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옥상에 올라 전체를 둘러봤다. 위에서 바라본 수남마을은 슬레이트 가옥들이 밀집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겉에서 보기엔 여느 지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 속으로 들어가니 아니었다. 골목마다 슬레이트 지붕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깨지고 부서진 슬레이트는 예사였고, 하도 부서진 탓에 언뜻 슬레이트로 안 보이는 것들도 흔했다. 처마 끝부분만 슬레이트가 이어진 곳도 많았다. 슬레이트 위에 함석이나 기와를 올린 소위 ‘덮어씌우기’를 한 곳도 여럿이었다.
수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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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일동 수남마을 주민이 부서진 석면슬레이트를 가리키고 있다. 이 주민은 석면폐질환이 검진되었다
부산 동구 범일동 수남마을에서 50년을 넘게 살아온 할머니는 예전에는 동네가 온통 슬레이트 지붕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분은 부산시 조사에서 ‘석면폐3급’을 진단받았다. ‘석면폐’는 호흡기로 들어온 석면먼지가 폐에 박혀 폐를 딱딱하게 굳게 만들어 호흡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석면 질환이다. ‘석면폐3급’은 석면폐가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 중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빠르게 혹은 천천히 2급과 1급으로 나빠지고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암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수남마을에서 석면폐 환자들이 다수 검진되었고 이 주민들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환경성 석면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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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일동 수남마을의 한 가옥 지붕 상태, 낡고 깨진 석면슬레이트 위에 녹슨 양철 지붕재가 덮여있다
깡깡이마을
사람들은 부산 영도구 태평동의 마을을 ‘깡깡이마을’이라고 부른다. 부산을 상징하는 영도다리를 건너면 있는 곳으로 자갈치시장에서도 내다보인다. 항구도시 부산은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선박산업의 중심지다. ‘깡깡이마을’이란 이름은 중고선박을 수리하면서 선박 철판을 망치로 두드리는 ‘깡깡’ 소리에서 비롯됐다. 배에는 석면이 여기저기에 많이 사용됐다. 뜨거운 엔진열을 차단하기 위한 단열재로 석면포가 사용되었고, 석면실로 짠 석면밧줄, 석면라이닝, 화재방지를 위한 석면 뿜칠 등 선박 곳곳에 석면이 사용됐다. 오래된 중고선박을 수리하는 과정은 그런 석면에서 나오는 석면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선박 수리나 건조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공장 근방에 살면 석면 노출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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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태평동 일명 ‘깡깡이마을’의 중고선박 수리 현장
울산에 사는 원모 씨는 어릴 때 부모님과 부산 시내에 살았다. 원 씨의 아버지는 악성중피종을 앓다 사망했다. 2011년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법」은 원 씨의 아버지가 환경성 석면암 피해자임을 확인해 주었다. 원 씨 가족이 살았던 곳은 부산시 연제구였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제일화학이라는 석면방직공장이 있었다. 일본의 석면회사 니치아스의 자회사인 다츠타공업이 일본 오사카 지방 나라현에서 가동하던 청석면 방직기계를 1971년 부산에 옮겨 ‘제일아스베스트’라는 이름의 한일합작회사를 세웠다. 제일화학은 1992년 양산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석면방직기계 일부를 인도네시아 시비농으로 옮겨 한인니합작회사(PT. Jeil Fajar Indonesia)를 세웠다. 이 회사는 최근까지도 석면방직제품을 생산했다. 일본 나라, 한국 부산, 인도네시아 시비농의 석면공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에게서 석면질환 피해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주민건강영향 조사하니 석면 피해자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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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제구 연신초등학교 운동장. 교문 건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자리에 1969년부터 1992년까지 23년간 국내 최초 최대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이 있었다. 연신초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석면에 노출된 잠재적 석면 피해자다
부산에는 <석면관리협의회>라는 회의체가 있다. 부산광역시, 낙동강유역환경청, 부산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 부산광역시교육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광역본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 등이 참여하고 부산환경운동연합과 석면추방부산공동대책위원회가 참관한다. 이들의 회의자료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환경성 석면 노출 의심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라는 대목이다. 2023년에 석면공장 29개, 슬레이트 지역 11개, 조선소 35곳 등 모두 75개 지역에서 1000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검진 버스가 마을을 찾아가 흉부 엑스선 촬영과 폐기능 검사 등을 실시해 1차로 의심환자를 찾아내고 2차로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통해 석면병을 찾아내는 일을 할 계획이다. 2009년부터 2023년 2월까지 15년간 1만755명을 검진해 830명의 석면병 환자를 찾아냈다. 평균 7.7%의 검진율이다. 2017년 부산시가 29곳 석면 의심지역의 반경 2km 이내에서 거주한 석면 노출 가능 주민을 파악해보니 17만8000명이었다. 지금까지 이들의 13%만 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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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성 석면 피해자를 위한 「석면피해구제법」이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신청하면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에서 판정해 병원비와 장례비 등을 지급하는 제도다. 2023년 2월까지 부산에서 인정된 피해자는 모두 1263명이다. 사망자 138명(악성중피종 128명, 폐암 79명, 석면폐 11명)과 생존환자 1124명(악성중피종 57명, 폐암 217명, 석면폐 850명)이다. 부산의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을 통해 찾아낸 830명은 부산지역 전체 석면 피해 구제 인정자 1263명의 66%다. 10명 중 6~7명은 피해자 찾기를 통해 찾아냈다.
부산지역 환경성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의 의미와 특징을 정리해봤다.
△최근 2~3년 사이 석면 피해 인정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석면 피해자들이 크게 늘어나는 배경은 과거 30~50년 전에 석면에 노출된 주민, 노동자들에게서 석면 질병 잠복기가 끝나감에 따라 석면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성 석면 피해 인정자의 성별을 보면 남성 582명(70.1%), 여성 248명(29.9%)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는 석면을 다루었던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들의 직업성 석면 노출 사례가 다수 포함된 것이다. 순수 환경성 석면 피해라면 남녀 비율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70대(46.1%)와 60대(33.3%)가 가장 많지만, 40대(0.6%)와 50대(4.8%)에서도 나타난다.
부산만이 아니다, 피해 구제 지원금 현실화해야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 해결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환경성 석면 피해는 부산만의 특징이 아니다. 폐석면 광산이 밀집한 충남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슬레이트 밀집지역은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의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이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석면 피해 구제 지원금 수준이 턱없이 낮다. 같은 질병의 산업재해보험금의 20~30%에 불과하다. 석면원료를 다뤘던 산업계의 분담금을 높이고 석면부품과 자재를 사용한 전자산업, 건축, 자동차산업에 특별분담금을 부과해 구제기금을 크게 확대하여 산재보험금과 같은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상당수의 석면 피해 구제 인정자가 과거 직업성 석면 노출 피해자라는 점에서도 이런 조치는 합당하다.
글・사진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마을회관 옥상에 올라 전체를 둘러봤다. 위에서 바라본 수남마을은 슬레이트 가옥들이 밀집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겉에서 보기엔 여느 지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 속으로 들어가니 아니었다. 골목마다 슬레이트 지붕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깨지고 부서진 슬레이트는 예사였고, 하도 부서진 탓에 언뜻 슬레이트로 안 보이는 것들도 흔했다. 처마 끝부분만 슬레이트가 이어진 곳도 많았다. 슬레이트 위에 함석이나 기와를 올린 소위 ‘덮어씌우기’를 한 곳도 여럿이었다.
수남마을
부산 범일동 수남마을 주민이 부서진 석면슬레이트를 가리키고 있다. 이 주민은 석면폐질환이 검진되었다
부산 동구 범일동 수남마을에서 50년을 넘게 살아온 할머니는 예전에는 동네가 온통 슬레이트 지붕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분은 부산시 조사에서 ‘석면폐3급’을 진단받았다. ‘석면폐’는 호흡기로 들어온 석면먼지가 폐에 박혀 폐를 딱딱하게 굳게 만들어 호흡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석면 질환이다. ‘석면폐3급’은 석면폐가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 중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빠르게 혹은 천천히 2급과 1급으로 나빠지고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암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수남마을에서 석면폐 환자들이 다수 검진되었고 이 주민들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환경성 석면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부산 범일동 수남마을의 한 가옥 지붕 상태, 낡고 깨진 석면슬레이트 위에 녹슨 양철 지붕재가 덮여있다
깡깡이마을
사람들은 부산 영도구 태평동의 마을을 ‘깡깡이마을’이라고 부른다. 부산을 상징하는 영도다리를 건너면 있는 곳으로 자갈치시장에서도 내다보인다. 항구도시 부산은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선박산업의 중심지다. ‘깡깡이마을’이란 이름은 중고선박을 수리하면서 선박 철판을 망치로 두드리는 ‘깡깡’ 소리에서 비롯됐다. 배에는 석면이 여기저기에 많이 사용됐다. 뜨거운 엔진열을 차단하기 위한 단열재로 석면포가 사용되었고, 석면실로 짠 석면밧줄, 석면라이닝, 화재방지를 위한 석면 뿜칠 등 선박 곳곳에 석면이 사용됐다. 오래된 중고선박을 수리하는 과정은 그런 석면에서 나오는 석면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선박 수리나 건조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공장 근방에 살면 석면 노출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부산 영도구 태평동 일명 ‘깡깡이마을’의 중고선박 수리 현장
울산에 사는 원모 씨는 어릴 때 부모님과 부산 시내에 살았다. 원 씨의 아버지는 악성중피종을 앓다 사망했다. 2011년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법」은 원 씨의 아버지가 환경성 석면암 피해자임을 확인해 주었다. 원 씨 가족이 살았던 곳은 부산시 연제구였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제일화학이라는 석면방직공장이 있었다. 일본의 석면회사 니치아스의 자회사인 다츠타공업이 일본 오사카 지방 나라현에서 가동하던 청석면 방직기계를 1971년 부산에 옮겨 ‘제일아스베스트’라는 이름의 한일합작회사를 세웠다. 제일화학은 1992년 양산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석면방직기계 일부를 인도네시아 시비농으로 옮겨 한인니합작회사(PT. Jeil Fajar Indonesia)를 세웠다. 이 회사는 최근까지도 석면방직제품을 생산했다. 일본 나라, 한국 부산, 인도네시아 시비농의 석면공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에게서 석면질환 피해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주민건강영향 조사하니 석면 피해자 우르르
부산 연제구 연신초등학교 운동장. 교문 건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자리에 1969년부터 1992년까지 23년간 국내 최초 최대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이 있었다. 연신초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석면에 노출된 잠재적 석면 피해자다
부산에는 <석면관리협의회>라는 회의체가 있다. 부산광역시, 낙동강유역환경청, 부산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 부산광역시교육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광역본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 등이 참여하고 부산환경운동연합과 석면추방부산공동대책위원회가 참관한다. 이들의 회의자료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환경성 석면 노출 의심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라는 대목이다. 2023년에 석면공장 29개, 슬레이트 지역 11개, 조선소 35곳 등 모두 75개 지역에서 1000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검진 버스가 마을을 찾아가 흉부 엑스선 촬영과 폐기능 검사 등을 실시해 1차로 의심환자를 찾아내고 2차로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통해 석면병을 찾아내는 일을 할 계획이다. 2009년부터 2023년 2월까지 15년간 1만755명을 검진해 830명의 석면병 환자를 찾아냈다. 평균 7.7%의 검진율이다. 2017년 부산시가 29곳 석면 의심지역의 반경 2km 이내에서 거주한 석면 노출 가능 주민을 파악해보니 17만8000명이었다. 지금까지 이들의 13%만 검진했다.
환경성 석면 피해자를 위한 「석면피해구제법」이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신청하면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에서 판정해 병원비와 장례비 등을 지급하는 제도다. 2023년 2월까지 부산에서 인정된 피해자는 모두 1263명이다. 사망자 138명(악성중피종 128명, 폐암 79명, 석면폐 11명)과 생존환자 1124명(악성중피종 57명, 폐암 217명, 석면폐 850명)이다. 부산의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을 통해 찾아낸 830명은 부산지역 전체 석면 피해 구제 인정자 1263명의 66%다. 10명 중 6~7명은 피해자 찾기를 통해 찾아냈다.
부산지역 환경성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의 의미와 특징을 정리해봤다.
△최근 2~3년 사이 석면 피해 인정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석면 피해자들이 크게 늘어나는 배경은 과거 30~50년 전에 석면에 노출된 주민, 노동자들에게서 석면 질병 잠복기가 끝나감에 따라 석면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성 석면 피해 인정자의 성별을 보면 남성 582명(70.1%), 여성 248명(29.9%)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는 석면을 다루었던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들의 직업성 석면 노출 사례가 다수 포함된 것이다. 순수 환경성 석면 피해라면 남녀 비율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70대(46.1%)와 60대(33.3%)가 가장 많지만, 40대(0.6%)와 50대(4.8%)에서도 나타난다.
부산만이 아니다, 피해 구제 지원금 현실화해야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 해결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환경성 석면 피해는 부산만의 특징이 아니다. 폐석면 광산이 밀집한 충남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슬레이트 밀집지역은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의 석면 피해자 찾기 사업이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석면 피해 구제 지원금 수준이 턱없이 낮다. 같은 질병의 산업재해보험금의 20~30%에 불과하다. 석면원료를 다뤘던 산업계의 분담금을 높이고 석면부품과 자재를 사용한 전자산업, 건축, 자동차산업에 특별분담금을 부과해 구제기금을 크게 확대하여 산재보험금과 같은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상당수의 석면 피해 구제 인정자가 과거 직업성 석면 노출 피해자라는 점에서도 이런 조치는 합당하다.
글・사진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