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안전 뒤흔든 GMO 주키니 호박

사건의 이목을 축소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일부러 주말에 사건을 공지한다는 이야기는 종종 접했지만 이번 GMO(유전자조작) 주키니 호박 사건 같이 대한민국 먹거리 역사에 기록이 남을 만한 사건도 그렇게 다룰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GMO 주키니 호박이 국내에 8년간 유통되었다는 내용을 농림축산식품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시간은 3월 26일 일요일 밤 10시 20분쯤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거나 아쉬운 주말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GMO 호박 8년간 한국 식탁에 올라

<GMO반대전국행동>이 지난 4월 14일 농림축산식품부 청사 앞에서 정부의 무능한 GMO 검역 시스템 관리를 규탄하고 피해자 구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GMO반대전국행동


이번 사건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다(아직도 미스테리가 많지만). 먼저 2010년으로 무려 13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GMO 주키니 호박을 유통한 업체 B(정부에서 실명을 밝히지 않고 있음)는 미국 온라인몰을 통해 주키니 호박을 구입했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국내에 반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농림부 산하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의 ‘농생명산업기술개발사업’ 예산을 받아 5년 동안 종자 개량을 했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GMO로 밝혀진 2015년 품종 등록한 ‘가야금쥬키니’와 2017년 품종 등록한 ‘대금쥬키니’다. 2015년 품종 등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2015년부터 GMO 주키니 호박이 시중에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말이고 그 말은 즉, 우리의 식탁에 8년간 GMO 주키니 호박이 올랐다는 이야기다. 주키니는 비교적 추위에 강해 이른 봄에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중량이 꽤 나가 학교급식 같은 대량급식이나 가공식품에 많이 사용된다. 중화요리 볶음밥의 감초이기도 하다. 8년간 집에서도 밖에서도 우리는 아주 열심히 먹었을 것이다.

온 국민이 피해자지만 이번 GMO 주키니 호박 유통사건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다. 먼저 농민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00여 주키니 호박 농가에 대한 GMO 조사를 진행했다. 열여덟 농가가 GMO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중 두 농가는 친환경 농가이기도 하다. 그저 열심히 농사지었을 뿐인데, 종묘상이나 온라인몰에서 주키니 씨앗을 사 굵은 땀을 흘린 것인데 그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국내법에 따르면 GMO를 상업재배하는 것은 불법이다.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어버렸다. 기구한 스토리도 있다. 한 친환경농가는 자가 채종을 원칙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2020년경 수해를 입어 자가 채종할 주키니 호박을 남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종자가 오늘에서야 GMO 주키니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음성 판정을 받은 주키니 호박 농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10kg 한 상자에 2만 원까지 하던 가격이 500원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사건이 잠잠해졌다지만 주키니 호박은 GMO일지도 모른다는 낙인이 찍혀 가격은 정상가로 회복되지 않았고 시장에서 찾는 이는 확 줄었다. 

주키니 호박은 가공식품에도 많이 쓰였던 만큼 가공 생산지나 이를 판매하는 유통판매원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주키니 호박이 들어간 가공식품 조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책임지고 진행했다. 해당 사건이 공개된 지 불과 6일 만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보도자료를 냈다. 전수조사 결과 2건의 가공식품에 GMO 주키니가 사용된 게 확인되어 조치했다는 것이다. 조사는 ‘품목제조보고’에 주키니를 사용했다고 적은 가공식품을 대상으로 진행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아 식약처의 발표는 졸속 발표였던 게 드러났다. 식약처의 조사를 통해 GMO가 없다고 판명된 가공 생산지의 볶음밥을 한살림 생협(이하 한살림, 법적으로 유통판매원이기도 함)에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볶음밥을 한살림이 판매하기 때문에 보다 철저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GMO 주키니 호박이 사용된 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식약처의 전수조사는 제대로 된 전수조사였는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식약처는 자신들의 과실이 드러난 게 불편했는지 한살림의 자체 조사로 밝혔다는 그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아니, 마치 자신들이 한살림이 GMO 주키니 호박을 사용한 것을 적발한 듯한 보도자료를 배포해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고 정직하게 정보를 공개한 가공 생산지와 한살림은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받기까지 했다.     


정부는 피해자 구제하고 재발 방지에 총력 기울여야

<소비자기후행동>과 <GMO반대전국행동> 등은 지난 5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구멍 뚫린 GMO 수입검역체계와 관리통제 부실로 반복되는 GMO 사고에 항의하고, 유명무실한 GMO 표시제 개선 등 정부의 책임 있고 투명한 GMO 관리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소비자기후행동


이쯤 되면 헷갈리기도 하고 의문이 들 것이다. ‘국내에서 GMO 주키니 호박이 재배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GMO 주키니 호박 자체나 가공식품이 유통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모두 불법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모두 허용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키니 호박은 국내에 승인(식품용, 농업용 모두) 된 GMO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민이나 가공 생산지나 유통판매원은 모두 정부가 승인한 종자와 그 먹거리를 사용했을 뿐인데 이후에 GMO인 게 확인됐고 법에 따라 피해자가 불법을 행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정부가 GMO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종자 수입 과정에 GMO 검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종자 등록 과정에도 마찬가지였다. 8년간 GMO 주키니 호박이 국내에 유통되었지만 8년이 지난 후에나 이를 확인한 무능한 관리책임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부의 종합적인 GMO 관리 부실이 드러나 상황에도 여전히 정부는 미온적이다. 국민에게는 GMO 주키니 호박이 ‘미국에서 승인되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주권과 검역 체계를 부인하는 발표(이런 공언 자체가 불법이다)를 했고 피해 농가와 가공생산지, 유통판매원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GMO반대전국행동>은 정부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GMO반대전국행동>은 생협, 농업, 먹거리, 환경 등 47개 단체가 동참한 반GMO 활동단체로 ‘GMO 규제 완화 반대, GMO 완전표시제 시행, 미승인 GMO 제거 운동’ 등을 2016년부터 펼쳐오고 있다. <GMO반대전국행동>이 요구하는 최우선 요구는 ‘정부의 명확한 사과’이다. 이번 사건의 관리책임이 정부에 있지만 정부는 일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마치 관리 대상자처럼 대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부는 명확하게 사과하고 해당 사건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투명한 정보공개도 필요하다. 정부의 발표는 내용이 번복되고 수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만큼 공신력도 떨어지고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상세하게 이번 사건을 소명하고 정부의 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실효성 있는 피해 보상도 필요하다. 이번 사건으로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농가와 가공 생산지, 유통판매원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관련 예산이 없다며 보상금액을 최소화하는 모양새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된 GMO는 30여 종에 달한다. 해당 GMO 해당하는 국내 작물에 대한 검역 전반을 점검하고 GMO 검사도 진행할 필요도 있다. GMO 주키니 호박으로 오염된 농지에 대한 조사와 적정관리가 최소 1~2년간 이뤄져야 한다. 생명력이 있는 GMO이기 때문에 적정한 오염지 관리가 부재할 경우 당장 내년에라도 GMO 주키니 호박이 인근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업친 데 덮친 GMO 프리패스 법안 발의

더 우려되는 상황도 있다. 작년 여름, 정부에서 유전자가위 등 최신 GMO의 경우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GMO 프리패스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넘쳐나는 국내 GMO 상황에 더 많은 GMO를 들이겠다는 발상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지 어이없는 일이다. 식탁 행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사회적 갈등을 더 키우기 전에 국회와 정부가 GMO 정책의 일대 변화를 꾀해야 한다. 



글 | 문재형 GMO반대전국행동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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