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은 국제 수리의 날이었다. 국제 수리의 날은 오픈수리국제연맹 ORA(Open Repair Alliance)가 폐기물이 야기하는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지정한 날로 매년 10월 세 번째 토요일이다.
지지부진한 수리권 제도 혁신
수리권, 즉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하기 위한 권리는 한정된 자원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선순환하기 위한 순환 경제의 핵심 개념이며,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유럽연합,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들이 수리권을 법률로 채택해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리권은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A/S 서비스보다 확대된 개념이다. ①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 설계 및 생산, ②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을 선택하기 위한 정보제공, ③법적 보증기간 내 수리 받을 권리,④보증기간 이후에도 수리의무를 부과해 수리할 권리, ⑤수리 기술과 부품 독점을 막고 수리 주체, 방식, 업체를 선택할 권리를 포함한다.
2022년 12월, 우리나라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제20조(지속가능한 제품의 사용)에 다음과 같이 수리할 권리가 포함됐다. 그러나 국내 법안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법적 보증기간 내에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부품을 확보하고, 부품을 제공하는 배송 기한을 의무화하는 것만 담고 있다. 그 외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할 수리에 필요한 사항은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서울환경연합은 현 수리권 법안이 시행되는 2025년 전까지 △기업이 수리가 쉽도록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소비자가 수리 방식 및 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소비자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서울환경연합이 수리권에 대한 실질적인 법률 근거 마련을 위해 진행한 수리실패사례조사와 10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리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3년 8월 13일부터 10월 18일까지 진행한 수리실패사례조사의 경우 158건의 제보를 받았다. 조사결과 접수된 제품의 사용 기한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9.1%로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6개월 이상 1년 미만 13.9%, 3년 이상 5년 미만이 14.6%를 차지했다. 즉, 구매한 제품이 5년이 안되어 고장 나 수리에 실패한 경우는 총 65.2%나 차지했다. 이처럼 제품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고장이 났다는 것은 생산단계부터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를 나타낸다.
그리고 수리를 실패한 품목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3.8%가 소형가전(공기청정기, 청소기, 선풍기,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등)에서 수리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수리를 실패한 제조사의 경우 기타(43.1%), LG(13.1%), 삼성(8.5%), 애플(6.9%), 쿠쿠(4.6%) 순으로 나타났다. 기타 항목의 50%는 중소기업의 소형가전으로 기존 대형가전 중심의 A/S 수리만으로는 수리를 필요로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기업이 A/S 수리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수리비용이 신제품의 가격보다 비싸서 새로 구입하는 것을 권유받은 사례도 다수 있었다.
기업의 수리권 독점을 해소하라
올해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서울환경연합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리권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환경연합
수리비용에 관한 문제는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10월에 진행한 수리인식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기업의 수리 서비스 독점으로 발생하는 문제 중 어떤 것이 가장 심각한지 묻는 질문에 ‘제품 가격보다 높은 수리비용’이 48.4%로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했다. 기업은 수리 비용을 높게 책정해서 소비자가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의 수리독점을 규제할 필요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수리권 법안에 우선적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이 46.1%로 가장 많았다. 기존의 제품들이 수리가 어렵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시민들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수리에 대한 정보(보증기간, 자가 수리 정보제공 등)를 제품의 포장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83.8%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프랑스의 ‘수리 등급 표시 의무화 제도’와 같이 수리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국내에도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리해서 사용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질문에는 82.9% 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시민들은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고자하며, 일상 속에서 수리할 권리가 확대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리할 권리 법안이 시행되는 것은 2025년이다. 수리할 권리가 담긴 첫 법안인 만큼 남은 1년 2개월 동안 국내에서의 치열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서울환경연합은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수리할 권리 확대를 위해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의 서명( https://seoulkfem.or.kr/suri)을 받기 시작했다. 모인 서명은 정부와 국회에 전달해 기존의 법안에 확대된 수리할 권리 조항이 포함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2025년 수리할 권리 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다. 고쳐 쓸 권리, 수리권을 보장하라!
글 | 허혜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활동가
지난 10월 21일은 국제 수리의 날이었다. 국제 수리의 날은 오픈수리국제연맹 ORA(Open Repair Alliance)가 폐기물이 야기하는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지정한 날로 매년 10월 세 번째 토요일이다.
지지부진한 수리권 제도 혁신
수리권, 즉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하기 위한 권리는 한정된 자원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선순환하기 위한 순환 경제의 핵심 개념이며,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유럽연합,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들이 수리권을 법률로 채택해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리권은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A/S 서비스보다 확대된 개념이다. ①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 설계 및 생산, ②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을 선택하기 위한 정보제공, ③법적 보증기간 내 수리 받을 권리,④보증기간 이후에도 수리의무를 부과해 수리할 권리, ⑤수리 기술과 부품 독점을 막고 수리 주체, 방식, 업체를 선택할 권리를 포함한다.
2022년 12월, 우리나라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제20조(지속가능한 제품의 사용)에 다음과 같이 수리할 권리가 포함됐다. 그러나 국내 법안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법적 보증기간 내에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부품을 확보하고, 부품을 제공하는 배송 기한을 의무화하는 것만 담고 있다. 그 외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할 수리에 필요한 사항은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서울환경연합은 현 수리권 법안이 시행되는 2025년 전까지 △기업이 수리가 쉽도록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소비자가 수리 방식 및 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소비자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서울환경연합이 수리권에 대한 실질적인 법률 근거 마련을 위해 진행한 수리실패사례조사와 10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리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3년 8월 13일부터 10월 18일까지 진행한 수리실패사례조사의 경우 158건의 제보를 받았다. 조사결과 접수된 제품의 사용 기한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9.1%로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6개월 이상 1년 미만 13.9%, 3년 이상 5년 미만이 14.6%를 차지했다. 즉, 구매한 제품이 5년이 안되어 고장 나 수리에 실패한 경우는 총 65.2%나 차지했다. 이처럼 제품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고장이 났다는 것은 생산단계부터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를 나타낸다.
그리고 수리를 실패한 품목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3.8%가 소형가전(공기청정기, 청소기, 선풍기,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등)에서 수리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수리를 실패한 제조사의 경우 기타(43.1%), LG(13.1%), 삼성(8.5%), 애플(6.9%), 쿠쿠(4.6%) 순으로 나타났다. 기타 항목의 50%는 중소기업의 소형가전으로 기존 대형가전 중심의 A/S 수리만으로는 수리를 필요로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기업이 A/S 수리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수리비용이 신제품의 가격보다 비싸서 새로 구입하는 것을 권유받은 사례도 다수 있었다.
기업의 수리권 독점을 해소하라
올해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서울환경연합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리권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환경연합
수리비용에 관한 문제는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10월에 진행한 수리인식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기업의 수리 서비스 독점으로 발생하는 문제 중 어떤 것이 가장 심각한지 묻는 질문에 ‘제품 가격보다 높은 수리비용’이 48.4%로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했다. 기업은 수리 비용을 높게 책정해서 소비자가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의 수리독점을 규제할 필요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수리권 법안에 우선적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수리가 쉽고 수명이 긴 제품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이 46.1%로 가장 많았다. 기존의 제품들이 수리가 어렵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시민들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수리에 대한 정보(보증기간, 자가 수리 정보제공 등)를 제품의 포장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83.8%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프랑스의 ‘수리 등급 표시 의무화 제도’와 같이 수리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국내에도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리해서 사용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질문에는 82.9% 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시민들은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고자하며, 일상 속에서 수리할 권리가 확대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리할 권리 법안이 시행되는 것은 2025년이다. 수리할 권리가 담긴 첫 법안인 만큼 남은 1년 2개월 동안 국내에서의 치열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서울환경연합은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수리할 권리 확대를 위해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의 서명( https://seoulkfem.or.kr/suri)을 받기 시작했다. 모인 서명은 정부와 국회에 전달해 기존의 법안에 확대된 수리할 권리 조항이 포함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2025년 수리할 권리 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다. 고쳐 쓸 권리, 수리권을 보장하라!
글 | 허혜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