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자보와 자전거에 매달린 깃발이 펄럭인다.
대형 화물차와 버스의 악을 쓰는 경적이 자전거를 흔들며 지난다.
비에 젖은 페달이 무겁다. 서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갈 거야!” 비명처럼, 신음처럼 나는 소리 질렀다.
“내 아내를 살려내라” “가습기살균제 살인기업을 구속 처벌하라.”
몸자보와 깃발이 펄럭이며 바람 속에서 연호했다.
4년 전 겨울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는 몸이 붓고 배가 자주 뭉쳤다.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과 열 그리고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얼마 후 아내는 호흡곤란으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의사는 원인은 모르지만, 아내가 폐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집에 오지 못했다. 4살 아들과 나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뱃속 아기도 엄마를 따랐다.
“산모들의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정부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임이 밝혀졌습니다.”
2011년 8월 31일 뉴스를 보다가 심장이 얼어붙었다.
가습기살균제가 아내와 아이를 죽였다.
가습기살균제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당신들이 안전하다고 판매한 제품이 사람을 죽였어.”
“현재 소송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부의 발표 이후 가습기살균제를 팔아온 기업은 대형로펌 뒤로 숨어버렸다. 옥시, 애경,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팔아온 롯데마트, 이마트 등은 자신들의 제품으로 143명의 사람이 죽었지만 사과 한 마디도 없다. 피해자를 가장 많이 만든 옥시는 아직도,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정부 조사를 인정할 수 없고, 소송 결과에 따라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어떻게 정부가 독극물이 든 제품을 판매하도록 허가할 수 있습니까? 어린이와 산모 143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기업을 살인죄로 엄중한 처벌은 촉구합니다.”
“관계 부처와 협의를 해보겠습니다.”
4년째 환경부는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그러면서 12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 접수를 마감한다고 한다.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 피해자 찾기를 끝내겠다고?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4년 동안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건 사실 다 정부 탓이다. 역학조사 발표 당시 국무총리가 나서서 민사로 해결하라고 발표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행정부가, 기업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살인죄를 징치해야 마땅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것이 과연 국가인가.
4년, 피해자들과 우리 가족들은 길거리에 나가 시위를 벌이고, 국회의원이며 환경부를 찾아가 구제를 호소하고, 가습기살균제 기업을 항의 방문해 ‘사과하라, 책임지라!’ 외쳤다. 달라진 건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급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장례비와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게 그간 나온 대책의 전부다. 우리가 무얼 더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건가.
사람들이 잊기를 기다리는 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선 길이다.
부산에서 울산, 대구, 대전, 세종시, 수원, 인천을 거쳐 서울까지 도보·자전거 항의시위를 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찾기 캠페인’을 벌였다.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난 아이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추가 신고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주민등록도 이름도 없기 때문에 접수하기 곤란하다고 했지만 엄마 뱃속에 있던 내 아이를 ‘한 생명’이 아니라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내 아이는 살아 있었고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죽었다.
다시 묻는다, 이것이 국가인가?
페달을 힘껏 구른다. 매서운 칼바람도 150킬로미터의 거리도 힘들지 않다. 부산 부모님 댁에 맡겨둔 아들이 너무 걱정된다. 살아남은 내 아들도 가습기살균제로 폐가 굳어가는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망가진 폐 때문에 아들은 365일 감기를 달고 산다. 비염과 천식도 있다. 조사결과 1급 판정을 받았지만 정부가 아들에게 해준 건 푼돈의 의료비 지원이 전부다. 비염과 천식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손상된 폐 때문에 아들은 민간보험 가입도 하기 어렵다. 자라서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을 게 뻔하다. 정부 대책에 이런 피해는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 아니 정부 대책이란 게 있기나 할까. 뿐인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지만 1등급이 못 돼는 3, 4등급의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완벽한 무대책이다. 정부가 해결할 것들이 한둘이 아닌데 정부는 입이 없고 눈이 없고 귀가 없다.
부산에서 출발한 지 11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앞(IFC)에서 현수막을 펼쳐들고 촛불을 밝혔다. 이곳에 가습기살균제 판매기업 옥시가 있다. 12월 한 달은 이곳에서 보낼 계획이다.
“제조사는 피해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숨지 말고 대화를 하자. 피해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진실을 이야기 하라”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접수 마감을 연장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시민들은 신고하세요.”
내가 이렇게 몸을 갈아 페달을 밟아 서울로 와서, 이렇게 마음을 갈아 피가 터지게 외친들 기업이 사과를 할까, 정부가 달라질까, 아니 우리 가족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부디 언제라도 다른 종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 화학위험사회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가 닿기를, 내 호소가 그들 가슴의 메아리가 되기를!
다행히 언론사들이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또 가습기살균제 피해 접수가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오늘만 10통이 넘는 피해자 접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2015년 12월 11일 현재 추가로 신고한 피해자는 310명. 정부가 정한 신고기한인 12월 31일까지 신규 피해 신고자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겨울 해는 짧다. 촛불을 켜고 어둠을 밝힌다.
8살 아들이 전화로 물었다.
“아빠, 집에 언제 와?”
“아빠가…, 아빠가 지금은 갈 수 없어. 왜냐면 말야….”
* 가습기살균제로 아내와 둘째 아이를 잃은 안성우 씨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글 | 박은수 기자
사진 | 이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