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붉은 수돗물’을 만들었나


인천시는 녹물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인 지난 6월 27일 서구지역의 한 급배수 계통 소화전에서 이토작업을 진행했다 ⓒ인천시


‘붉은 수돗물’이라니.

 ‘듣기만 해도 오싹한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아마 ‘검안검단 맘카페’에서였을 것이다. 아이를 둔 엄마들이니, 진홍색의, 때론 시커멓기까지 한 수돗물에 놀라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럴만했다. 

 그렇지만 진짜 사단이 난 것은 인천시가 보도자료에 ‘붉은 수돗물’이라고 명명했을 때부터였다. 흔한 ‘녹물 수돗물’을 ‘붉은 수돗물’이라고 지자체가 이름 붙이면서, 사고는 기존의 것과 다른 엄중한 무엇이 되었고, 대책은 더 특별해져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노후관로’였다. 관련 전문가들이 여러 매체에 나와 일제히 노후관로를 문제의 원인과 대책으로 지적했다. 시민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막대한 비용 탓에 어찌하기 힘든 문제라고 핑계 댈 수 있으니 책임을 면하고픈 지자체 관리자들까지 가세해 노후관로 문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조금만 자료를 찾아봐도 이런 논리는 참으로 어색하다. 사고가 난 인천 서구는 겨우 20년 된 신도시라 노후관로가 없다. 서울의 문래동 역시 2005년에 설치한 관로를 통해 공급을 받았다. 문래동으로 유입되기 전 단계에 오래된 관로가 있으나, 그 관로를 지나온 지역 중 일부에서만 녹물이 발생했으니 일반화하기가 어렵다. 


 시민들 불신과 분노 키운 거짓말

 “수계 전환 전 10시간 정도 (준비 시간이) 걸리는데, 10분 만에 밸브를 열어 압력을 2배까지 올리고 2~3시간 만에 물을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탁도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부유 물질을 빼내는 것도 대응 가능한데, 그 모든 것을 다 놓쳤다. 100퍼센트 인재라고 본다.” 인천의 녹물 발생 원인에 대해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6월 18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대단한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수계(수돗물 공급 경로) 전환 과정에서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사고 후 열흘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시민들에게 수돗물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거짓말을 한 게 본질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민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리저리 돌리며 책임을 떠넘긴 것도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인천 사고 후 20일 만에 발생한 서울 문래동 녹물 사태 대응 역시 전혀 진화하지 못했다. 성급하게 수돗물의 수질이 안정화 됐다고 주장하고, 노후 관로 개선을 위해 727억 원을 추경으로 편성하고 올해 내에 시작하겠다고 한 것도 스텝을 꼬이게 했다. 사실도 아니거니와 대책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울시 문래동의 녹물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노후 관로가 문제라고 발표했으니, 다른 이유를 찾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대책을 앞세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여지껏 문래동 일대의 수질을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조사단 회의에 주민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이는 정보를 공개할 만큼 자신이 없는 상태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많은 탓일 테다. 어쨌든 이렇게 감추고 숨는 동안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수돗물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문래동 사고의 원인은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도 그렇고 인천시도 그렇고,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아직도 생수로 음식을 하고, 수돗물의 탁도를 시시각각 확인하며 살고 있다.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은 사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사고 즈음에 발생한 노폐물들을 수도 관로 속에서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소화전이나 가정의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빼내고 있지만, 이들은 관로 속의 녹물 배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다. 의당 수도 관로라면 있어야 할 이토(泥土, 관로 안에 쌓인 이물질) 밸브가 없는 탓이다. 이들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관로의 세척이나 청소를 위한 계획이 없었으며, 설혹 이토 밸브를 설치하더라도 이를 개방했을 경우 나오는 물과 배제된 용수를 받아 낼 하수 관로를 어떻게 운영할지 모르고 있었다. 20년 된 인천 서구 관로나 14년 된 문래동 관로나 단 한 번 세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고를 낸 근본 원인이다.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녹물은 또 나올 것이다. 그나마 사태가 진정되어 가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서울시와 인천시가 수도 관로 일부에 이토 밸브를 부랴부랴 설치하고, 퇴수 작업을 시작한 때문이라고 본다. 

 

노후 관로 교체? 논점 벗어나

 그동안 정부는 물 정책에 많은 예산을 써 왔다. 환경부가 생긴 이후 25년간 환경부 예산의 3분의 2를 물 분야에 써 왔다. 하지만 그 기간 강의 수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댐, 제방, 정수장, 상하수 관로의 규모는 세계적인 성취를 이뤘는데 수돗물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물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인천 사고 10일이 지날 때까지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환경부의 역량도 짚어봐야 한다. 서울시 문래동 사고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변변한 의견조차 내지 않았다. 수십 만의 시민이 물을 못 먹고, 전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하지 못한 환경부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환경부의 이런 무기력과 무능은 지난 10년 이상 수돗물 정책을 포기하다시피한 관행의 결과다. 올 초까지 있었던 수도정책과의 주요 업무는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물산업공단) 조성이 주축이었고, 생수와 정수기 산업 육성 등이 또 주요 업무였다. 이렇게 수돗물 정책이 변방이다 보니, 지금 물이용계획과에는 수도 업무에 능통한, 아니 2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관료들을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됐다.

 필자가 노후 관로 교체 주장을 거칠게 비판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대책 마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도 관로는 무려 20만9000킬로미터이고, 20년이 넘은 관로는 6만8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를 교체하려면 수십조 원의 예산이 들 뿐더러 공사하면서 겪는 불편 등을 감안할 경우 이걸 실제로 진행한다면 대규모 재앙에 해당될 것이다. 단순히 재정뿐만 아니라 시민 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관로의 대규모 교체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결국 수돗물 불신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어려운 원인과 대책 때문이었다면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노후 관로를 교체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와 노후 관로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논점을 이탈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후 관로라는 개념이 어디 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은 40년, 미국은 75년, 영국·캐나다는 100년을 쓰는데, 한국에선 20년 이상 쓰고 있어서 문제라는 건 과잉이다. 특히 수돗물을 처음 만들어 쓴 로마의 관로는 2000년이 된 것도 있고, 로마시대에 만든 수도꼭지 중 960개는 아직도 사용 중이다.

 

비뚤어진 수도정책 다시 세워야

 수돗물 정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조금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첨단기술이거나 심각하게 복잡한 산업이 아니다. 전문가들이나 정부가 독점할 일이 아닌데도 자기들끼리 속닥여가면서 성급히 대책을 내놓는다. 이는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차분히 진단하고, 국민의 도움을 얻어가며 풀어야지, 갑자기 무슨 비법이나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고는 관리 인력의 역량 부족이 발단이고, 사태 처리 능력의 부재가 일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시설이 아니고 돈도 아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체계를 정비하지 못했으며, 시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쳐 온 것이 문제다. 이제라도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우자.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며, 시민과의 소통체계를 개량하자. 그리고 관로와 정수장 등의 문제까지 살펴보자.

 수돗물 정책을 새로 세워야 한다.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서울과 인천과 같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수십 년간 비뚤어진 수도 정책을 다시 세우기 위해 너무 성급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일을 참자. 진지하게 논의하고 책임 있게 대책을 낼 정부 기구를 구성해 운영했으면 한다. 그리고 노후 관로 교체만 강조하고픈 이들은 빠져주셨으면 한다.

 

 

글 / 염형철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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