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영
『설국열차』의 꼬리칸 탑승객들의 식량은 양갱 같이 생긴 단백질 블록이다. 배를 채우는데 급급한 이들은 단백질 블록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고 또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 관객들도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야 드디어 드러난 음식의 재료가 다름 아닌 바퀴벌레였다는 사실에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허구의 이야기일지언정 ‘어떻게 저런 걸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냐?’는 마음에 경악한다.
다행히 2018년 대한민국은 극한의 빙하기도 아니고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난다. 거리엔 식당들이 즐비하고 인터넷과 방송에는 온갖 음식들을 만드는 과정부터 먹는 모습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스스로를 미식가 혹은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은 직접 식당을 찾아가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맛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하며 ‘이 음식은 이 집에서 먹어라!’,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런 포스팅이나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에서 그 음식을 꼭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그 음식은 그 맛이 정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공개할 수 없다는 맛집의 요리비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가?’ 또 ‘그 재료는 어떻게 생산된 것인가?’에 대한 것이 빠져있는 것이다. 미식가 혹은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도, 방송 프로그램도 이와 관련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저 식당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직원들이 친절하며 음식 맛도 괜찮은데 가격도 그 정도면 괜찮다는 식이다.
정말 괜찮은 걸까. 지금과 같은 맛집과 미식 열풍에 반기를 들며 진짜 제대로 된 식당이 어떤 곳인지, 미식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지난해 『함께사는길』에 ‘식탁과 철학’을 연재했던 우석영 씨가 몸담은 <자립연구원>과 국내 내놓으라 하는 음식문화 전문가들이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이란 이름을 달고 진짜 미식이란 무엇인지를 세상에 알리면서 진짜 미식을 제공하는 맛집을 찾아 나섰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회장,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표 전문가 대안스님, 텃밭농부이자 시인인 박남준, 한살림 제주 이사장 조상호, 제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인숙 씨 등이 ‘진짜 맛집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세운 미식의 기준은 무엇일까. 배려의 식탁은 어떤 곳인가. 자립연구원의 손성희 대표, 우석영 연구위원과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대안스님을 만나 이들의 미식라이프를 들었다.
우리의 식탁은 지속가능한가
“지금 사람들이 먹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이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농약을 많이 사용하고 제철 식자재가 아닌 시간의 맥락을 빼앗아 만든 식재료들이 사용되고 심지어는 유전자 조작한 종자로 생산된 식재료들로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문제의 식재료를 갖고 정성들여 만들고 그럴 듯한 모양과 맛을 내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음식으로 보기 어렵죠. 우리 음식의 90퍼센트 이상이 이런 식재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종덕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맛집 프로그램과 먹방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음식과 관련해서 어떤 식재료를 사용하는지 또 그 재료는 어떻게 생산했는지 농업이라든지 농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이 음식의 모양이 어떻고 맛이 어떻고 이야기하는데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조계종 공식사찰 음식점 ‘발우공양’의 총책임자이자 금당전통음식연구원 이사장인 대안스님도 말을 보탰다.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어요. 아무리 음식점이 좋은 음식을 해도 찾아오는 이들이 그 진가를 모르면 오래 가지 못해요. 갈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입맛이 간사해지는 것 같아요.”라며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러한 풍토에 방송과 정책도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방송이에요. 방송을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정보를 얻어요. 방송에서 진정한 음식이 무엇인지 자꾸 말해줘야 하는데 안타깝죠. 그러면 정부정책이라도 그렇게 가야하는데 정부 관계자조차 국민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게 농업정책이라고 말하더라고요.”라며 씁쓸해했다.
‘미식’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정작 미식에 대한 정의나 기준이 없다는 점도 꼬집는다. 우석영 씨는 “한국은 미와 음식의 나라에요. 미식의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예전에 우리는 생태 미식을 먹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미식의 정의나 기준도 없어요.”라고 안타까워한다.
지금과 같은 잘못된 식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음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의 현실은 암울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3퍼센트에 불과하고 먹을거리의 77퍼센트를 수입해온다. 수입 먹을거리의 안전성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화학 처리, 유전자조작 식품, 잔류 농약, 방사능오염 등 일상이 먹을거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 식량안보와 식탁안전에 최전선에 선 농부들은 해마다 그 수가 줄고 있다. 2008년 319만 명이던 농부는 2017년 기준으로 242만 명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전체 인구 중 4.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수치다. 더 큰 문제는 65세 이상 농부가 거의 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10년 후 우리 농업이 어떻게 될지 그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다. 거기에 기후변화도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화학비료와 살충제, 기계농 등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가축은 또 어떤가. 조류독감과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도 보듯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다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을 과연 맛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로컬 미식 라이프의 ‘배려의 식탁’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 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로컬 미식 라이프를 통해 미식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맞는 미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배려의 식탁으로 선정해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식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게 내렸다. 혀를 속이는 맛이 아니라 먹는 이들을 모성애로 배려하고 사람과 자연 모두를 살피는 마음에서 나온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단순히 음식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사용된 식재료와 그것들이 만들어진 과정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 선정 기준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건강과 영양이다. GMO나 유해방사능 등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를테면 토종돼지라도 GMO 사료를 먹고 자랐다면 선정되기 힘들다. 두 번째로 미적인 즐거움이다.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색과 향, 맛의 미감이 살아있어야 한다. 셋째는 지역의 맛이다. 그 지역의 전통적인 레시피를 이용해 그 지역 고유의 맛을 살렸는가를 평가한다. 넷째, 자연과 미래세대를 돌보는 음식이다. 제철농산물, 지역산, 유기농, 동물복지 등이 평가 요소다. 마지막으로 지역공동체나 지역농부들을 배려한 공동체적 배려다.
이러한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제주 지역에서 ‘배려의 식탁’을 선정했다. 제주에서 직접 농사짓고 제주 음식을 연구해온 5명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차로 제주 지역 식당을 추천했고 이 리스트를 토대로 선정위원들과 사전조사와 현장답사를 진행, 그 결과를 토대로 자문위원과 선정위원단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배려의 식탁 식당은 총 62곳이다.
그들은 사업의 목표가 단순히 식당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배려의 식탁 프로젝트는 몇몇 식당들을 잘 나가게 하는 것들을 넘어서 소비자들에게 배려의 식탁을 알리고 식문화를 바꾸고 그 식당과 현장에서 농사짓는 농부들과의 관계, 농부들이 생산한 것들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선순환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식당들이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제값에 구입해주면 지역 농부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은 배려의 식탁 경험을 통해 우리 농업을 지켜야 하고 가정에서도 그런 농부들이 생산한 식재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로컬 미식라이프를 통해 진짜 미식이 무엇인지 알리겠다고 나선 사람들. 왼쪽부터 자립연구원 손성희 대표, 우석영 연구위원, 대안스님,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제 제주 지역 대상의 선정이 완료됐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짧은 일정과 부족한 비용 때문에 해산물 분야는 빠졌고 정말 괜찮은 곳인데 누락된 곳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돼 업데이트해나가려 합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제주의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도 선정작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이번 제주판은 로컬 미식라이프 사업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진행할 수 있었지만 후속사업은 언제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잘못된 식문화를 바로잡고 바른 먹을거리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더 나아가 농업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니만큼 시민들을 비롯해 정부나 지자체, 관광공사 관계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로컬 미식라이프-배려의 식탁 제주편은 책과 지도로 출간될 예정이다. 책자와 지도는 알라딘 서점과 한살림 등 생협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글 | 박은수 기자
ⓒ우석영
『설국열차』의 꼬리칸 탑승객들의 식량은 양갱 같이 생긴 단백질 블록이다. 배를 채우는데 급급한 이들은 단백질 블록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고 또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 관객들도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야 드디어 드러난 음식의 재료가 다름 아닌 바퀴벌레였다는 사실에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허구의 이야기일지언정 ‘어떻게 저런 걸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냐?’는 마음에 경악한다.
다행히 2018년 대한민국은 극한의 빙하기도 아니고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난다. 거리엔 식당들이 즐비하고 인터넷과 방송에는 온갖 음식들을 만드는 과정부터 먹는 모습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스스로를 미식가 혹은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은 직접 식당을 찾아가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맛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하며 ‘이 음식은 이 집에서 먹어라!’,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런 포스팅이나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에서 그 음식을 꼭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그 음식은 그 맛이 정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공개할 수 없다는 맛집의 요리비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가?’ 또 ‘그 재료는 어떻게 생산된 것인가?’에 대한 것이 빠져있는 것이다. 미식가 혹은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도, 방송 프로그램도 이와 관련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저 식당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직원들이 친절하며 음식 맛도 괜찮은데 가격도 그 정도면 괜찮다는 식이다.
정말 괜찮은 걸까. 지금과 같은 맛집과 미식 열풍에 반기를 들며 진짜 제대로 된 식당이 어떤 곳인지, 미식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지난해 『함께사는길』에 ‘식탁과 철학’을 연재했던 우석영 씨가 몸담은 <자립연구원>과 국내 내놓으라 하는 음식문화 전문가들이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이란 이름을 달고 진짜 미식이란 무엇인지를 세상에 알리면서 진짜 미식을 제공하는 맛집을 찾아 나섰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회장,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표 전문가 대안스님, 텃밭농부이자 시인인 박남준, 한살림 제주 이사장 조상호, 제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인숙 씨 등이 ‘진짜 맛집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세운 미식의 기준은 무엇일까. 배려의 식탁은 어떤 곳인가. 자립연구원의 손성희 대표, 우석영 연구위원과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대안스님을 만나 이들의 미식라이프를 들었다.
우리의 식탁은 지속가능한가
“지금 사람들이 먹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이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농약을 많이 사용하고 제철 식자재가 아닌 시간의 맥락을 빼앗아 만든 식재료들이 사용되고 심지어는 유전자 조작한 종자로 생산된 식재료들로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문제의 식재료를 갖고 정성들여 만들고 그럴 듯한 모양과 맛을 내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음식으로 보기 어렵죠. 우리 음식의 90퍼센트 이상이 이런 식재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종덕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맛집 프로그램과 먹방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음식과 관련해서 어떤 식재료를 사용하는지 또 그 재료는 어떻게 생산했는지 농업이라든지 농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이 음식의 모양이 어떻고 맛이 어떻고 이야기하는데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조계종 공식사찰 음식점 ‘발우공양’의 총책임자이자 금당전통음식연구원 이사장인 대안스님도 말을 보탰다.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어요. 아무리 음식점이 좋은 음식을 해도 찾아오는 이들이 그 진가를 모르면 오래 가지 못해요. 갈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입맛이 간사해지는 것 같아요.”라며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러한 풍토에 방송과 정책도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방송이에요. 방송을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정보를 얻어요. 방송에서 진정한 음식이 무엇인지 자꾸 말해줘야 하는데 안타깝죠. 그러면 정부정책이라도 그렇게 가야하는데 정부 관계자조차 국민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게 농업정책이라고 말하더라고요.”라며 씁쓸해했다.
‘미식’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정작 미식에 대한 정의나 기준이 없다는 점도 꼬집는다. 우석영 씨는 “한국은 미와 음식의 나라에요. 미식의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예전에 우리는 생태 미식을 먹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미식의 정의나 기준도 없어요.”라고 안타까워한다.
지금과 같은 잘못된 식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음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의 현실은 암울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3퍼센트에 불과하고 먹을거리의 77퍼센트를 수입해온다. 수입 먹을거리의 안전성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화학 처리, 유전자조작 식품, 잔류 농약, 방사능오염 등 일상이 먹을거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 식량안보와 식탁안전에 최전선에 선 농부들은 해마다 그 수가 줄고 있다. 2008년 319만 명이던 농부는 2017년 기준으로 242만 명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전체 인구 중 4.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수치다. 더 큰 문제는 65세 이상 농부가 거의 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10년 후 우리 농업이 어떻게 될지 그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다. 거기에 기후변화도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화학비료와 살충제, 기계농 등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가축은 또 어떤가. 조류독감과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도 보듯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다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을 과연 맛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로컬 미식 라이프의 ‘배려의 식탁’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 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로컬 미식 라이프를 통해 미식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맞는 미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배려의 식탁으로 선정해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식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게 내렸다. 혀를 속이는 맛이 아니라 먹는 이들을 모성애로 배려하고 사람과 자연 모두를 살피는 마음에서 나온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단순히 음식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사용된 식재료와 그것들이 만들어진 과정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로컬 미식 라이프-배려의 식탁 선정 기준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건강과 영양이다. GMO나 유해방사능 등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를테면 토종돼지라도 GMO 사료를 먹고 자랐다면 선정되기 힘들다. 두 번째로 미적인 즐거움이다.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색과 향, 맛의 미감이 살아있어야 한다. 셋째는 지역의 맛이다. 그 지역의 전통적인 레시피를 이용해 그 지역 고유의 맛을 살렸는가를 평가한다. 넷째, 자연과 미래세대를 돌보는 음식이다. 제철농산물, 지역산, 유기농, 동물복지 등이 평가 요소다. 마지막으로 지역공동체나 지역농부들을 배려한 공동체적 배려다.
이러한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제주 지역에서 ‘배려의 식탁’을 선정했다. 제주에서 직접 농사짓고 제주 음식을 연구해온 5명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차로 제주 지역 식당을 추천했고 이 리스트를 토대로 선정위원들과 사전조사와 현장답사를 진행, 그 결과를 토대로 자문위원과 선정위원단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배려의 식탁 식당은 총 62곳이다.
그들은 사업의 목표가 단순히 식당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배려의 식탁 프로젝트는 몇몇 식당들을 잘 나가게 하는 것들을 넘어서 소비자들에게 배려의 식탁을 알리고 식문화를 바꾸고 그 식당과 현장에서 농사짓는 농부들과의 관계, 농부들이 생산한 것들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선순환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식당들이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제값에 구입해주면 지역 농부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은 배려의 식탁 경험을 통해 우리 농업을 지켜야 하고 가정에서도 그런 농부들이 생산한 식재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로컬 미식라이프를 통해 진짜 미식이 무엇인지 알리겠다고 나선 사람들. 왼쪽부터 자립연구원 손성희 대표, 우석영 연구위원, 대안스님,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제 제주 지역 대상의 선정이 완료됐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짧은 일정과 부족한 비용 때문에 해산물 분야는 빠졌고 정말 괜찮은 곳인데 누락된 곳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돼 업데이트해나가려 합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제주의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도 선정작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이번 제주판은 로컬 미식라이프 사업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진행할 수 있었지만 후속사업은 언제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잘못된 식문화를 바로잡고 바른 먹을거리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더 나아가 농업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니만큼 시민들을 비롯해 정부나 지자체, 관광공사 관계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로컬 미식라이프-배려의 식탁 제주편은 책과 지도로 출간될 예정이다. 책자와 지도는 알라딘 서점과 한살림 등 생협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글 | 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