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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게 무해한 여행을 꿈꾸며

2023-02-01

내가 욕심을 내는 거의 유일한 일은 ‘여행’이다. 여행만큼 내 몸과 마음에 깊고 또 기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저축과 투자에 열중할 때 나는 아이와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큰 아이도 당연히 여행을 통한 배움과 경험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기쁜 일이다. 지난 2년.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코로나19가 2020년 1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이동의 자유와 모임의 자유가 제한됐다.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데 여행은 언감생심. 2020년 대학에 입학한 아이는 친구들과 터키-그리스로 이어지는 여행을 계획했다가 좌절했다. 그리고 입학식도 취소되고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꼬박 2년을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코로나, 기후변화, 그리고 책 읽기 

그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우려들이 현실이 되었다. 홍수와 가뭄, 산불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세계 곳곳의 사연이 온라인을 통해 빛의 속도로 전해졌다. 한반도는 2020년 최장 장마를 겪더니 2022년에는 폭우에 서울 강남이 잠겼다. 경북의 산불은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까지 위협했다. 와중에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위기를 가중시켰다.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겪은 시민들은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더 이상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호소가 세상을 울리기 시작했다. 

2019년 스웨덴에서 ‘플뤼그스캄(flygskam)’과 ‘숍스캄(Kopskam)’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스웨덴 단어 skam은 부끄러움을 뜻한다고 한다. 플뤼그스캄은 fly 즉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엄청난 비행기 탑승에 대한 부끄러움을, 숍스캄은 구매와 쇼핑에 대한 부끄러움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30을 중심으로, 흔히 사 입고 버리던 옷 소비와 쉽게 쓰고 버리던 일회용품에 대해 ‘이렇게 쓰고 버려서는 우리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다회용컵을 쓰자는 문화가 생겨나고, 분당 판교 지역에서 유행하던 중고거래앱 ‘당근마켓’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사람들이 코로나와 기후변화의 복합위기에 대한 대응을 생활 속에서 시작했다는 변화의 증거들이었다.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네에서 기후변화 책 모임 ‘해바라기’를 하게 된 것이다. 지구를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니 일단 환경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참여할 거냐?” 묻는 이웃 친구의 말에 호응한 게 시작이었다. 모임의 첫 책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의 탈핵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운동 과정을 담은 책인 『쇠나우 마을 발전소』였다. 독서는 이어졌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쓰레기 거절하기』,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등의 책을 읽었다.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것이 우리 독서의 테마였다. 리필스테이션이자 제로웨이스트 삶을 이끄는 알맹상점을 방문했고, 우유팩 수거를 잘해보기 위해 카페라떼클럽 왕꽃님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육식VS채식’이 아닌 먹거리 전반을 살피기 위해 읽었던 『탄소로운 식탁』에 감명을 받고 저자(윤지로)를 초청해 마을 도서관에서 강연회도 열기도 했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 삶을 나누고 책 읽기가 바꾼 생활의 변화를 공감하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몸이 편하기보다 마음이 편한 여행 

공유공간 카페


그 사이 연말이 다가왔다. 우리 독서모임은 자유로워진 여행 분위기에 맞춰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를 읽었다. 지속가능한 여행의 첫 번째 조건은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비행기를 줄이는 것이다. 남북 철도가 연결돼 있다면 모를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세계로 나가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행이 불가피하다면 그 다음 저탄소 여행의 조건은 무엇일까? 여행지에서 환경친화적 이동수단 이용, 일회용품을 안 쓰기, 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먹을거리 먹기 또는 그런 음식점 이용, 환경부담을 줄이고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이 함께하는 숙소 이용 등에 대한 의견이 개진됐다. 관광객이 적은 여행지를 선택하고, 되도록 한곳에 오래 머무르고, 출발할 때 짐을 잘 챙겨서 여행지에서 일회용품이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얘기도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며 연말 가족과 함께 가기로 한 제주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됐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데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겠다.’는 마음이 더해졌다. 

많은 이들이 제주에 가면 차를 빌려 제주 전역을 누비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경승지를 보러 가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험을 구해 이동하고 또 이동한다. 우리 가족은 이번 제주 여행에서 숙소로 정한 곳과 가까운 곳을 살펴보기로 했다. 움직임은 숙소로 잡은 남원읍 위미마을 근처로 최소화했다. 가장 먼 이동은 숙소 인근 올레길을 선택해 걷는 여행이었다. 꽤 멀리까지 걸어가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고 왔다. 가족 선물은 전통시장을 이용했다. 맛집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예약 없이도 숙소 인근의 음식점들에서 이 지역, 아니 이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진짜 ‘로컬 맛집’의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최고의 선택은 숙소였다. 제주 여행을 좋아하는 언니가 “네가 딱 좋아할 만한 곳이야!” 하고 추천해 준 곳이었다. 평소 이용하던 곳들보다 가격이 좀 비쌌다. 그런데 그 가격으로 숙소가 돌려준 것은 ‘이런 숙소도 가능하구나!’ 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비닐포장 없는 비누


우선, △일회용품이 없었다. 샴푸, 컨디셔너, 바디솝은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들어진 비건 세제가 비치되어 있었다. 궁금증에 조금 더 찾아보니 천연 원료 사용, 프랑스 이브 비건 인증 획득, 공병 수거 프로그램 운영,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포장까지 지향하고 있었다. 세면대 위에는 비닐 포장 없이 비누곽 위에 비누가 비치되어 있었고, 양치 컵이 놓여 있었다. 치약, 칫솔, 면도기 등 개인 위생용품은 제공되지 않으니 준비해서 오라고 하루 전날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플라스틱 생수병이 아닌 물병이 들어 있는 냉장고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도 없었다. 대형호텔이든 어디든 숙소의 냉장고에는 마치 ‘국룰’처럼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가 1인당 한병 꼴로 비치돼 있다. 그러나 우리 숙소의 냉장고엔 물병에 물이 담겨 있었다. 물은 다음 날 새 수건을 내주며 함께 채워주었고, 더 필요하면 공유공간 카페에서 담아올 수 있었다. 일정 출발 전에 따뜻한 차나 물을 텀블러에 담아서 나가니 따로 생수를 살 일이 없었다.



지역먹거리로 만든 조식


△맛있고 정성이 담긴 조식이 나왔다. 보통 숙소에서 ‘조식이 제공됩니다.’는 문구를 봐도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토스트나 커피, 귤이나 바나나 정도니까. 우리 숙소에서는 첫날엔 직접 기른 귤로 착즙 주스가 나왔고, 숙소 인근 마을 빵집에서 만든 천연발효종 치아바타 샌드위치가 나왔다. 샌드위치 안에는 직접 키운 루꼴라도 들어있고 바질로 만든 페스토도 발려있었다. 둘째 날엔 전복죽과 반찬, 따뜻한 차가 나왔다. 다 이 지역에서 난 식재료들이었다. 진짜배기 로컬푸드로 아침을 먹고 나서면 다음 끼니까지 군것질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직접 빚은 예쁜 도자기에 담긴 직접 키운 귤을 맛볼 수 있었다. “약 안치고 직접 키운거라 크기도 모양도 별로지만 맛은 있을 거예요.” 마음 따뜻해지는 웰컴 ‘귤’이었다. 귤만 도자기에 담긴 게 아니라 컵도, 칫솔꽂이도 다 직접 빚어 구운 도자들이었다. 조식도 예쁜 도

자에 담겨 나왔다. 펜션 1층엔 도자 공방이 있었다. 공유카페에선 숙박객들이 쥔장이 빚은 도자기를 구매할 수도 있었다. 쥔장은 빚어낸 흙그릇에 여행자를 위한 마음에 담아 보여주었다.

보자마자 침구와 가구가 무해한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도 있었다. 첫인상도 떠날 때도 ‘와 이렇게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하게 신경을 쓰고 손 많이 가겠구나!’ 싶었다. 그 말을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하니 쥔장은 “어휴. 그럼요. 잠시도 쉴 틈이 없어요.”라고 ‘알아줘서 고맙다!’는 얼굴로 웃는다. 1박보단 연박 손님만 예약을 받는 것이 쥔장의 중요한 팁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의 제주 여행이 어쩌면 불편한 숙박, 불편한 이동, 불편한 식사로 여겨질 이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여행은 진심으로 마음과 몸을 편하게 만들었다. 


지구에게 염치 챙기는 여행에 대하여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화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어야 보존될 수 있으며, 관광객에게 보이기 위해 박물관 같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경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작정 방문하지 않는 것 또한 지역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과 함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문화관광을 한다면 지역 공동체와 유산을 보호할 수 있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지속가능한 여행은 여행의 한 종류나 기준이 아니라 모든 여행, 여행 동기, 목적지에 적용되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여행은 즐김보다 과정에서의 배움에 가깝다. 아니 배움을 즐기게 되는 여행이 여행의 본질에 가깝다고 해야 하겠다. 오랜만에 간 여행에서 손발이 조금 불편하고 눈은 덜 자극적인 여행이 사실은 지구와 우리 자신에게 더 이로운 여행이란 걸 배웠다. 지구에게 염치를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런 시대의 여행이 어떠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운 여행이었다. 이 소소한 여행기가 더 많은 이웃들이 그런 여행을 체험하는 데 참고 사례가 되길 바란다.


글∙사진 | 이지현 (재)숲과나눔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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