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읽기] 문(門)

문(門)

 

조용미

 

냉장고는 악착같이 같은 색이다
문(門)을 열면
드러날 부패를 감추기 위해

 

이를 꽉 다물고 있다
문(門)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닫힌 문(門)들은
상한 내부에서 뿜어내는 향기로
사람을 불러들인다


경로당 옆 청수목공소는
늘 문(門)이 닫혀 있다
통나무 몇 개와
비스듬히 놓인 나무사다리가
문(門) 앞을 지키고 있다

 

올봄에는
고들빼기가 문(門) 앞에
꽃을 피웠다

 

닫힌 문(門)들은
사람을 그 앞으로 끌어들이고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닫힌 문(門)은 은폐된 벽이다


-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오래 전의 우스갯거리 퀴즈 중에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답은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집어넣는다. 3. 냉장고문을 닫는다.`” 였다. 몇 년 전에는 박민규라는 소설가가 이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 소재로 삼아서 세상의 해악이 되는 것들을 모두 냉장고 속에 넣어버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다. 그는 학교와 미국, 이런 것들까지 냉장고 속에 넣어버리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냉장고 속에 들어갈 수 없는 덩치가 큰 것들을 넣어버린다는 기발한 생각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착잡한 삶의 진실을 끌어안고 있다. 앞의 ‘`코끼리`’처럼 도저히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까지 냉장고 속에 우겨넣는 발상 속에는 인간의 무한 탐욕에 대한 풍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가정주부들의 큰 문젯거리 중에는 냉장고 속에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많은 음식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점도 있다. 결국은 먹지도 못하면서 승용차 트렁크 용량만 믿고 대형마트에서 욕심껏 사버린 음식들. 그 음식들이 폐기될 때 사용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둘째 치고 그 음식들이 먹을 것이 부족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시인이 냉장고 ‘`문`’을 구태여 한자로 ‘`門`’이라고 쓴 까닭은 요즘 대형냉장고(양문형 방식의)와 생긴 모양이 비슷한 점 때문일 것이다. “`문을 열면/드러날 부패를 감추기 위해`” 똑같이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고 있으며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라고 풍자한 내용도 날카롭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부패하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필요로 하는 생활습관 속에는 탐욕이 머물 자리가 없다. ‘`냉장고`’와 ‘`목공소`’가 비교되는 내용도 재미있다. ‘`냉장고`’는 ‘`닫힌 문`’의 상징이고 ‘`닫힌 문`’은 남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남들과 소통하지 않는 탐욕과 고립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목공소`’도 ‘`닫힌 문`’을 갖고 있지만 “`올봄에는/고들빼기가 문 앞에/꽃을 피웠`”다는 점에서 희망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들빼기 꽃`’은 아마도 자연을 통한 생명의 소통과 분배를 암시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 ‘`유기농`’이라고 하는 음식의 가치가 또 다른 탐욕과 차별의 가치로 자리매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안전하고 비싼 먹거리의 정체성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조금만 먹고 남들과 나누는 사랑과 평등의 생명운동으로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