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에 꼭 필요한 소비기한 표시제!

2019년 세계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13억 톤, 여기서 배출되는 탄소는 33억 톤이며 유통기한에 따라 폐기된 식품의 손실 비용은 1조5천억 원 수준에 달한다. 이렇게 버려지거나 유통 과정에서 손실된 음식으로 발생한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며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 된다면 2030년 지구촌에서는 초당 무려 66톤의 음식물이 폐기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잉거 안데르센(Inger Andersen)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음식물 쓰레기는 폐기물 관리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전 세계 식량 불안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생물의 다양성 손실, 환경 문제까지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사) 소비자기후행동(이하 소기행)은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소비기한표시제에 주목해 왔다. 소비기한표시제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제안된 여러 솔루션 중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소기행은 소비기한을 촉구하는 인증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릴레이식으로 올리는 ‘앵그리푸드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 캠페인에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지역 인사, 소셜 인플루언서 등 5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해 소비기한표시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6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 논의를 앞두고 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서명운동, 성명서 발표, 소속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전화, 메일, 팩스 등을 통해 조속히 소위 논의를 마무리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힘을 모아달라는 소비자의 의지를 전하는 등 전국의 회원들이 긴급 행동을 진행했다. 



지난 6월 12일 소비자기후행동과 환경연합 등 소비자단체와 환경단체는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기한표시제 도입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발견한 100명의 소비자 중 56명은 폐기하는 쪽을 선택한다.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의 84.3%는 유통기한이 여유 있게 남아 있는 제품을 선택하고, 51.6%의 소비자는 유통 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아예 구매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 유통기한 표시제를 도입해 적용해 오고 있다. ‘유통기한’(sell-by date)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으로 제품의 특성이나 보존·유통방법을 고려해 품질과 위해 방지를 보장하는 기간이다. 다시 말해 유통기한은 생산자나 유통업자 입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반해 ‘소비기한’(use-by date)은 규정된 보관 조건하에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표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기한은 소비자들이 섭취 여부를 결정하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폐기 시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식품을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EU를 포함한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소비기한을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식품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을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소비기한표시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법안(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이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되었고 국회에서 계류해 오다 2021년 6월 17일 보건복지위 소위에서 가결되었다. 



소비기한표시제의 기대 효과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의 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제품은 유통기한보다 소비기한이 훨씬 더 길다. 부패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유제품의 경우 우유의 유통기한은 10일인데 소비기한은 60일이다. 슬라이스치즈의 유통기한이 180일이지만 소비기한은 250일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유통과정에서 제품에 표시된 보관 조건이 잘 지켜졌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과거와 달리 냉장 유통 시스템이 발전해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낮아졌고, 제도가 정착될 경우 충분히 섭취 가능한 제품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하거나 반품하는 데서 발생하는 탄소와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식품 폐기물은 식품을 생산·유통·가공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구입한 후 보관하고 조리하는 과정 그리고 섭취 후에 이르기까지 식품의 일생에 걸친 모든 단계에서 발생한다. 이 중에서 유통·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식품 폐기물이 57%, 먹고 남긴 쓰레기가 30%를 차지한다. 그 중 유통단계나 대형음식점, 단체급식소보다 가정과 소형음식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로 가장 크다. 가정이나 소형음식점에서 식품을 기한 내에 소비하고 조리된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식품 폐기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가정과 소형음식점을 포함하여 모든 경로로 2018년에 발생한 식품 폐기물은 하루 평균 1만6221톤, 연간 592만 톤에 이르고 이 수치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왔다. 식품 폐기물은 전체 쓰레기 발생량의 28.9%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통기한으로 인해 폐기된 식품이 포함되어 있다.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적인 비용은 생산과 유통 과정에 투입된 원재료 및 에너지 등의 비용과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이런 직접비용에 자연과 인간이 부담해야 하는 간접적인 비용까지 고려하면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총비용은 훨씬 더 커진다. 음식물 쓰레기는 매립되거나 소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재활용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처리되든지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온실가스가 발생하여(이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메탄으로 이산화탄소보다 23~25배 온실효과가 크다) 자연과 인간에게 큰 부담을 준다. 

환경부 자료(2013)에 따르면 버려지는 음식물로 인해 연간 약 20조 원이 낭비되고 있으며 4인 가족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환산하면 724kg(CO2eq)이 된다. 이는 20~30년생 소나무 148그루의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맞먹는 규모이다. 전 국민이 20%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게 되면 연간 18억kwh의 에너지를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연간 177만 톤을 줄일 수 있다. 


탄소 중립 실현 위한 소비기한표시제

물론 소비기한표시제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정부는 기후위기와 맞서 싸운다’로 헌법 1조를 개정하려는 프랑스의 예처럼 무엇보다 탄소중립 실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며 기업도 혁신을 거듭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 각 영역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솔루션은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고 상용화되기 위해 기술과 시간, 비용 등의 조건이 더 익었을 때 가능한 대안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소비기한표시제는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며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소위를 통과한 소비기한표시제가 상임위와 법사위 논의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이 원안대로 입법이 돼 205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소비자기후행동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모아낼 것이다. 


| 이차경 (사)소비자기후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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