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빨리 버리는 시대의 ‘MUCH LOVED’ 스토리
집 안팎의 기물과 용품에 인터넷이 연결되는 시대. 심지어 매일 택배로 배달되는 식재료에도 바코드가 붙어있어 이력이 추적되는 시대. 사물 인터넷 시대를 산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모든 사물들은 최신식이다. 이전의 사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 번 입고 버리는 일회용 의류는 속옷에서 시작해 티셔츠를 넘어 정장까지 한 번 입고 빨리 버리는 옷들이 넘쳐나고 날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품들이 배달되지만 그만큼 빨리 사들인 물건들이 버려진다. 기억을 넘어 기념이 되었던 생활의 소도구들이 소각장으로 매립지의 지하로 사라져간다. 우리는 왜 물건을 한두 번 쓰고 버리게 됐을까?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내게로, 처음에는 틀림없이 통통했을 가락지는 유전되었다. 이제 외면은 둥글지만 손가락이 닿는 곳은 타원에 가깝게 된 그 가락지의 존재에 새겨진 것은 시간의 적층 속에 이어져 온 사랑의 연대기다. 우리들 사랑의 연대기가 새겨진 사물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많이 사랑받은(Much Loved)’ 물건들이 있고 없음이 뿌리 있음과 없음의 가장 명확한 차이다. 뿌리 없는 삶에는 아낌도 없고 책임도 없다. 사용가치는 아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용가치를 넘어 소장가치를 더하는 내 손 안의 물건들은 사물이 아니라 귀물이 된다. 귀물만 쓰는 귀한 손들이 많아져야 쓰레기가 삶을 뒤흔드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
많이 사랑받은 흔적이 담긴 ‘내 가장 나종 지니게 될 것’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흔들리지 않는 박자와 리듬을 가진 삶의 이야기, 소비의 역사가 아니라 삶의 역사가 거기 있다. ‘그 얘기 나도 써보고 싶다.’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살게 되기를….

조수자(환경보건시민센터 공해피해자지원위원회 위원장)의 자명종과 귀이개
조수자의 자명종과 귀이개
그이의 귀이개는 그이의 할머니가 쓰시던 것이다. 당신 무릎에 그이 머리를 누이고 귀지를 파주시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그 귀이개를 그이는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음각된 손잡이는 은제임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녹이 슬고 손길에 닳아 귀삽 반대편 끝은 바늘처럼 뾰족해졌어도 이 귀이개는 조카딸의 딸이 “내 거 할래!” 탐내는 것이다. 그이에겐 오십여 년 전 생긴 자명종도 있다. 이 구식 자명종은 여전히 매일 아침 씩씩하게 “따르릉” 울어 그이를 깨운다. 아침잠 많은 그이를 깨우던 할머니의 목소리처럼.

이지현(재단법인 숲과나눔 사무처장)의 금가락지
이지현의 금가락지
“너는 네 동생 신발 벗어놓은 댓돌 근처에도 못 간다.”고 말할 정도로 손자 사랑이 남달랐던 옛날 분이셨지만, 할머니는 그이에게 한복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인형 이불도 드르륵 박아 만들어 주고, 먹고 싶다 말만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어이 만들어 상에 올려 주시던 분이었다. 그이 결혼 즈음,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셨는데 혼례 코앞의 어느 하루 “이리 와 앉아봐라!” 하시더니 손에 늘 끼고 있던 가락지를 빼내 손에 쥐어 주셨다. 스물일곱의 그이는 촌스러운 황금색 가락지가 부담스러워 손사래를 쳤지만 일생 아낀 반지를 물려주는 마음을 생각하니 끝내는 묵연히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평생 지닌 탓에 안팎이 원형을 잃은 그 반지를 곱게 재가공해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끼고 보고 쓰다듬는다. 백년을 이어지는 사랑의 기억으로 반짝인다, 그 반지.

정명희(녹색연합 사무처장)의 놋그릇
정명희의 놋그릇
돌아가신 시할머니의 혼수품이었다는 그이의 놋그릇. 애초에는 여러 벌의 놋그릇 세트가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공출로 빼앗겨 지금은 작은 반찬그릇, 간장종지 같은 것만 남았다. 시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이 그릇들을 물려주었고 그이는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100년을 훌쩍 넘은 이 놋그릇들은 그이의 12살, 8살 두 아이의 밥그릇, 국그릇으로 지금도 잘 쓰이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쌀밥이, 시원한 콩나물냉국이 놋그릇 속에 담겨 있다. 세대를 이어온 사랑의 온기가 따습다.

최재숙(에코생협 상무이사)의 재봉틀
최재숙의 재봉틀
30년 전, 월급이라 말하기 쑥스러운 급여를 받는 NGO 활동가였던 그이는 큰 맘 먹고 이 재봉틀을 샀다. 어머니의 발틀 재봉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이 편리한 전동식이었다. 오늘날에야 인터넷 쇼핑몰에만 가도 더 작고 더 좋은 성능의 재봉틀이 넘쳐나지만 당시로선 최신제품이었다. 이 재봉틀로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재봉작업은 처음으로 본격적인 옷 만들기에 도전했던 블라우스 만들기였다. 같은 도안을 가지고 동대문에서 공동구매한 린넨천으로 함께 블라우스 만들기에 도전했던 그이의 재봉 친구들은 결과적으로 다들 자기만의 블라우스를 갖게 됐다. 제 손으로 입새를 꾸미는 삶의 시간이 “드르륵” 재봉틀 소리를 타고 흘러간다.

정임선(환경운동연합 회원 가족)의 선풍기
정임선의 선풍기
이 선풍기의 나이는 42살이다. 1977년 초여름, 작은 아주버님이 이 국산 선풍기를 사들고 오셨다고 한다. 그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름마다 수고가 많지만 고장 한 번 나지 않고 성능이 떨어지지도 않고 찬바람을 만들어왔다.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가정용 전력이 바뀌면서 사용하려면 변압기가 필요해졌지만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에어컨을 들인 뒤에는 오히려 더 알뜰하게 쓸모가 있다. 오늘도 그이 집 거실 에어컨의 냉기를 문 열린 방방마다 회전하는 선풍기 날개가 실어 보낸다.

이성수(함께사는길 국장, 포토그래퍼)의 사진가방
이성수의 사진가방
어쩌면 이 가방이 보낸 세월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십 년이 됐을 뿐이니. 그러나 그가 사진기자로 살아온 세월이 25년임을 생각하면 그의 활동 대부분을 함께 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해지고 닳아서 남들이면 다 버렸을 물건이지만, 장비가 늘어 이제는 캐리어처럼 생긴 새 가방도 있지만 여전히 그는 자주 이 가방을 들고 취재를 간다. 보지 않고도 가방 안에 어떤 렌즈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찾을 수 있는 손에 익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손이 가방을 기억한다면 가방도 그 손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과 사물은 서로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맺는다.

홍혜란(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의 서랍장
홍혜란의 서랍장
그이는 중학생 때 이 서랍장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다. 40년이 넘는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지만 서랍장은 그이의 삶의 자리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그이 곁을 지켜왔다. 애초 서랍장에는 학용품과 학습서들이 담겼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된 뒤에는 옷과 화장품도 담겼었고 때론 일하던 서류들이 보관되기도 했다. 이제는 가족과 자신의 기억이 담긴 소품들이나 사진을 담은 앨범들을 넣어둔다. 서랍장 그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그 장에 담긴 것들 또한 삶의 기억을 담은 것들이다. 이 서랍장은 그래서 기억의 저장고와도 같다.
박현철 편집주간
쓰고 빨리 버리는 시대의 ‘MUCH LOVED’ 스토리
집 안팎의 기물과 용품에 인터넷이 연결되는 시대. 심지어 매일 택배로 배달되는 식재료에도 바코드가 붙어있어 이력이 추적되는 시대. 사물 인터넷 시대를 산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모든 사물들은 최신식이다. 이전의 사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 번 입고 버리는 일회용 의류는 속옷에서 시작해 티셔츠를 넘어 정장까지 한 번 입고 빨리 버리는 옷들이 넘쳐나고 날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품들이 배달되지만 그만큼 빨리 사들인 물건들이 버려진다. 기억을 넘어 기념이 되었던 생활의 소도구들이 소각장으로 매립지의 지하로 사라져간다. 우리는 왜 물건을 한두 번 쓰고 버리게 됐을까?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내게로, 처음에는 틀림없이 통통했을 가락지는 유전되었다. 이제 외면은 둥글지만 손가락이 닿는 곳은 타원에 가깝게 된 그 가락지의 존재에 새겨진 것은 시간의 적층 속에 이어져 온 사랑의 연대기다. 우리들 사랑의 연대기가 새겨진 사물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많이 사랑받은(Much Loved)’ 물건들이 있고 없음이 뿌리 있음과 없음의 가장 명확한 차이다. 뿌리 없는 삶에는 아낌도 없고 책임도 없다. 사용가치는 아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용가치를 넘어 소장가치를 더하는 내 손 안의 물건들은 사물이 아니라 귀물이 된다. 귀물만 쓰는 귀한 손들이 많아져야 쓰레기가 삶을 뒤흔드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
많이 사랑받은 흔적이 담긴 ‘내 가장 나종 지니게 될 것’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흔들리지 않는 박자와 리듬을 가진 삶의 이야기, 소비의 역사가 아니라 삶의 역사가 거기 있다. ‘그 얘기 나도 써보고 싶다.’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살게 되기를….
조수자(환경보건시민센터 공해피해자지원위원회 위원장)의 자명종과 귀이개
조수자의 자명종과 귀이개
그이의 귀이개는 그이의 할머니가 쓰시던 것이다. 당신 무릎에 그이 머리를 누이고 귀지를 파주시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그 귀이개를 그이는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음각된 손잡이는 은제임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녹이 슬고 손길에 닳아 귀삽 반대편 끝은 바늘처럼 뾰족해졌어도 이 귀이개는 조카딸의 딸이 “내 거 할래!” 탐내는 것이다. 그이에겐 오십여 년 전 생긴 자명종도 있다. 이 구식 자명종은 여전히 매일 아침 씩씩하게 “따르릉” 울어 그이를 깨운다. 아침잠 많은 그이를 깨우던 할머니의 목소리처럼.
이지현(재단법인 숲과나눔 사무처장)의 금가락지
이지현의 금가락지
“너는 네 동생 신발 벗어놓은 댓돌 근처에도 못 간다.”고 말할 정도로 손자 사랑이 남달랐던 옛날 분이셨지만, 할머니는 그이에게 한복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인형 이불도 드르륵 박아 만들어 주고, 먹고 싶다 말만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어이 만들어 상에 올려 주시던 분이었다. 그이 결혼 즈음,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셨는데 혼례 코앞의 어느 하루 “이리 와 앉아봐라!” 하시더니 손에 늘 끼고 있던 가락지를 빼내 손에 쥐어 주셨다. 스물일곱의 그이는 촌스러운 황금색 가락지가 부담스러워 손사래를 쳤지만 일생 아낀 반지를 물려주는 마음을 생각하니 끝내는 묵연히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평생 지닌 탓에 안팎이 원형을 잃은 그 반지를 곱게 재가공해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끼고 보고 쓰다듬는다. 백년을 이어지는 사랑의 기억으로 반짝인다, 그 반지.
정명희(녹색연합 사무처장)의 놋그릇
정명희의 놋그릇
최재숙(에코생협 상무이사)의 재봉틀
정임선(환경운동연합 회원 가족)의 선풍기
이성수(함께사는길 국장, 포토그래퍼)의 사진가방
홍혜란(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의 서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