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속의 시간

“니 그릇은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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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길 이성수


서른 중반의 혼자 사는 후배가 ‘어찌 사나?’ 싶어 퇴근길에 들러 잠시 한담을 나누고 일어설 참이었다. “밥 때 다 됐는데 그냥 가지 마요.” 극구 붙든다. 주저앉고 말았다. 후배가 내온 건 아마도 시골집에서 오래 전 보낸 게 틀림없을 묶은 김치에 참치캔을 까넣은 참치김치찌개와 달걀프라이 그리고 즉석밥이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내겐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즉석밥을 옮겨 담아 주었지만 저는 즉석밥 용기 그대로다. 밥그릇이야 몇 개 더 있지만, 귀찮단다. 먹고 버리면 되니 설거지거리도 안 나오고 좋단다. “같이 먹는 사람 맘 불편하다. 너도 그릇에 담아 먹어!” 

식사하고 인스턴트커피를 생철컵에 타주기에 뜨거워 컵 끝을 잡고 홀짝이는데 꽤 오랜 그의 자취경력에도 부엌에 살림이랄 만한 게 없다. 어쩌면 당연한 그 모습이 살짝 언짢아 “밥그릇이라도 제대로 된 거 쓰고 살지!” 했더니 “그릇 좋은 거는 모시고 살아야 되는데… 바쁘고 귀찮아요!”, “결혼이라도 하면 줄줄이 그릇 값이 들 텐데 뭘 미리… 지금은 혼자니까 대충 살면 돼!” 한다. 커피를 마시고 “가마!” 하고 나오다가 기어이 못 참고 “맨날 라면 끓여먹고 1회용기 가공식이나 렌지에 돌려먹지 말고 귀찮아도 제대로 차려 먹어!” 하고 나도 늘 간편식 야식에 절어 살면서 선배랍시고 잔소리를 하고 말았더니 “아 비싸, 비싸! 어디 존 거, 싼 데나 알려 줘!” 한다. 필시 이 말은 ‘내 입을 다물게 하려는 핑계’다 싶었지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혼밥을 먹는 이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인구주택총조사는 5년마다 실시되기 때문에 올해 조사 결과는 내년이나 나온다. 그래서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 2010년 조사한 것이어서 요즘의 1인가구 현실과는 차이가 꽤 클 듯하지만, 변화의 추세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가구들의 현실은 ‘쓸쓸해지는 것’이다. 쓸쓸함과 씁쓸함은 사촌일지 모른다. 혼자여서 삶의 시간들이 쓴 것은 아니다. 혼자인 시간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해서 쓸 것이고 제대로 경영할 물적 조건이 안 돼 쓸 것이다. 

2015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1인가구는 네 가구 중 하나 꼴인 23.9퍼센트였다. 1인가구 증가추세는 이어져 2035년 34.3퍼센트에 이를 거란 예상도 나와 있다. 그 많은, 혼자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생활의 함정’이 있다. ‘생활의 편리함’을 좇는 게 그것. 2인 이상 가구라면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구성원들과 나눌 수 있지만, 1인가구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의 생활효율이 필요한 까닭이다. 시간에 쫓기는 1인가구의 혼자 사는 이들은 그래서 의식주생활을 간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간소화란 ‘빠른 시간에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는 인스턴트 생활’이 되기 쉽다. 패스트푸드를 사다 포장만 뜯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식생활이 1인가구 생활 간소화의 면면이다.

1인가구처럼 ‘조리하는 그릇과 차려 담아 먹는 그릇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잦은 이들에겐 차려 먹는 ‘그릇이 제대로인 게’ 중요하다. 반조리식을 사서 그릇째 데워 먹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요즘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파는 생협에서도 1인가구용 인스턴트 식품과 따로 소분한 상품들이 많아서 조금만 신경을 써도 안전한 끼니를 준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데우고 담아 먹는 그릇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파는 ‘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그릇’이라거나 그조차 아닌 1회용 즉석식품 포장그릇 자체라면 도로아미타불일 가능성이 높다. 『환경보건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저널(미국, 2011.3)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내 400여 종의 플라스틱 용기 대상 시험 결과 90퍼센트 이상의 플라스틱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되는 에스트로겐 화학 물질이 검출’됐다. 플라스틱은 기본적으로 전자레인지는 물론이고 열을 가하는 조리에 사용하거나 뜨거운 요리를 담는 용도의 그릇 재료로 어울리지 않고 안전하지 않다. 

온기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기본요소다. 그 온기를 오래 머금는 안전한 그릇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사용해 안전과 기능이 검증된 그릇, 흙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자기다. 진흙을 불에 구우면 재료의 조성이 변해 단단해진다는 지식을 인류가 발견한 건 1만 년도 더 전의 식석기시대 때의 일이다. 1만 년의 본격적인 화식생활의 역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그릇을 두고 100년 안쪽의 일천한 역사에다 환경과 건강에 부담을 주는 소재의 그릇을 쓰게 된 건 튼튼함과 편리함, 대량제조 덕분에 가능한 싼값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싼값은 사실 폐기시의 처리비용, 부적절하게 폐기돼 자연에 끼치는 위해성 등의 환경부담을 오늘날 우리들의 경제체제가 정당한 비용으로 가격체계에 내재화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한 번 사서 소중히 쓰면 평생, 나아가 몇 대 전의 조상이 쓰던 자기류를 물려받아 여전히 사용하는 어느 종가집의 그릇 살림을 떠올려 보면 너끈히 몇 대를 가는 그릇이자, 몸과 자연에 좋은 ‘밥 그릇’은 자기다.

‘그래도 1인가구 소득이 2인 이상 가구의 소득보다 현저히 낮은 현실에서 최초 지불비용이 비싼 자기류 그릇을 사서 쓰란 건 억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차이나’네 유명한 도예가의 ‘생활자기작품’이네 하는 브랜드의 허상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좋은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착한 값에 만날 길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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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왕산 아래 수성동 계곡 아랫말에 사는 이지은 씨는 본격적인 오브제 도예작품은 물론 생활자기도 꾸준히 제작하는 젊은 도예가다. 본래 금속공예를 해서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하던 차에 금속공예품에 자기를 접합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도예의 매력에 빠져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이가 생각한 도예란 전시관의 박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쓰이는 것이었다. 그녀가 빚어 구운 그릇들은 온라인(지은그릇 zeeun.com)을 통해 그야말로 만든 값에 눈곱만한 수고비를 얹어 팔린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1인가구가 안전한 생활자기를 합리적인 값에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인왕산 수성동계곡 변에 공방과 살림집이 있는 도예가 한 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음, 제가 내년부터 ‘나만의 그릇 만들기’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하려고요. 수강생들이 직접 실습교육을 받아 자기 그릇을 만드는 거예요. 거기 참여해 보라 권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즉시 ‘아 좋은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말 그대로 먹고 살기 바쁜 1인가구 사람들이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그냥 그이가 만들어 놓은 생활자기들의 판매처와 가격을 물었다. 가격은 착하고 그릇들은 참하다!

흙그릇은 진흙을 빚어 형태를 잡고 그늘에서 잘 말려 유약을 발라 한 번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한 뒤에야 만들어지는 긴 시간이 필요한 그릇이다. 섭씨 1250도 이상의 불길 속에서 태어났으니 음식의 온도를 품고 지키는 데 출중할 수밖에 없다. 1만 년 이상의 식생활 속에서 인체에 안전하다는 사실을 검증받은 것에 더해 깨져도 자연으로 돌아가 돌이 되고 흙이 되니 산 가격이 사람은 물론 자연에게도 진짜 가격인 것이 자기이기도 하다. 

식사준비는 빨리 할지라도, 준비한 음식은 제 가치를 오래도록 증명해온 좋은 그릇에 담아 먹자. 그릇의 시간이 혼자 사는 당신의 바쁜 시간을 위로해 줄 것이다.

“택아, 형이 좋은 그릇 사줄 테니 그 플라스틱 그릇이랑 1회용기들 좀 치워라.”


 

글 | 박현철 편집주간 

사진 |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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