을 구해왔다. 

일단 춘천환경운동연합에 알리고 학교 당국에 사실 확인을 했다. 의과대학 행정실과 대학본부 두 곳의 담당자에게 교수들의 우려는 중요한 지적이니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명회를 열고 학생회와 인근 주민 그리고 지역환경단체가 참여하는 감시체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어 현장을 방문하고 언론사에도 연락할 참이었는데 해당 교수들에게 문자가 왔다. 학교 측에서 시설물 보관 위치를 멀리 떨어진 학교 운동장 쪽에 설치하고 공사기간 동안 건물을 폐쇄하기로 했단다. 큰 마찰 없이 잘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서울대의 경우는 대학원생들이 들고 일어난 경우다. 7월 11일 오후 “서울대 대학원생들, ‘사회대 석면 해체 공사, 안전 미흡’ 반발”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이를 본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의 학부모가 여기저기 알렸다. 기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이 이번 달 시작되는 사회대 건물의 석면 해체 공사가 구성원들의 권리와 생존을 위협한다고 반발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대학원생 152명은 11일 오후 사회대 16동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사가 사회대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학업·연구권을 침해한다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라고 전했다. 


철거 현장에서 찾아낸 석면 잔재물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석면 안전 문제로 대학원생들이 학교 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기자회견을 조직한 주인공과 연결했다. 서울대 사회대 대학원 자치회 연석회의 소속의 장인하 씨였다. 그는 석면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서 석면 철거를 한다면서 대체공간도 마련하지 않고 어설프게 진행하는 상황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주변의 다른 동료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며 사회과학대학의 부학장에게 개선을 요구했지만 설명회를 잘 들으라는 답변만 돌아왔단다. 

자치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고 이구동성으로 대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져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알기로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석면 문제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그런 경우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이라는 이야기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는 언론보도가 적었는데,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에서 연락이 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기자회견 후에 학교 측과 주변의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에 “다른 단과대학도 석면 철거를 하는지 대응 방안에 대해 문의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교수님들이 우리 보고 너무 나서지 마라고 한다.”며 사회과학대학에는 진보적이고 실천적인 교수들이 많은 편인데 석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건 의외라고 했다. 아마도 석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거나 보직교수들의 입장을 고려한 게 아닌가 한다며 좀 실망스럽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학교 측에 대체공간 마련과 감시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학내와 외부 언론에서 이 문제를 계속 적극적으로 다루도록 요청하겠다.”고 했다. 또 보건대학원이나 환경대학원의 교수들에게 이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응원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사실 서울대학교의 석면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관악캠퍼스의 법과대학 건물과 환경대학원 건물 등과, 서울대병원과 의과대학이 있는 혜화동의 연건캠퍼스에서도 여러 차례 석면 문제가 불거졌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석면의 위험성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이 일하고 공부하는 공간에서의 석면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것이다. 


교육 부문 노조들 경각심 갖고 나서야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석면 문제가 발생하거나 석면 철거를 할 경우 아예 학교를 휴교해 완전히 통제한 상태에서 석면을 제거한다. 학생과 교직원을 확실하게 석면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석면 문제가 지적돼 왔음에도 대충대충 제거작업을 하면서 그러려니 하는 석면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의 활동은 매우 소중하다. 또 서울대 사회과학 대학원생들과 같은 문제 제기는 환경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문제 해결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이참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교원노조>에서도 학교석면 문제에 대해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한다. 석면 문제의 특징은 긴 잠복기 때문에 직장 근무 중에 노출되어도 바로 발병하지 않고 퇴직한 후부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특성상 현직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시하는데 전직 조합원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점과 곧 자신들의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르치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불치의 석면병에 걸리게 된다는 점에서 교사노동조합이 석면 문제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글·사진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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