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수리소’에 ‘내 애장품 고쳐주세요!’ 요청했던 시민들의 사례를 공유합니다. 사연에 공감하신다면 우리 사회의 수리권 신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금세 알게 되실 겁니다. 카세트플레이어, 마사지기 같은 소소한 물품에서 시작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제품을 시민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고쳐 쓸 수 있는 사회가 자원순환사회의 밑돌입니다.
# 이지아 님의 수리 요청 “제 찍찍이 살려주세요!”
‘찍찍이’는 제 어학용 카세트플레이어의 애칭입니다. 제 대학시절을 함께해 준 찍찍이입니다. 일반 카세트플레이어와는 다르게 속도 조절도 되고 되감길 때 “찌직 찌지직” 소리를 내며 되감기는 것이 매력이였던 어학공부의 필수템이었죠.
이 녀석을 사려고 용돈도 모으고, 구매 후에는 ‘영어 실력을 제대로 높이리라.’ 기대하는 맘도 컸었지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고장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했었죠. 이렇게 테이프가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모든 게 핸드폰으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편하기는 하지만, 버튼을 누를 때 딸깍이는 감각, 앞뒤로 감기던 테이프만의 소리가 너무 아쉬워요. 그 시절 추억과 아날로그 감성을 버리지 못해 서랍 속에서 잠만 자게 두었던 찍찍이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싶어요. 버리지 못하고 한 자리씩 자리 잡고 있는 옛 어학 테이프와 음악 테이프들도 다시 틀어보고 싶어요.
“제 찍찍이를 구해주세요!”
‘뭐든지 수리소’는 수리에 실패했습니다. 이미 단종된 찍찍이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품은 단종되어도 부품은 구할 수 있는 수리시장의 활성화(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 김지형 님의 수리 요청 “페이스 마사지기 고쳐주세요!”
2018년에 산 뷰티바이스입니다. 저렴하게 구입해서 정말 잘썼던 페이스 마사지 디바이스인데 안타깝게도 몇 개월 건전지를 넣은 채로 방치했더니 건전지 음극과 양극이 닿는 부분에 녹이 났고 작동을 안 하네요. 이것만 해결되면 분명 앞으로도 몇 년간 쌩쌩할 아이인데 너무 아까워요. “제 페이스 마사지기 고쳐주세요!” 마사지기를 들고 ‘뭐든지 수리소’가 열린 곳에 갔습니다.
수리를 맡으신 엔지니어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녹만 제거하면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WD-40 윤활유를 집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 저 윤활유 집에 굴러다니는 건데. 난 왜 해볼 생각을 못한거니.’ 하는 자책감이 …! 건전지 넣는 스프링에 윤활유를 뿌리고 녹과 함께 삭아버린 스프링 일부분을 제거한 뒤 티슈로 기름기를 닦아내고 다시 건전지를 넣으니, 거짓말처럼 다시 작동이 되네요. 하마터면 쓰레기통으로 향할 뻔했던 마사지기가 다시 한번 살아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피부를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건전지 누수액 세척으로 마사지기를 고쳐드렸습니다. 아직 수명 연한이 괘 남은 제품이라 잘 관리해 오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박성연 님의 수리 요청 “왜 제 서큘레이터는 청소도 못 하게 만들어진 걸까요?”
분해가 안 돼 청소를 못 하는 타원형 써큘레이터를 ‘뭐든지 수리소’에 들고 갔습니다.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내부에 날로 먼지가 쌓여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멀쩡히 작동하는데 내부 청소를 할 수 없어 먼지바람을 쐬려니 찝찝했습니다. 판매사에 전화를 해봐도 “해체청소는 안 된다.”는 말만 했습니다. ‘아니, 조립해서 판매했으니 분해도 될 터인데 어째서…?’ 그렇게 화를 내다 삭이다 하면서 가지고 있던 차에 ‘뭐든지 수리소’가 열린 덕분에 제 서큘레이터를 분해해서 청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선 분해가 안 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나사선이 삼각형이어서 가정용 드라이버로는 나사선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예 붙어있는 형태로 이해했던 겁니다. 수리해 주시는 분에게도 삼각 나사선 드라이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 부분을 열로 녹여내고 해체할 수 있었습니다. 분해가 돼야 수리가 가능한 물건인데 제품 생산단계에서 분해조립에 장애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놓고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기업행태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런 생산 관행은 꼭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해체 및 내부 청소가 어렵게 막는 삼각나사를 갈고 교체가능한 것으로 교체해 내부 청소를 진행했습니다. 한 철 쓰고 버리라고 만든 제품이 아니라면 분해 재조립이 가능한 부품을 사용해 사용자가 자가관리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생산단계에서부터 설계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규영 님의 수리 요청 “우리 매장 첫 선풍기를 고쳐주세요!”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여름에 매장에 선풍기 하나 없어 더위를 버티며 땀 흘리고 있던 차였습니다. 와이프가 ‘생명 같은 선풍기’를 사주었습니다. 이 선풍기가 행운의 부적이었는지 그때부터 장사도 잘되고 신바람 나게 일을 했습니다. 매해 여름마다 잘 썼었는데 버튼을 하도 자주 눌러서 그랬는지 언젠가부터 바람 조절이 안 되고, 회전도 안 되고 그런 상태가 됐습니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물건 그 이상이었죠. 코로나 여파로 매장을 정리하게 됐을 때도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지고 오자 이제는 전기 코드 꽂으면 자기 혼자 저절로 켜지고 꺼지지도 않게 됐습니다. “그 정도면 버려!”라는 소리를 듣게 됐지만 그래도 그냥 버릴 수 없는 의미 있는 물건입니다. ‘뭐든지 수리소’에서 고쳐서 쓸 수 있을까요?
‘뭐든지 수리소’는 선풍기를 해체해 단락된 단선부를 연결했습니다. 단계별 버튼에 반응하는 선풍기로 되살아났습니다. 애장품이 고쳐 쓰는 문화가 자원순환사회의 밑돌입니다.
# 서이수(가명) 님의 수리 요청 “미니선풍기 수리법을 배우고 싶어요!”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몇 년 전 더운 여름, 합죽선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탁상용 미니선풍기를 구매했습니다. 꽤 오래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한 5년 정도 사용한 듯 싶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게 됐습니다. usb를 꽂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휴대용 제품은 아니어서 구조가 간단하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니 수리소에 가면 손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하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수리소’ 열리다고 해서 수리를 요청합니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이렇게 간단한 제품은 직접 수리하는 방법도 배우고 싶습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서이수 님의 미니선풍기 수리에 실패했습니다. 교체할 부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부품이 없는 이런 경우는 속수무책입니다. 부품 교체할 바에야 새로 사라는 제품은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규제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 박숙현 님의 수리 요청 ‘블렌더를 수리하며 든 생각’
올해 나는 운이 좋게도 도시농업 텃밭 분양에 당첨되어 도시농부로 바쁜 아침을 보냈다. 새벽이면 눈이 번쩍 뜨이면서 마음이 온통 밭을 향했다. 상추같은 잎채소부터 오이나 가지, 고추, 토마토 등 토종씨앗 나눔 받은 채소며 허브까지 다양한 작물을 손바닥보다 쬐금 큰 밭에 섞어 심었다. 사무실 한쪽에 자라고 있던 바질도 밭에 옮겨 심었는데, 어쩌다 보니 24그루나 되었다. 며칠에 한 번씩 바질 잎을 뜯어다 신선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서 이웃과 나누고 책모임에도 가져가다 보니 잎을 갈아대던 블렌더가 무리를 했었나 보다. 어느 순간 블렌더가 작동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블렌더가 고장난 적이 있었는데, 업체에 수리를 요청하니 모터 교체와 인건비가 약 10만 원이 들거라고 고객센터에서 알려주었다. 9만 원에 산 블렌더를 10만 원을 주고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구매했던 것이 지금의 블렌더였다. 채소다지기를 사서 썼어야 하는데, 음료 정도 만드는 블렌더를 사용한 것이 후회됐다. 갓 따온 허브를 갈아야 하니, 급해서 어쩔 수 없이 당근마켓을 통해 다지기를 하나 구입하고 블렌더는 혹시 몰라서 보관하고 있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서울환경연합의 ‘뭐든지 수리소’ 홍보물을 봤다. 바로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수리 혜택을 누렸다. 수리 결과 사실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전원장치 접촉 부분에 카본이 쌓여서 접촉 불량이 됐던 것이었다. 엔지니어께서 깨끗이 닦은 뒤 재조립을 하니 말끔히 문제가 해결됐다. ‘이렇게 간단한 수리조차도 내가 시도해보지 않았다니!’ 하는 마음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가전제품은 대개 대기업 제품이라 A/S가 잘 되는 편이지만, 작은 중소기업 제품을 구입하면 싼 가격에 이미 제품의 수명이 짧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어 수리하기보다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마음에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게 되는 것 같다. 수리권이 보편화되면 이런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까.
수리권은 순환경제의 핵심 요소다. 전파사가 사라지고 있는 도시에서 ‘되살림’가게를 통해 수리를 활성화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리퍼상품 혹은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중고가게라는 인식도 있지만, 수리를 통해 제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능도 함께 탑재한다면 숨은 마을 기술자들도 더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뭐든지 수리소’는 박숙현 님의 블렌더를 정비해 드렸습니다. 제품 수리의 개별적 경험을 수리권 신장과 자원순환사회를 위한 제안으로 연결한 메시지를 주신 박숙현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의미 있는 수리 경험이 쌓일수록 수리권 확대를 위한 시민의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공동기획 |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
‘뭐든지 수리소’에 ‘내 애장품 고쳐주세요!’ 요청했던 시민들의 사례를 공유합니다. 사연에 공감하신다면 우리 사회의 수리권 신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금세 알게 되실 겁니다. 카세트플레이어, 마사지기 같은 소소한 물품에서 시작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제품을 시민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고쳐 쓸 수 있는 사회가 자원순환사회의 밑돌입니다.
# 이지아 님의 수리 요청 “제 찍찍이 살려주세요!”
‘찍찍이’는 제 어학용 카세트플레이어의 애칭입니다. 제 대학시절을 함께해 준 찍찍이입니다. 일반 카세트플레이어와는 다르게 속도 조절도 되고 되감길 때 “찌직 찌지직” 소리를 내며 되감기는 것이 매력이였던 어학공부의 필수템이었죠.
이 녀석을 사려고 용돈도 모으고, 구매 후에는 ‘영어 실력을 제대로 높이리라.’ 기대하는 맘도 컸었지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고장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했었죠. 이렇게 테이프가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모든 게 핸드폰으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편하기는 하지만, 버튼을 누를 때 딸깍이는 감각, 앞뒤로 감기던 테이프만의 소리가 너무 아쉬워요. 그 시절 추억과 아날로그 감성을 버리지 못해 서랍 속에서 잠만 자게 두었던 찍찍이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싶어요. 버리지 못하고 한 자리씩 자리 잡고 있는 옛 어학 테이프와 음악 테이프들도 다시 틀어보고 싶어요.
“제 찍찍이를 구해주세요!”
‘뭐든지 수리소’는 수리에 실패했습니다. 이미 단종된 찍찍이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품은 단종되어도 부품은 구할 수 있는 수리시장의 활성화(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 김지형 님의 수리 요청 “페이스 마사지기 고쳐주세요!”
2018년에 산 뷰티바이스입니다. 저렴하게 구입해서 정말 잘썼던 페이스 마사지 디바이스인데 안타깝게도 몇 개월 건전지를 넣은 채로 방치했더니 건전지 음극과 양극이 닿는 부분에 녹이 났고 작동을 안 하네요. 이것만 해결되면 분명 앞으로도 몇 년간 쌩쌩할 아이인데 너무 아까워요. “제 페이스 마사지기 고쳐주세요!” 마사지기를 들고 ‘뭐든지 수리소’가 열린 곳에 갔습니다.
수리를 맡으신 엔지니어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녹만 제거하면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WD-40 윤활유를 집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 저 윤활유 집에 굴러다니는 건데. 난 왜 해볼 생각을 못한거니.’ 하는 자책감이 …! 건전지 넣는 스프링에 윤활유를 뿌리고 녹과 함께 삭아버린 스프링 일부분을 제거한 뒤 티슈로 기름기를 닦아내고 다시 건전지를 넣으니, 거짓말처럼 다시 작동이 되네요. 하마터면 쓰레기통으로 향할 뻔했던 마사지기가 다시 한번 살아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피부를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건전지 누수액 세척으로 마사지기를 고쳐드렸습니다. 아직 수명 연한이 괘 남은 제품이라 잘 관리해 오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박성연 님의 수리 요청 “왜 제 서큘레이터는 청소도 못 하게 만들어진 걸까요?”
분해가 안 돼 청소를 못 하는 타원형 써큘레이터를 ‘뭐든지 수리소’에 들고 갔습니다.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내부에 날로 먼지가 쌓여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멀쩡히 작동하는데 내부 청소를 할 수 없어 먼지바람을 쐬려니 찝찝했습니다. 판매사에 전화를 해봐도 “해체청소는 안 된다.”는 말만 했습니다. ‘아니, 조립해서 판매했으니 분해도 될 터인데 어째서…?’ 그렇게 화를 내다 삭이다 하면서 가지고 있던 차에 ‘뭐든지 수리소’가 열린 덕분에 제 서큘레이터를 분해해서 청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선 분해가 안 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나사선이 삼각형이어서 가정용 드라이버로는 나사선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예 붙어있는 형태로 이해했던 겁니다. 수리해 주시는 분에게도 삼각 나사선 드라이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 부분을 열로 녹여내고 해체할 수 있었습니다. 분해가 돼야 수리가 가능한 물건인데 제품 생산단계에서 분해조립에 장애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놓고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기업행태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런 생산 관행은 꼭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해체 및 내부 청소가 어렵게 막는 삼각나사를 갈고 교체가능한 것으로 교체해 내부 청소를 진행했습니다. 한 철 쓰고 버리라고 만든 제품이 아니라면 분해 재조립이 가능한 부품을 사용해 사용자가 자가관리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생산단계에서부터 설계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규영 님의 수리 요청 “우리 매장 첫 선풍기를 고쳐주세요!”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여름에 매장에 선풍기 하나 없어 더위를 버티며 땀 흘리고 있던 차였습니다. 와이프가 ‘생명 같은 선풍기’를 사주었습니다. 이 선풍기가 행운의 부적이었는지 그때부터 장사도 잘되고 신바람 나게 일을 했습니다. 매해 여름마다 잘 썼었는데 버튼을 하도 자주 눌러서 그랬는지 언젠가부터 바람 조절이 안 되고, 회전도 안 되고 그런 상태가 됐습니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물건 그 이상이었죠. 코로나 여파로 매장을 정리하게 됐을 때도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지고 오자 이제는 전기 코드 꽂으면 자기 혼자 저절로 켜지고 꺼지지도 않게 됐습니다. “그 정도면 버려!”라는 소리를 듣게 됐지만 그래도 그냥 버릴 수 없는 의미 있는 물건입니다. ‘뭐든지 수리소’에서 고쳐서 쓸 수 있을까요?
‘뭐든지 수리소’는 선풍기를 해체해 단락된 단선부를 연결했습니다. 단계별 버튼에 반응하는 선풍기로 되살아났습니다. 애장품이 고쳐 쓰는 문화가 자원순환사회의 밑돌입니다.
# 서이수(가명) 님의 수리 요청 “미니선풍기 수리법을 배우고 싶어요!”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몇 년 전 더운 여름, 합죽선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탁상용 미니선풍기를 구매했습니다. 꽤 오래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한 5년 정도 사용한 듯 싶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게 됐습니다. usb를 꽂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휴대용 제품은 아니어서 구조가 간단하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니 수리소에 가면 손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하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수리소’ 열리다고 해서 수리를 요청합니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이렇게 간단한 제품은 직접 수리하는 방법도 배우고 싶습니다.
‘뭐든지 수리소’는 서이수 님의 미니선풍기 수리에 실패했습니다. 교체할 부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부품이 없는 이런 경우는 속수무책입니다. 부품 교체할 바에야 새로 사라는 제품은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규제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 박숙현 님의 수리 요청 ‘블렌더를 수리하며 든 생각’
올해 나는 운이 좋게도 도시농업 텃밭 분양에 당첨되어 도시농부로 바쁜 아침을 보냈다. 새벽이면 눈이 번쩍 뜨이면서 마음이 온통 밭을 향했다. 상추같은 잎채소부터 오이나 가지, 고추, 토마토 등 토종씨앗 나눔 받은 채소며 허브까지 다양한 작물을 손바닥보다 쬐금 큰 밭에 섞어 심었다. 사무실 한쪽에 자라고 있던 바질도 밭에 옮겨 심었는데, 어쩌다 보니 24그루나 되었다. 며칠에 한 번씩 바질 잎을 뜯어다 신선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서 이웃과 나누고 책모임에도 가져가다 보니 잎을 갈아대던 블렌더가 무리를 했었나 보다. 어느 순간 블렌더가 작동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블렌더가 고장난 적이 있었는데, 업체에 수리를 요청하니 모터 교체와 인건비가 약 10만 원이 들거라고 고객센터에서 알려주었다. 9만 원에 산 블렌더를 10만 원을 주고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구매했던 것이 지금의 블렌더였다. 채소다지기를 사서 썼어야 하는데, 음료 정도 만드는 블렌더를 사용한 것이 후회됐다. 갓 따온 허브를 갈아야 하니, 급해서 어쩔 수 없이 당근마켓을 통해 다지기를 하나 구입하고 블렌더는 혹시 몰라서 보관하고 있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서울환경연합의 ‘뭐든지 수리소’ 홍보물을 봤다. 바로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수리 혜택을 누렸다. 수리 결과 사실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전원장치 접촉 부분에 카본이 쌓여서 접촉 불량이 됐던 것이었다. 엔지니어께서 깨끗이 닦은 뒤 재조립을 하니 말끔히 문제가 해결됐다. ‘이렇게 간단한 수리조차도 내가 시도해보지 않았다니!’ 하는 마음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가전제품은 대개 대기업 제품이라 A/S가 잘 되는 편이지만, 작은 중소기업 제품을 구입하면 싼 가격에 이미 제품의 수명이 짧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어 수리하기보다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마음에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게 되는 것 같다. 수리권이 보편화되면 이런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까.
수리권은 순환경제의 핵심 요소다. 전파사가 사라지고 있는 도시에서 ‘되살림’가게를 통해 수리를 활성화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리퍼상품 혹은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중고가게라는 인식도 있지만, 수리를 통해 제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능도 함께 탑재한다면 숨은 마을 기술자들도 더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뭐든지 수리소’는 박숙현 님의 블렌더를 정비해 드렸습니다. 제품 수리의 개별적 경험을 수리권 신장과 자원순환사회를 위한 제안으로 연결한 메시지를 주신 박숙현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의미 있는 수리 경험이 쌓일수록 수리권 확대를 위한 시민의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공동기획 |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