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피해구제금 못 내!’ 우기다 지각 납부

2023년 5월 1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방00 씨가 향년 65세로 사망했다. 1815번째 가습기살균제 사망자이다. 방 씨는 이마트에서 구매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사용하고 난 뒤 2011년 폐암이 발병하였고, 12년간 투병한 끝에 눈을 감았다. 고인은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왔으며, 산소발생기를 착용한 채 피해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로부터 피해구제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옥시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지도 못했다. 그는 평소 자주 교류하던 피해자에게 ‘억울하다’는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억울하다. 단지 마트에서 몇천 원짜리 공산품을 사서 썼을 뿐인데 배우자가 죽고, 아이들의 숨이 막히고, 온 가족이 평생 불치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해기업과 많은 전문가들, 변호사들, 그리고 언론은 PHMG, CMIT/MIT 같은 복잡한 화학물질 이름을 거론하며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위해성을 논하지만 사실 피해자들에게는 굳이 어려운 성분명이 필요하지 않다. 피해자들에게 가습기살균제는 그저 마트에서 파는 5000원짜리 독약일 뿐이었다. 심지어 ‘옥시싹싹’ 라벨에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억울할 노릇이다.


가해기업의 분담금 납부 거부가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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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2차 피해구제분담금 납부를 거부한 옥시에 항의해 2023년 5월 9일 옥시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 참사 피해자들 Ⓒ환경보건시민센터


옥시는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여러 의무들을 위반하여 소비자들에게 독약을 팔았고 대표이사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7년간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가습기살균제의 절반 이상이 ‘옥시싹싹’이었고, 2022년 기준 가습기살균제 사망피해 인정자의 85.6%가 옥시 제품을 사용했다. 여러 가해 기업이 있지만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의 책임이 더욱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옥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2017년 제정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위한특별법」은 가습기살균제를 생산·판매한 기업이 생산·판매 비율에 따라 피해구제분담금을 납부하게 하는데, 이 피해구제분담금을 통해 피해자들은 정부로부터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간병비 등을 지급 받는다. 또한 특별법은 피해의 종료시점이 없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을 고려하여 1차로 걷은 분담금이 모두 소진되면 정부가 기업들에게 분담금을 다시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7년 1차로 걷은 1250억 원의 피해구제분담금이 거의 소진되자 올해 2월 환경부는 18개 기업들에게 2차 분담금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지난 4월 분담금 704억원을 납부해야 하는 옥시가 환경부의 분담금 부과에 이의를 신청하고 납부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분담금 납부 거부의 이유를 묻는 한 언론사에 옥시가 보낸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당사는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이의 신청했고, 분담금 납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인 사안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움을 양해 바랍니다.”

그러나 3월에 공개된 옥시의 본사인 영국 레킷벤키저의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그들은 한국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한 예비금으로 77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250억 원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전체 피해구제분담금과 거의 일치하는 액수다. 심지어 보고서에는 한국 정부가 올해 피해구제분담금 부과를 옥시에 고지한 사실까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돈이 있는데도, 돈을 내야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법과 절차를 들먹이며 버티는 것이다. 5월 9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열린 1815번째 가습기살균제 사망피해자 추모 및 옥시 항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수진 피해자는 옥시의 행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옥시는 항상 저런 식이에요. 자기들을 자꾸 압박하면 파산하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회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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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주요 가해기업인 ‘옥시’의 글로벌 본사인 국제적 화학사 ‘래킷그룹’이 펴낸 「2022 연례보고서」 208p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 참사 경과, 피해 구제에 대한 한국 정부 법적 명령이 적시돼 있고, 피해자들의 민사 소송이 줄을 이을 거라는 전망이 게재돼 있다


정부는 뭘 하고 있나?

타인과 갈등이 있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많은 경우 ‘법대로 하자’는 말은 강제로 해야 할 일이 아니면 무엇도 너를 위해 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법은 옥시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피해자 지원과 배상을 막은 적이 없지만, 옥시는 항상 법을 방패 삼아 최대한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피해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있다. 레킷벤키저의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된 후 피해자들의 항의와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자 5월 12일 ‘법이 정한 절차에 따를 뿐’이라던 옥시는 결국 납부기한을 3일 남기고 피해구제분담금 704억 원을 일시불로 납부하였다.

옥시의 이러한 뻔뻔한 행태를 지켜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혹시 우리나라만 이런 것은 아닌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독약이 팔렸고 시민 1815명이 죽었다. 그러나 가해 기업은 본사에서 내려받은 법정분담금도 안낸다고 거부하고, 심지어 지난해엔 피해자와 기업 간 합의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조정안도 주도적으로 거부하여 무산시켰다. 만약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업과 똑같이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이 없지 않은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은 어렵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초음파 가습기에 들이붓는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았고, 한국 정부는 일부 제품에 KC마크(국가통합인증마크)까지 붙여주었다. 기업과 정부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떠나서, 수천 명의 국민이 죽고 다쳤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피해구제분담금은 옥시가 등 떠밀려서라도 내서 다행이지만, 지난해 무산된 피해구제조정안 테이블에 기업들이 다시 나오게 하고, 법에 의한 것이든 합의에 의한 것이든 간에 일단 피해자들의 현실적 고통과 억울함을 달랠 수 있도록 조정안 합의를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한다. 


정부와 기업에 책임 묻는 시민행동 필요

피해자들은 지난 십수 년간 건강 피해로 인한 질병과 싸워왔다. 그러나 질병뿐만 아니라 기업의 ‘뻔뻔함’과 정부의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따지고 겨우 판정’하는 소극적 태도와도 싸워야 했다. 사과하고 책임지겠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제라도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수습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가장 많이 죽게 하고도 돈을 많이 내서 억울하다고 하는 뻔뻔한 기업은 시민들이 불매운동으로 혼을 내야 한다.


글 | 김영환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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