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시리즈물이, 시즌 28까지 지겹도록 연재되는데 아무런 진전도 없고 오히려 매 시즌마다 상황이 악화되기만 한다면 그 콘텐츠를 끈기 있게 지켜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하자면 COP28이 그런 지독한 예다.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이행방안을 국제사회가 논의한 게 벌써 스물여덟 번째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수십 년간 총회를 열고도 2022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리협정의 목표가 지켜지기는커녕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최고 2.9℃ 상승할 추세라는 전망이 나온 탓일까? 어쩌면 산유국 UAE가 개최한 COP28이 비즈니스와 그린워싱의 장으로 변질되었다는 참담한 외신 보도가 줄 잇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기후악당 행동대장이 되어가는 설상가상의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야바위꾼이 된 한국 정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엑스포에서 열린 28차 유엔기후변화회의(UNCCC)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3배 증대론에 대해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딘 칼마 / IAEA
COP28에서 그나마 기대되었던 성과를 몇 가지 꼽자면 ‘손실과 피해 기금’의 조성과 ‘화석연료 퇴출’ 협약, ‘재생에너지 확대’ 협약 등이었다.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은, 개발도상국이 기후위기로 인해 입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조성해 지원함으로써 전체 협약 당사국들이 최소한의 형평에 맞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화석연료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 합의문에 내실 있게 반영된 적이 없었던 까닭에, 이번에는 반드시 포함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사안들 모두 겉으로는 구색을 갖추었다. 기금이 턱없이 모자라고 화석연료는 ‘퇴출’이 아니라 ‘전환’으로 완곡하게 표현되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는 공허한 선언만 답습되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이 핵심 흐름에 기여하기보다 허튼소리들만 해가며 COP28가 빛바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COP28에서도 지난 9월 유엔총회부터 운을 띄운 CF100(무탄소 연합) 확산을 주장했다. CF100이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지향하는 민간·산업계 흐름인 RE100에 사실상 대립하는 개념이다. 은근슬쩍 핵발전을 RE100이 주도하는 전환의 수혜자로 포함시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물타기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흐름 속에 핵발전을 무리하게 끼워 넣으려는 것은 일종의 무임승차이자 RE100 캠페인 본질을 훼손하려는 행위다. 운영 중 탄소배출량이 없다는 것만으로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핵발전소처럼 복구 불가능한 중대사고 가능성도 없고,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에너지원에도 ‘염치’를 물을 수 있다면, 핵발전소가 재생에너지와 동류의 취급을 받으려는 건 후안무치한 일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폐기’, ‘원자력 최강국’이라는 위험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매몰되어 있는 터라, 분별없이 ‘기승전핵’만 외치고 있다. 때문에, 기후위기 현황을 살피고 온실가스 감축 이행 점검과 계획의 진전에 애써야 할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본질을 벗어난 얘기를 늘어놓으며 담대한 전환을 발목 잡는 꼴이 되었다. 핵발전이 마치 친환경 에너지인 것처럼 눈속임을 시도하고, 그 현실적·잠재적 위험성과 온실가스 감축 기여의 실효성 등에 관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야바위꾼이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 3배, 핵발전도 3배?
COP28에 참가한 130여 개국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늘리기로 합의했다. 다만, 초안에서는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3배 늘려 약 1만1000GW에 도달하겠다는 구체적 목표 시점과 수치까지 있었으나, 최종 합의문에서 이 내용이 모두 빠졌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시사한다.
재생에너지가 어떤 윤리적·생태적 문제도 없는 완전무결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개선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핵발전을 빠르게 시장에서 자연 도태시킬 것이라고 불성실한 청사진(전반적 경향은 사실이지만, 기후위기의 시간표로 보면 이 ‘시장의 전환’은 느리다)을 제시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재생에너지의 한계들 탓에 국제사회가 더 강력한 정책 추진에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이므로.
COP28에 참여한 당사국 정책 결정권자들이 끝내 재생에너지 확대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현재의 국제 정치가 화석연료라는 낡은 체제의 기반을 청산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 중심 시스템이 도래하는 시점이 구체화 될수록 화석연료 시대의 종식도 자연히 윤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COP28이 끝내 화석연료의 ‘퇴출’이라는 목표에 합의하지 못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도리어 이번 COP28에는 처음으로 대표적 화석연료 기업인 엑손모빌(ExxonMobil)이 참석해 화석연료 입장에서의 항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CF100 같은 한국 정부의 무리수는 마치 부산 엑스포처럼 세계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핵 산업의 농성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을 비롯한 22개국은 핵발전 용량을 3배 늘리는 것에 합의했다. 재생에너지도 3배 늘리면서, 핵발전도 3배 늘리겠다는 건 일국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보면 과잉된 공약이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현재도 핵발전 비중이 70%인데, GDP 성장이나 에너지 소비량 증가가 멈춘 국가에서 에너지 설비를 세 배나 늘리겠다는 건 황당한 소리다. 한국 역시 핵발전을 지금보다 세 배로 늘리면 그 비중이 90%에 육박하고, 좁은 국토에 70~80기 이상 핵발전소를 밀집시키는 꼴이 된다. 비현실적 얘기다.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풀어보면 이 말은 이들 나라가 핵발전을 수출하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COP28에서 이런 결의가 감행된 것은 핵산업계와 그 기업 소재 국가들이 기후위기를 극복 과제가 아닌 사업 모델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손실과 피해 기금’도 제대로 모금이 안 되는데, 미·영·프·일·한 같은 선진국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선의로 개발도상국에 공짜 핵발전소를 지어줄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기후총회가 핵발전 판매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핵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 격차가 벌어졌고 가장 값싼 에너지원도 태양광과 풍력이 되었다. 재생에너지가 매년 꾸준히 신규 설치량이 늘어 석탄을 제치고 최대 에너지원이 되면서 빠르게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있는 반면, 핵발전은 새로 지어지는 것보다 노후화로 문을 닫아야 하는 발전소가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 3배를 외치는 것은 그저 퇴조해가는 핵산업의 억지일 뿐이다. 이 억지가 재앙인 것은 힘 있는 나라들이 부리는 억지인 까닭이다.
COP의 실패. 구조적 결함?
COP28은 실질적으로 만들어 낸 성과는 적지만 선명한 교훈을 남겼다. 화석연료와 핵산업의 생명 연장에 골몰하는 낡고 후진적인 자본과 정치를 먼저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고, 기후재난은 현실이 되어 수십억 명의 생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회의장에서는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기후범죄자들이 도박성 해법과 상품 카달로그를 늘어놓는 형국이다.
COP28을 ‘기후 카지노’로 만드는 건 가령 이런 것들이다. 화석연료 대체 효과가 불투명하고 시장성이 줄어드는 신규 핵발전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상용화되지도 않은 SMR(소형원자로)을 선택지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 역시 기술 수준이 낮고 탄소 감축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의 활용을 전제로 화석연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것.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구체화하지 않고 시장에만 내맡겨두는 것.
이 위험한 대안들은 마치 어떤 카드놀이 같아서, 이 중 한 장의 카드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 현재도 전 세계의 감축 계획으로는 1.5℃는커녕 2℃ 목표를 지키기도 어렵다는 게 유엔 환경계획(UNEP)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COP의 도박사들이 위험한 해법을 늘어놓는 이유는 전통적 자본·정치 권력이 화석연료와 핵산업에 상당 부분 저당 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산업들로부터 로비를 받거나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목줄을 차고 있을 수도 있고, 그들의 직조한 경제·생태 질서로부터 간접적 수혜를 받고 있어 시스템을 바꿀 용기와 의지가 거세된 상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도박사들이 현란한 말로 주의를 돌려가며 기후위기 대응의 유구한 실패 역사를 이끈 장이 COP다.
기후협약체제 넘어서는 체제전환을 고민하자
환경문제가 이렇게나 한 시대의 강력한 화두가 된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와 정치체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소비’하고자 한다. ‘미래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기후위기시대에 돈이 되는 건 이런 것이다.’, ‘탄소중립, ESG, SDGs. 이제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메시지들은 끊임없이 대중들의 관심을 분산시킨다. 누군가는 지레 안심해 버리고, 누군가는 포기해 버리고, 또 누군가는 지갑을 연다. 기후위기를 유발한 체제는 아주 능란하게 이 위기를 자신들의 기회로 포섭하고 있다.
타자의 생명과 미래로 도박을 벌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주도하는 협약, 기후정치, 환경경제는 가능한 것인가, 허상일 뿐인가. 이 체제가 진실로 화석연료와 핵발전을 퇴출할 수 있는 것일까. COP28의 결과가 그 대답이다. 이제 환경운동이 새 국면을 열어야만 할 것이다.
글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
만약 어떤 시리즈물이, 시즌 28까지 지겹도록 연재되는데 아무런 진전도 없고 오히려 매 시즌마다 상황이 악화되기만 한다면 그 콘텐츠를 끈기 있게 지켜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하자면 COP28이 그런 지독한 예다.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이행방안을 국제사회가 논의한 게 벌써 스물여덟 번째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수십 년간 총회를 열고도 2022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리협정의 목표가 지켜지기는커녕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최고 2.9℃ 상승할 추세라는 전망이 나온 탓일까? 어쩌면 산유국 UAE가 개최한 COP28이 비즈니스와 그린워싱의 장으로 변질되었다는 참담한 외신 보도가 줄 잇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기후악당 행동대장이 되어가는 설상가상의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야바위꾼이 된 한국 정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엑스포에서 열린 28차 유엔기후변화회의(UNCCC)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3배 증대론에 대해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딘 칼마 / IAEA
COP28에서 그나마 기대되었던 성과를 몇 가지 꼽자면 ‘손실과 피해 기금’의 조성과 ‘화석연료 퇴출’ 협약, ‘재생에너지 확대’ 협약 등이었다.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은, 개발도상국이 기후위기로 인해 입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조성해 지원함으로써 전체 협약 당사국들이 최소한의 형평에 맞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화석연료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 합의문에 내실 있게 반영된 적이 없었던 까닭에, 이번에는 반드시 포함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사안들 모두 겉으로는 구색을 갖추었다. 기금이 턱없이 모자라고 화석연료는 ‘퇴출’이 아니라 ‘전환’으로 완곡하게 표현되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는 공허한 선언만 답습되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이 핵심 흐름에 기여하기보다 허튼소리들만 해가며 COP28가 빛바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COP28에서도 지난 9월 유엔총회부터 운을 띄운 CF100(무탄소 연합) 확산을 주장했다. CF100이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지향하는 민간·산업계 흐름인 RE100에 사실상 대립하는 개념이다. 은근슬쩍 핵발전을 RE100이 주도하는 전환의 수혜자로 포함시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물타기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흐름 속에 핵발전을 무리하게 끼워 넣으려는 것은 일종의 무임승차이자 RE100 캠페인 본질을 훼손하려는 행위다. 운영 중 탄소배출량이 없다는 것만으로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핵발전소처럼 복구 불가능한 중대사고 가능성도 없고,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에너지원에도 ‘염치’를 물을 수 있다면, 핵발전소가 재생에너지와 동류의 취급을 받으려는 건 후안무치한 일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폐기’, ‘원자력 최강국’이라는 위험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매몰되어 있는 터라, 분별없이 ‘기승전핵’만 외치고 있다. 때문에, 기후위기 현황을 살피고 온실가스 감축 이행 점검과 계획의 진전에 애써야 할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본질을 벗어난 얘기를 늘어놓으며 담대한 전환을 발목 잡는 꼴이 되었다. 핵발전이 마치 친환경 에너지인 것처럼 눈속임을 시도하고, 그 현실적·잠재적 위험성과 온실가스 감축 기여의 실효성 등에 관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야바위꾼이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 3배, 핵발전도 3배?
COP28에 참가한 130여 개국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늘리기로 합의했다. 다만, 초안에서는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3배 늘려 약 1만1000GW에 도달하겠다는 구체적 목표 시점과 수치까지 있었으나, 최종 합의문에서 이 내용이 모두 빠졌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시사한다.
재생에너지가 어떤 윤리적·생태적 문제도 없는 완전무결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개선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핵발전을 빠르게 시장에서 자연 도태시킬 것이라고 불성실한 청사진(전반적 경향은 사실이지만, 기후위기의 시간표로 보면 이 ‘시장의 전환’은 느리다)을 제시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재생에너지의 한계들 탓에 국제사회가 더 강력한 정책 추진에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이므로.
COP28에 참여한 당사국 정책 결정권자들이 끝내 재생에너지 확대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현재의 국제 정치가 화석연료라는 낡은 체제의 기반을 청산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 중심 시스템이 도래하는 시점이 구체화 될수록 화석연료 시대의 종식도 자연히 윤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COP28이 끝내 화석연료의 ‘퇴출’이라는 목표에 합의하지 못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도리어 이번 COP28에는 처음으로 대표적 화석연료 기업인 엑손모빌(ExxonMobil)이 참석해 화석연료 입장에서의 항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CF100 같은 한국 정부의 무리수는 마치 부산 엑스포처럼 세계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핵 산업의 농성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을 비롯한 22개국은 핵발전 용량을 3배 늘리는 것에 합의했다. 재생에너지도 3배 늘리면서, 핵발전도 3배 늘리겠다는 건 일국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보면 과잉된 공약이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현재도 핵발전 비중이 70%인데, GDP 성장이나 에너지 소비량 증가가 멈춘 국가에서 에너지 설비를 세 배나 늘리겠다는 건 황당한 소리다. 한국 역시 핵발전을 지금보다 세 배로 늘리면 그 비중이 90%에 육박하고, 좁은 국토에 70~80기 이상 핵발전소를 밀집시키는 꼴이 된다. 비현실적 얘기다.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풀어보면 이 말은 이들 나라가 핵발전을 수출하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COP28에서 이런 결의가 감행된 것은 핵산업계와 그 기업 소재 국가들이 기후위기를 극복 과제가 아닌 사업 모델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손실과 피해 기금’도 제대로 모금이 안 되는데, 미·영·프·일·한 같은 선진국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선의로 개발도상국에 공짜 핵발전소를 지어줄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기후총회가 핵발전 판매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핵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 격차가 벌어졌고 가장 값싼 에너지원도 태양광과 풍력이 되었다. 재생에너지가 매년 꾸준히 신규 설치량이 늘어 석탄을 제치고 최대 에너지원이 되면서 빠르게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있는 반면, 핵발전은 새로 지어지는 것보다 노후화로 문을 닫아야 하는 발전소가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 3배를 외치는 것은 그저 퇴조해가는 핵산업의 억지일 뿐이다. 이 억지가 재앙인 것은 힘 있는 나라들이 부리는 억지인 까닭이다.
COP의 실패. 구조적 결함?
COP28은 실질적으로 만들어 낸 성과는 적지만 선명한 교훈을 남겼다. 화석연료와 핵산업의 생명 연장에 골몰하는 낡고 후진적인 자본과 정치를 먼저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고, 기후재난은 현실이 되어 수십억 명의 생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회의장에서는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기후범죄자들이 도박성 해법과 상품 카달로그를 늘어놓는 형국이다.
COP28을 ‘기후 카지노’로 만드는 건 가령 이런 것들이다. 화석연료 대체 효과가 불투명하고 시장성이 줄어드는 신규 핵발전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상용화되지도 않은 SMR(소형원자로)을 선택지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 역시 기술 수준이 낮고 탄소 감축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의 활용을 전제로 화석연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것.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구체화하지 않고 시장에만 내맡겨두는 것.
이 위험한 대안들은 마치 어떤 카드놀이 같아서, 이 중 한 장의 카드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 현재도 전 세계의 감축 계획으로는 1.5℃는커녕 2℃ 목표를 지키기도 어렵다는 게 유엔 환경계획(UNEP)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COP의 도박사들이 위험한 해법을 늘어놓는 이유는 전통적 자본·정치 권력이 화석연료와 핵산업에 상당 부분 저당 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산업들로부터 로비를 받거나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목줄을 차고 있을 수도 있고, 그들의 직조한 경제·생태 질서로부터 간접적 수혜를 받고 있어 시스템을 바꿀 용기와 의지가 거세된 상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도박사들이 현란한 말로 주의를 돌려가며 기후위기 대응의 유구한 실패 역사를 이끈 장이 COP다.
기후협약체제 넘어서는 체제전환을 고민하자
환경문제가 이렇게나 한 시대의 강력한 화두가 된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와 정치체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소비’하고자 한다. ‘미래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기후위기시대에 돈이 되는 건 이런 것이다.’, ‘탄소중립, ESG, SDGs. 이제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메시지들은 끊임없이 대중들의 관심을 분산시킨다. 누군가는 지레 안심해 버리고, 누군가는 포기해 버리고, 또 누군가는 지갑을 연다. 기후위기를 유발한 체제는 아주 능란하게 이 위기를 자신들의 기회로 포섭하고 있다.
타자의 생명과 미래로 도박을 벌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주도하는 협약, 기후정치, 환경경제는 가능한 것인가, 허상일 뿐인가. 이 체제가 진실로 화석연료와 핵발전을 퇴출할 수 있는 것일까. COP28의 결과가 그 대답이다. 이제 환경운동이 새 국면을 열어야만 할 것이다.
글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