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 5년 만에 사과에 나선 롯데마트 김종인 사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4월 18일 월요일은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옥시 등 제조사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때문에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12시에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었다. 제품 4개에 대한 제조사만 기소한다는 언론보도를 우려하여 피해자가 나온 14개 제품의 제조판매사를 하나도 빼지 말고 모두 소환조사할 것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환경부가 손 놓고 있는 피해신고를 검찰에서 진행해줄 것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날인 4월 17일 일요일 밤 11시 조금 넘어 문자가 왔다. ‘롯데마트가 내일 11시에 사과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한대요, 알고 계세요?’ 검찰 출입하는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온 문자였다.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월요일 아침 새벽에 관련 기사가 떴다. 김종인 롯데마트 사장이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사과하고 피해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검찰 수사 하루 앞둔 롯데의 사과
예정했던 12시 기자회견 참석자들에게 급히 연락해 11시에 롯데호텔에 가보자고 했다. 롯데 측에서 출입을 막으면 호텔 앞에서 우리의 의견을 밝히기로 했다. 다행히 막지는 않았다. 환경운동 해온 30여 년 동안에 내가 관련한 문제로 그렇게 많은 기자와 방송사가 온 건 처음이지 싶을 정도로 기자들이 밀려들었다. 사과문이 배포되고 곧이어 김종인 사장이 레드카펫 위에 선 배우처럼 화려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나타났다.
그는 사과문을 읽으며 두 차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간 큰 고통과 슬픔을 겪어 오신 피해자 여러분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순간 울컥했다. 반가워서가 아니다. ‘아니, 저렇게 진작 사과하면 될 것을, 검찰 수사 하루 앞두고….’ 롯데의 사과는 제조사들로서는 처음 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지만, 사실 피해자들에게 한 사과가 아니라 검찰에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잘 봐달라고.
“제가 결혼해 신혼집 꾸리고 아이 낳고 그럴 때는 집집마다 가습기를 사용했고 그 옆에 가습기살균제를 놓아두는 게 아주 흔했어요. 가습기는 누구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고 살균제는 필수품처럼 여겨졌죠.” 대전에서 사회 활동하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한 말이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대기업 유공(현재의 SK케미칼)에 의해 세계최초로 개발되어 TV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마트들이 앞 다투어 자체 PB상품 가습기살균제를 내놓았고 아파트 거주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가습기살균제는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졌다.
2011년 말 정부가 역학조사에 이어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한 후 판매금지조치를 내릴 때까지 17년간 제품 판매는 증가추세에 있었고 20여 개의 제품이 매년 60만 개 팔렸다고 한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고 피해자도 가장 많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의 경우 12년간 453만 개가 팔렸다.
피해자 1528명 중 사망자 239명, 피해신고 계속 늘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롯데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전날 한 기자에게 롯데의 사과 발표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찾아왔다. 한편 롯데가 사과발표한 날은 검찰의 소환조사 전날이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렇다면 왜 2011년에 문제가 불거졌을까? 세 가지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종류가 1994년 이후 꾸준히 하나 둘 늘어나서 2009년에는 20여 개에 달했다. 당연히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2009년부터 판매된 세퓨라는 제품은 덴마크 수입제품이라는 광고 속에 인터넷으로만 판매되었다. 홈쇼핑 등에 익숙한 젊은 엄마와 아빠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둘째, 2010년과 2011년에 걸친 겨울철이 유난히 추웠는데 우리의 가옥구조상 방바닥은 뜨겁고 밀폐가 잘돼 환기를 잘 안하는 거주문화여서 실내 습도가 낮아 가습기와 살균제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셋째, 2009년 우리사회를 크게 흔든 사스 즉 신종플루의 유행으로 살균제품의 사용 자체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석은 자칫 2010~2011년 이전에는 피해자가 없었는데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오해 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 이전부터 꾸준히 피해가 발생해왔지만 의학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초에 산모 7명과 성인남성 1명이 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원인미상의 폐질환으로 숨지자 역학조사가 시작됐고 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2016년 4월 4일 현재까지 조사되고 접수된 피해자는 모두 1528명이다. 이중 사망자는 239명이다. 피해신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4월18일 롯데마트의 사과로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새로운 피해신고가 쇄도하고 있다. 사망자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중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몇 명이고 피해자는 얼마나 되는 걸까?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 연구실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진행한 적 있다. 그 결과를 당시의 전체 인구규모에 적용하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1087만 명이고 피해경험자는 227만 명이 된다. 믿기 어려운 숫자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은 가습기살균제 사용 인구를 800만 명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사용자 1000만 명이 과장된 수치가 아닌 것이다.
생활용품이 사람을 죽이다
독성학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사건’, ‘한국판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바이오사이드(biocide)란 말은 좀 생소한데 해충을 죽이는 살충제 농약을 뜻하는 페스트사이드(pesticide)를 빗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를 죽이는 살균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에 의한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문제를 말한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독일의 산모들이 입덧완화제로 복용한 진통제 콘테르간에 의해 발생한 기형아 출산 사건이다. 페니실린으로 유명한 독일의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판매한 이 약의 성분이 탈리도마이드다. 독일에서만 5000여 명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절반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팔다리가 짧거나 다른 장기가 없거나 기형인 상태다. 독일 이외에서도 1000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임신초기 태아의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어떤 약도 먹지 말아야 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습기살균제는 가정용품이고 탈리도마이드는 약품이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피해규모, 영유아와 산모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점, 정부와 기업이 전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유사한 점도 많다.
최근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면서 제조사들을 최소한 과실치사로 형사처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조사들의 증거조작 문제가 불거지는 등 새로운 양상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연일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4월 5일과 6일 양일간에는 주요한 4개의 신문들이 사설로 이 문제를 다뤘다. 어떤 사설은 이 사건을 ‘화학물질의 세월호 사건’ 또는 ‘안방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라고도 표현했다. 사망자 숫자와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2012년 10월 중순 독일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알멘딩엔을 찾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전국협회의 대표인 마깃 훈데마이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다리는 멀쩡했지만 팔이 짧아서 손이 어깨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제 어머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콘테르간 딱 한 알을 먹었다고 해요.” 단 한 알의 알약이 엄청난 비극을 낳은 것이다.
일본의 미나마타 공해병 문제와 평생을 싸웠던 고 하라다 마사즈미 선생은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먹은 엄마가 낳은 기형 아이가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임을 밝혀낸 신경과 의사다. 2005년 환경보건 초청 강의 자리에서 그가 “환경문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을 때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가습기살균제로 어린아이를 잃은 피해자들 중에는 겨울 한 철 동안 단 2~3통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지내는 영유아와 그 옆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산모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피해 유족들은 자신이 직접 사다 넣어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내 손으로 내 아이를, 부인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을 이겨내기 힘들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과 숙제

2012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전현직 임원들을 형사고발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가습기살균제 참사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와 교훈을 주고 있다. 크게는 화학물질의 남용부터 사회 안전의 취약점, 생활용품의 제조판매과정에서의 안전장치의 문제, 피해발생 후 피해대책과 원인자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환기를 잘 하지 않게 되는 아파트 주거문화도 고민되어야 하고 영유아와 산모를 보호하는 생활환경을 어떻게 만들지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피부노출이나 음용시 안전하더라도 호흡 노출시 전혀 다른 건강영향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 사건의 직접적인 교훈이므로 화학물질 사용시 용도가 달라지면 처음부터 안전점검을 다시 해야 한다. 스프레이형 생활용품에 대해 호흡독성 안전시험을 의무화해야 하는 제도적인 측면은 빠른 시간 내에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환경보건학 박사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 5년 만에 사과에 나선 롯데마트 김종인 사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4월 18일 월요일은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옥시 등 제조사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때문에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12시에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었다. 제품 4개에 대한 제조사만 기소한다는 언론보도를 우려하여 피해자가 나온 14개 제품의 제조판매사를 하나도 빼지 말고 모두 소환조사할 것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환경부가 손 놓고 있는 피해신고를 검찰에서 진행해줄 것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날인 4월 17일 일요일 밤 11시 조금 넘어 문자가 왔다. ‘롯데마트가 내일 11시에 사과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한대요, 알고 계세요?’ 검찰 출입하는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온 문자였다.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월요일 아침 새벽에 관련 기사가 떴다. 김종인 롯데마트 사장이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사과하고 피해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검찰 수사 하루 앞둔 롯데의 사과
예정했던 12시 기자회견 참석자들에게 급히 연락해 11시에 롯데호텔에 가보자고 했다. 롯데 측에서 출입을 막으면 호텔 앞에서 우리의 의견을 밝히기로 했다. 다행히 막지는 않았다. 환경운동 해온 30여 년 동안에 내가 관련한 문제로 그렇게 많은 기자와 방송사가 온 건 처음이지 싶을 정도로 기자들이 밀려들었다. 사과문이 배포되고 곧이어 김종인 사장이 레드카펫 위에 선 배우처럼 화려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나타났다.
그는 사과문을 읽으며 두 차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간 큰 고통과 슬픔을 겪어 오신 피해자 여러분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순간 울컥했다. 반가워서가 아니다. ‘아니, 저렇게 진작 사과하면 될 것을, 검찰 수사 하루 앞두고….’ 롯데의 사과는 제조사들로서는 처음 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지만, 사실 피해자들에게 한 사과가 아니라 검찰에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잘 봐달라고.
“제가 결혼해 신혼집 꾸리고 아이 낳고 그럴 때는 집집마다 가습기를 사용했고 그 옆에 가습기살균제를 놓아두는 게 아주 흔했어요. 가습기는 누구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고 살균제는 필수품처럼 여겨졌죠.” 대전에서 사회 활동하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한 말이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대기업 유공(현재의 SK케미칼)에 의해 세계최초로 개발되어 TV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마트들이 앞 다투어 자체 PB상품 가습기살균제를 내놓았고 아파트 거주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가습기살균제는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졌다.
2011년 말 정부가 역학조사에 이어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한 후 판매금지조치를 내릴 때까지 17년간 제품 판매는 증가추세에 있었고 20여 개의 제품이 매년 60만 개 팔렸다고 한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고 피해자도 가장 많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의 경우 12년간 453만 개가 팔렸다.
피해자 1528명 중 사망자 239명, 피해신고 계속 늘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롯데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전날 한 기자에게 롯데의 사과 발표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찾아왔다. 한편 롯데가 사과발표한 날은 검찰의 소환조사 전날이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렇다면 왜 2011년에 문제가 불거졌을까? 세 가지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종류가 1994년 이후 꾸준히 하나 둘 늘어나서 2009년에는 20여 개에 달했다. 당연히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2009년부터 판매된 세퓨라는 제품은 덴마크 수입제품이라는 광고 속에 인터넷으로만 판매되었다. 홈쇼핑 등에 익숙한 젊은 엄마와 아빠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둘째, 2010년과 2011년에 걸친 겨울철이 유난히 추웠는데 우리의 가옥구조상 방바닥은 뜨겁고 밀폐가 잘돼 환기를 잘 안하는 거주문화여서 실내 습도가 낮아 가습기와 살균제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셋째, 2009년 우리사회를 크게 흔든 사스 즉 신종플루의 유행으로 살균제품의 사용 자체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석은 자칫 2010~2011년 이전에는 피해자가 없었는데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오해 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 이전부터 꾸준히 피해가 발생해왔지만 의학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초에 산모 7명과 성인남성 1명이 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원인미상의 폐질환으로 숨지자 역학조사가 시작됐고 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2016년 4월 4일 현재까지 조사되고 접수된 피해자는 모두 1528명이다. 이중 사망자는 239명이다. 피해신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4월18일 롯데마트의 사과로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새로운 피해신고가 쇄도하고 있다. 사망자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중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몇 명이고 피해자는 얼마나 되는 걸까?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 연구실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진행한 적 있다. 그 결과를 당시의 전체 인구규모에 적용하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1087만 명이고 피해경험자는 227만 명이 된다. 믿기 어려운 숫자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은 가습기살균제 사용 인구를 800만 명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사용자 1000만 명이 과장된 수치가 아닌 것이다.
생활용품이 사람을 죽이다
독성학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사건’, ‘한국판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바이오사이드(biocide)란 말은 좀 생소한데 해충을 죽이는 살충제 농약을 뜻하는 페스트사이드(pesticide)를 빗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를 죽이는 살균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에 의한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문제를 말한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독일의 산모들이 입덧완화제로 복용한 진통제 콘테르간에 의해 발생한 기형아 출산 사건이다. 페니실린으로 유명한 독일의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판매한 이 약의 성분이 탈리도마이드다. 독일에서만 5000여 명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절반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팔다리가 짧거나 다른 장기가 없거나 기형인 상태다. 독일 이외에서도 1000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임신초기 태아의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어떤 약도 먹지 말아야 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습기살균제는 가정용품이고 탈리도마이드는 약품이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피해규모, 영유아와 산모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점, 정부와 기업이 전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유사한 점도 많다.
최근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면서 제조사들을 최소한 과실치사로 형사처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조사들의 증거조작 문제가 불거지는 등 새로운 양상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연일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4월 5일과 6일 양일간에는 주요한 4개의 신문들이 사설로 이 문제를 다뤘다. 어떤 사설은 이 사건을 ‘화학물질의 세월호 사건’ 또는 ‘안방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라고도 표현했다. 사망자 숫자와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2012년 10월 중순 독일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알멘딩엔을 찾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전국협회의 대표인 마깃 훈데마이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다리는 멀쩡했지만 팔이 짧아서 손이 어깨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제 어머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콘테르간 딱 한 알을 먹었다고 해요.” 단 한 알의 알약이 엄청난 비극을 낳은 것이다.
일본의 미나마타 공해병 문제와 평생을 싸웠던 고 하라다 마사즈미 선생은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먹은 엄마가 낳은 기형 아이가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임을 밝혀낸 신경과 의사다. 2005년 환경보건 초청 강의 자리에서 그가 “환경문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을 때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가습기살균제로 어린아이를 잃은 피해자들 중에는 겨울 한 철 동안 단 2~3통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지내는 영유아와 그 옆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산모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피해 유족들은 자신이 직접 사다 넣어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내 손으로 내 아이를, 부인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을 이겨내기 힘들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과 숙제
2012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전현직 임원들을 형사고발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가습기살균제 참사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와 교훈을 주고 있다. 크게는 화학물질의 남용부터 사회 안전의 취약점, 생활용품의 제조판매과정에서의 안전장치의 문제, 피해발생 후 피해대책과 원인자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환기를 잘 하지 않게 되는 아파트 주거문화도 고민되어야 하고 영유아와 산모를 보호하는 생활환경을 어떻게 만들지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피부노출이나 음용시 안전하더라도 호흡 노출시 전혀 다른 건강영향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 사건의 직접적인 교훈이므로 화학물질 사용시 용도가 달라지면 처음부터 안전점검을 다시 해야 한다. 스프레이형 생활용품에 대해 호흡독성 안전시험을 의무화해야 하는 제도적인 측면은 빠른 시간 내에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환경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