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김치를 담을 요량으로 시장에 갔더니 배추 한 포기 값이 3천 원 하더군요. 여느 때보다 오른 값이었지만 농사짓는 시부모님 고생하시는 것 생각하면 턱없이 싸다 싶은 마음으로 두 포기를 샀습니다. 냉장고도 작고 흔해빠진 김치 냉장고도 없으니 어지간한 두 포기 정도면 네 식구가 보름은 거뜬히 먹으니까요.
사실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김치 담그기는 숙제꺼리입니다. 종가의 맏며느리라 양 많은 음식 만들기는 이제 수월한 일거리가 된 지 오래지만 김치만은 늘 예외여서 담을 때마다 매번 고른 맛을 내기가 어렵더군요. 잘 여문 배추를 고르는 일부터 여러 가지 양념들을 이것저것 갖춘 다음 씻고 절이고 담그기까지 김치 한 번 담는 데 대략 하루해를 거의 보내는 데다가 그때그때 넣는 재료나 그날의 기분까지 더하여 맛을 내는 것 같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고춧가루나 마늘은 시시때때로 시댁에서 갖다 먹으니 배추 값이 올랐다고 김치 담그기가 경제적으로 그리 중압감 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고생하기로 치면 농사 중에 상농사라는 고추농사 지으시는 시부모님 생각하면 거저 가져다 먹는 고추나 마늘이 그리 맘 편안한 건 아닙니다.
가게를 꾸려가는 형편이라 자주 도울 수는 없지만 어쩌다 어머니 따라 밭엘 가면 잘 정돈된 안방처럼 갈무리된 밭 언저리만 봐도 어김없이 콧등이 시큰해 옵니다. 더운 여름에도 그 무지막지한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지심을 뽑고 거름을 주셨을 어머니의 거친 손과 가녀린 허리가 제 살찐 몸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우리 식구들이 요즘 같은 음식난리 통에도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으니 시댁에서 가져오는 농작물 보퉁이들을 끄를 때면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뜨뜻해지더군요.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처음 시집와서는 그렇지 못했지요. 저 또한 농부의 딸이었음에도 서울살림 작파하고 시부모님 계신 시골로 이사 오게 된 것이 못마땅해 남편과의 충돌도 잦았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도 힘들었고 시부모님 따라 논밭으로 나가는 일도 힘들기만 했습니다. 해가 뜨면 이슬이 말라 잘 안 뽑힌다는 마늘종다리를 뽑기 위해서, 고추모종을 심는 날이나 씨 마늘을 심는 날에도 예외 없이 새벽이슬 털어가며 밭으로 따라 나서는 일은 고역이기만 했지요. 그 중에서도 고추 따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정쩡하게 구부린 채 익은 고추를 따다보면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팠지요. 식구들 각자에게 분배된 밭고랑은 길기만 한데 익은 고추는 또 얼마나 매운지 눈도 따갑고 손도 쓰리고 가려워 밭고랑에 숨어 눈물 콧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비료 포대기가 그리 큰 줄도 그때 알았지요. 아무리 채워도 반도 차지 않는 요술 포대 같은 비료 포대를 들고 하늘 한 번 보고 고추 고랑 한 번 보기를 얼마나 했던지요.
“어머니, 세상에서 고추 따기가 제일 어려워요.” 제가 그만 참지 못하고 고랑 너머에서 소리를 치면 “야야, 그기 다 니 입에 들어갈 건데 뭐가 그리 힘드노? 힘들거든 저쪽 둑에 가서 고마 앉아 쉬그라.” 하시면서도 정작 당신의 손은 쉼 없이 움직이셨지요. 제가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하늘 보는 척 허리 펴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굽은 허리 곧추 세우지 않으시고 묵묵히 귀한 열매들을 만지셨지요. 지금도 음식에 고춧가루를 넣을라치면 우리 어머니, 진득한 땡볕 아래 맵고 따가운 고추밭 그 긴 고랑에다가 흘리셨을 땀방울이 몇 포대였을지 생각하면 금방 콧속에 매운 고추 한 다대기 쏟아져 들어온 듯 눈시울 매워지니 촌 아지매 생활 13년, 이제야 겨우 저도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고추, 참깨 걷어낸 자리에 요즘은 김장용 배추와 무가 너른 밭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푸르디푸른 강물이 제 발 아래를 적실 것처럼 넘실거리는 풍경 앞에 서면 울렁증이 솟을 만큼 이맘때의 배추밭은 그 어느 근사한 풍경보다 아름답습니다. 제 어머니는 그 아름다움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하시지요. 네,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이 키우신 배추지만 정작 돈으로 치면 도시 사람들한테는 우습기 짝이 없는 금액이더군요. 세상에 그렇게 너른 밭을 메우는 배추들 몽땅 장에 내다팔아도 요즘 사람들 좋아한다는 명품 가방 하나 못 살 액수라니요.
그래도 그런 요량보다는 그저 사람 먹을거리니 몸에 해로운 비료나 농약은 겁나서 못 주고 볕 잘 드는 밭에다가 열심히 물과 거름을 만들어주시는 분입니다. 한약방에서 얻어온 약초 짠 찌꺼기들을 묵히고 음식물들을 잘 삭혀서 만든 거름이 비료나 농약보다 더 좋은 거라고 하시는 분이지요.
가끔 쌈 싸먹는 배추를 한두 포기씩 얻어와 도시에 사는 친구네로 혹은 지인들한테로 부쳐주면 세상 어느 고급한 선물보다 고마워하고 좋아하더군요. 어찌나 달고 고소한지 그런 맛은 처음이라고 그럴 때면 제가 도리어 그분들께 고맙고 즐거워집니다. 세상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촌구석에서 보내는 배추 한 포기에 그리도 기뻐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마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요즘 우리 일상의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불안한 요소가 되어 있는지 새삼 깨닫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이 절대적 화두이면서도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는 듯한 풍토이니 말입니다. 모 교수의 생명공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그를 영웅처럼 떠받드는 흥분의 경지까지 올라 있는 상태이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물은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다 아는 내용이라 시시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젠 내 집 밥상에 올리는 밥이며 김치까지도 사먹으라고 졸라대는 광고를 매일같이 대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김치 없이 밥 먹기 힘든 우리 정서 속에 정체모를 수입김치는 언제부터 그리도 가까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던 걸까요? 바깥 활동이 어느 때보다 많아지는 시대에 식당김치 먹기가 겁나는 사회, 아니 어디 가서 뭘 사먹는다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니 얼마나 슬프고 쓸쓸한 일인가요. 가끔 친구들이랑 우리 세대가 직접 김치 담아먹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라는 얘기 끝에 쓸쓸함을 나누기도 하는데 방송에서는 거두절미하고 배추 값 올랐다고만 호들갑을 떨어대지요. 금치 소리까지 해가며 비싸다고 떠들어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공연히 울화가 치밉니다. 당신들, 그 고운 손으로 배추 한 번 키워보실래요? 막 대들고 싶어집니다.
우린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최상인 세상에 살고 있긴 합니다. 어떡하든 손도 꼼짝 안하고 우아하고 편하게 사는 것만을 최상의 성공이라 여기는 세상이라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맛나고 좀더 안전하면서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농작물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쎄요, 배추 값이 금값이란 얘긴 농사짓는 걸 홀대하다가 나중에 정말로 농사지을 사람 없어 영양제 하나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날이 오면 그때에나 우리 모두 가슴 쥐어뜯으며 나누기로 하지요.
어제 저녁 김치를 담을 요량으로 시장에 갔더니 배추 한 포기 값이 3천 원 하더군요. 여느 때보다 오른 값이었지만 농사짓는 시부모님 고생하시는 것 생각하면 턱없이 싸다 싶은 마음으로 두 포기를 샀습니다. 냉장고도 작고 흔해빠진 김치 냉장고도 없으니 어지간한 두 포기 정도면 네 식구가 보름은 거뜬히 먹으니까요.
사실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김치 담그기는 숙제꺼리입니다. 종가의 맏며느리라 양 많은 음식 만들기는 이제 수월한 일거리가 된 지 오래지만 김치만은 늘 예외여서 담을 때마다 매번 고른 맛을 내기가 어렵더군요. 잘 여문 배추를 고르는 일부터 여러 가지 양념들을 이것저것 갖춘 다음 씻고 절이고 담그기까지 김치 한 번 담는 데 대략 하루해를 거의 보내는 데다가 그때그때 넣는 재료나 그날의 기분까지 더하여 맛을 내는 것 같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고춧가루나 마늘은 시시때때로 시댁에서 갖다 먹으니 배추 값이 올랐다고 김치 담그기가 경제적으로 그리 중압감 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고생하기로 치면 농사 중에 상농사라는 고추농사 지으시는 시부모님 생각하면 거저 가져다 먹는 고추나 마늘이 그리 맘 편안한 건 아닙니다.
가게를 꾸려가는 형편이라 자주 도울 수는 없지만 어쩌다 어머니 따라 밭엘 가면 잘 정돈된 안방처럼 갈무리된 밭 언저리만 봐도 어김없이 콧등이 시큰해 옵니다. 더운 여름에도 그 무지막지한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지심을 뽑고 거름을 주셨을 어머니의 거친 손과 가녀린 허리가 제 살찐 몸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우리 식구들이 요즘 같은 음식난리 통에도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으니 시댁에서 가져오는 농작물 보퉁이들을 끄를 때면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뜨뜻해지더군요.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처음 시집와서는 그렇지 못했지요. 저 또한 농부의 딸이었음에도 서울살림 작파하고 시부모님 계신 시골로 이사 오게 된 것이 못마땅해 남편과의 충돌도 잦았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도 힘들었고 시부모님 따라 논밭으로 나가는 일도 힘들기만 했습니다. 해가 뜨면 이슬이 말라 잘 안 뽑힌다는 마늘종다리를 뽑기 위해서, 고추모종을 심는 날이나 씨 마늘을 심는 날에도 예외 없이 새벽이슬 털어가며 밭으로 따라 나서는 일은 고역이기만 했지요. 그 중에서도 고추 따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정쩡하게 구부린 채 익은 고추를 따다보면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팠지요. 식구들 각자에게 분배된 밭고랑은 길기만 한데 익은 고추는 또 얼마나 매운지 눈도 따갑고 손도 쓰리고 가려워 밭고랑에 숨어 눈물 콧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비료 포대기가 그리 큰 줄도 그때 알았지요. 아무리 채워도 반도 차지 않는 요술 포대 같은 비료 포대를 들고 하늘 한 번 보고 고추 고랑 한 번 보기를 얼마나 했던지요.
“어머니, 세상에서 고추 따기가 제일 어려워요.”
제가 그만 참지 못하고 고랑 너머에서 소리를 치면
“야야, 그기 다 니 입에 들어갈 건데 뭐가 그리 힘드노? 힘들거든 저쪽 둑에 가서 고마 앉아 쉬그라.”
하시면서도 정작 당신의 손은 쉼 없이 움직이셨지요. 제가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하늘 보는 척 허리 펴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굽은 허리 곧추 세우지 않으시고 묵묵히 귀한 열매들을 만지셨지요. 지금도 음식에 고춧가루를 넣을라치면 우리 어머니, 진득한 땡볕 아래 맵고 따가운 고추밭 그 긴 고랑에다가 흘리셨을 땀방울이 몇 포대였을지 생각하면 금방 콧속에 매운 고추 한 다대기 쏟아져 들어온 듯 눈시울 매워지니 촌 아지매 생활 13년, 이제야 겨우 저도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고추, 참깨 걷어낸 자리에 요즘은 김장용 배추와 무가 너른 밭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푸르디푸른 강물이 제 발 아래를 적실 것처럼 넘실거리는 풍경 앞에 서면 울렁증이 솟을 만큼 이맘때의 배추밭은 그 어느 근사한 풍경보다 아름답습니다. 제 어머니는 그 아름다움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하시지요. 네,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이 키우신 배추지만 정작 돈으로 치면 도시 사람들한테는 우습기 짝이 없는 금액이더군요. 세상에 그렇게 너른 밭을 메우는 배추들 몽땅 장에 내다팔아도 요즘 사람들 좋아한다는 명품 가방 하나 못 살 액수라니요.
그래도 그런 요량보다는 그저 사람 먹을거리니 몸에 해로운 비료나 농약은 겁나서 못 주고 볕 잘 드는 밭에다가 열심히 물과 거름을 만들어주시는 분입니다. 한약방에서 얻어온 약초 짠 찌꺼기들을 묵히고 음식물들을 잘 삭혀서 만든 거름이 비료나 농약보다 더 좋은 거라고 하시는 분이지요.
가끔 쌈 싸먹는 배추를 한두 포기씩 얻어와 도시에 사는 친구네로 혹은 지인들한테로 부쳐주면 세상 어느 고급한 선물보다 고마워하고 좋아하더군요. 어찌나 달고 고소한지 그런 맛은 처음이라고 그럴 때면 제가 도리어 그분들께 고맙고 즐거워집니다. 세상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촌구석에서 보내는 배추 한 포기에 그리도 기뻐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마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요즘 우리 일상의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불안한 요소가 되어 있는지 새삼 깨닫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이 절대적 화두이면서도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는 듯한 풍토이니 말입니다. 모 교수의 생명공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그를 영웅처럼 떠받드는 흥분의 경지까지 올라 있는 상태이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물은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다 아는 내용이라 시시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젠 내 집 밥상에 올리는 밥이며 김치까지도 사먹으라고 졸라대는 광고를 매일같이 대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김치 없이 밥 먹기 힘든 우리 정서 속에 정체모를 수입김치는 언제부터 그리도 가까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던 걸까요? 바깥 활동이 어느 때보다 많아지는 시대에 식당김치 먹기가 겁나는 사회, 아니 어디 가서 뭘 사먹는다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니 얼마나 슬프고 쓸쓸한 일인가요. 가끔 친구들이랑 우리 세대가 직접 김치 담아먹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라는 얘기 끝에 쓸쓸함을 나누기도 하는데 방송에서는 거두절미하고 배추 값 올랐다고만 호들갑을 떨어대지요. 금치 소리까지 해가며 비싸다고 떠들어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공연히 울화가 치밉니다. 당신들, 그 고운 손으로 배추 한 번 키워보실래요? 막 대들고 싶어집니다.
우린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최상인 세상에 살고 있긴 합니다. 어떡하든 손도 꼼짝 안하고 우아하고 편하게 사는 것만을 최상의 성공이라 여기는 세상이라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맛나고 좀더 안전하면서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농작물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쎄요, 배추 값이 금값이란 얘긴 농사짓는 걸 홀대하다가 나중에 정말로 농사지을 사람 없어 영양제 하나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날이 오면 그때에나 우리 모두 가슴 쥐어뜯으며 나누기로 하지요.
글 | 이명희 시인이고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