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들의 수리 소확행

이탈리아 사람 다니엘레는 산업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지만, 단종된 클래식카를 고쳐 파는 일도 합니다. 본업에서 축적된 지식과 개인적으로 배운 정비기술을 이용한 부업 겸 취미입니다. 예를 들면 1963년 출시돼 1976년 단종된 란치아 사의 중형차 ‘풀비아’가 폐차 수준으로 방치돼 토끼장으로 이용되는 걸 보고는 감자 한 망 값에 구입해 고치는 식입니다. 다니엘레는 1954년 출시돼 2020년 단종된 알파로메오 사의 준중형 차량 ‘줄리에타’도 수리했습니다. 수리한 차량은 차량등록소(Motorizzazione Civile)에서 안전과 운행성능 평가를 받고 차량승인(omologazione)을 받으면 다른 이에게 팔 수 있습니다. “오몰로가찌오네를 통과할 정도로 수리 실력 있는 개인이라면 시민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요.”

다니엘레의 취미이자 부업은 한국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 자비를 들여 공업사 수준의 장비를 갖춘다 해도 관인 ‘1급공업사’를 통하지 않는다면 ‘엔진, 브레이크, 조향장치’ 등 3대 중요부분의 개인 수리는 불법입니다. 잘 고쳐서 자동차검사(신차 구입 후 4년, 이후 2년마다 실시)를 통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개인이 중요부분을 수리할 장비를 구비하기도 비용상 어려울뿐더러 정비기술의 문제가 아닌 정비 주체가 ‘1급공업사(일반 공업사도 안 됩니다)’로 정해져 있어 개인 수리는 불법이 됩니다. 우리나라 제도가 안전에 그만큼 더 까다로우니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수리한 차의 안전성을 검사하면 될 일이지 개인의 수리권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자동차처럼 전문성이 요구되는 제품 말고 자잘한 일상 생활소품의 경우는 어떨까요? 

서울환경연합이 수리권 신장 캠페인의 일환으로 추진한 ‘뭐든지 수리소’에 들어온 시민들의 수리 요청 제품과 그 수리 결과를 보면 일상 생활제품의 수리권 보장 실태를 알 수 있습니다. 수리에 성공한 경우를 보면 단순한 전선 단락, 배터리액 누수 등으로 인한 접지 불량 등 간단한 지식만 습득하면 원인과 처치를 직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수리 실패의 경우에는 교체할 부품을 더 이상 시장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원순환사회는 재활용사회 이전에 재사용사회가 돼야 가능합니다. 고장 나면 다 해체해서 부품을 물질 재활용하기 전에 고장을 수리해 다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제조사들이, 단종이 되어도 중요한 부품들을 계속 공급하거나, 회사가 없어져도 그 제품을 수리할 수 있도록 대체 부품 구입처를 온라인 상에 공개해 시민들이 직접 수리, 또는 수리 의뢰를 할 수 있는 수리 인프라 구축에 나서도록 국가가 강제해야 합니다.  

고치고 싶은 생활소품들은 대부분 오래, 즐겨 사용하던 애장품들입니다. 애장품은 제품을 넘어섭니다. 생활반려제품이 되는 겁니다. 정해진 주기에 제품이 고장나도록 제품수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생산기법을 ‘계획된 노후화’라고 합니다. 계획된 노후화로 인해 멀쩡한 제품이 한두 군데의 부품 이상으로 작동불능이 되고 그 부품을 교체하자니 새 제품가격과 맞먹어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제품을 사는 일은 자원순환사회를 향한 거대한 산업적 어깃장입니다. 

“고쳐 쓸 수 있는 법과 고칠 수 있는 수리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국가에 요구해야 합니다. ‘뭐든지 수리소’에 ‘내 애장품 고쳐주세요!’ 요청했던 시민들의 사례를 공유합니다. 사연에 공감하신다면 우리 사회의 수리권 신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금세 알게 되실 겁니다. 카세트플레이어, 마사지기 같은 소소한 물품에서 시작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제품을 시민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고쳐 쓸 수 있는 사회가 자원순환사회의 밑돌입니다. 


서울환경연합 '뭐든지 수리소'에서 김규형 님의 선풍기 하단 기판을 확인하는 이태수 엔지니어 ⓒ함께사는길 이성수


공동기획 |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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