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2년이 되었다. 2023년 8월 31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859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825명이다. 숫자로 보면 전쟁 이외에 유례가 없는 대참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점점 사회에서 잊혀 가는 듯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의 복잡성이다. 복잡성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질린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일을 포기할 수가 없다.
폐암 걸린 피해자들 외면하는 환경부
지난 8월 2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기자회견 ⓒ환경보건시민센터
지난 8월 29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온 피해자와 유족은 두 명이었고, 나머지 10여 명의 피해자들은 전화 연결을 통해 그동안 환경부가 폐암 피해 신고를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환경부가 이제는 폐암을 가습기살균제 관련 질환으로 인정하고 신속심사 대상 질환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판정은 신속심사와 개별심사로 이루어지는데, 신속심사는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난 뒤 일정 기간 내에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등 요건이 부합하면 자동으로 피해판정을 빨리하는 제도이고, 개별심사는 심사위원들이 피해자 한 명의 정보를 놓고 논의를 통해 피해판정을 하는 제도인데 길면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직접 파악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의 사례는 12건이며,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조인재(1965년생, 여자)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한 폐암 피해자 조인재 씨의 직업은 간호사다. 그녀는 평소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조인재 씨는 병원 응급실 접수대에서 혼자 근무하다가 2007~2009년 옥시와 롯데, 애경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었다. 흡연도 하지 않던 그녀는 가습기살균제 노출 10년 뒤인 2016년 폐암이 발병하여 폐 우상엽 2/3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녀는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를 환경부에 신고했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 환경부는 그녀에게 폐암 피해를 판정하지 않고 있다.
사례 2. 김정희(1963년생, 여자)
2010년 폐암으로 사망한 故 김정희 씨는 1997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사용 시작 10년 뒤인 2007년 40대에 폐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러나 폐암이 악화된 그녀는 2010년 사망했고, 2017년 가습기살균제의 정체를 알게 된 가족들은 환경부에 온 가족의 건강피해를 신고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현재까지 환경부는 남편과 자녀의 피해만 일부 인정할 뿐 폐암으로 사망한 김정희씨의 피해는 판정하지 않고 있다.
사례 3. 모은주(1980년생, 여자)
모은주 씨는 2007년 첫 아이를 출산할 때부터 2011년 둘째 아이 출산 때까지 옥시, 애경,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 등 4년간 다양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15년의 잠복기간이 지나고 2022년 그녀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실조차 거의 잊을 뻔했던 모은주 씨는 2020년 당시 가습기살균제를 조사하는 국가기관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연락을 받고 자신의 제품 구입내역을 찾아냈다. 폐암 수술 후 회복 중인 그녀는 환경부에 피해신고를 준비하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들은 발암 가능성 시사하는데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자 7859명 중 폐암 피해자는 206명이다. 환산하면 피해자 10만명 당 2621명이 폐암에 걸린 꼴인데,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폐암 발병률 10만명 당 56.4명의 46배가 넘는 높은 비율이다.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실험적 증거들도 이미 나왔다. 정부의 지원으로 2021년 고대안산병원 연구진은 해외 학술지인 「PLOS ONE」에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폐 노출 시 장기 영향을 평가하는 동물실험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장기노출시 쥐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해당 연구진은 2022년 사람의 폐세포에 저농도의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장기간 노출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BMC Pharmacology and Toxicology」 학술지에 게재하였는데,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사람 폐세포의 폐암 관련 유전자를 유의미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사람의 폐에 발암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폐암 유발 가능성을 시사한 논문
위 연구들은 환경부가 발주하여 진행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2년이나 차일피일 가습기살균제 인정질환 결정을 미뤄왔다. 전문가로 구성된 피해구제심사위원들이 빨리 폐암 피해를 논의하자고 해도 환경부는 다음에 논의하겠다며 여러 번 논의를 미뤄왔는데, 환경부가 폐암을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면 기업으로부터 특별법으로 거둔 피해구제기금이 빨리 소진될까 걱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피해자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등 떠밀린 개별심사로 1명 폐암 인정 그쳐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하자, 환경부는 황급히 지난 9월 5일 피해구제위원회를 개최하고 폐암 ‘1명’을 포함한 피해자 136명을 추가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정된 폐암 피해자 1명은 신속심사가 아닌 개별심사였고, 여전히 200명이 넘는 폐암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언제 인정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8월 29일 기자회견을 마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은 연신 활동가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들은 언론이 폐암 피해에 큰 관심을 갖고 취재를 했고, 환경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곧 자신들의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이야기했다. 기자들마저 활동가들에게 ‘환경부가 심사를 한다는데 이제 폐암이 인정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환경부가 등 떠밀리듯 진행한 1건의 폐암 개별 심사는 전체 폐암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폐암이 신속심사 대상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여전히 피해자들은 언제 판정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기다림은 종류에 따라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의 기다림은 이미 아픈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하기엔 아직도 폐암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환경부는 피해자들의 기다림과 고통을 이해하고 있을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가습기살균제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폐손상처럼, 천식처럼, 호흡기계 질환처럼, 이번에도 폐암 피해자들은 긴 싸움을 시작했다. 국가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편이 아니다.
글 | 김영환 환경보건시민센터 연구위원
올해로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2년이 되었다. 2023년 8월 31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859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825명이다. 숫자로 보면 전쟁 이외에 유례가 없는 대참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점점 사회에서 잊혀 가는 듯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의 복잡성이다. 복잡성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질린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일을 포기할 수가 없다.
폐암 걸린 피해자들 외면하는 환경부
지난 8월 2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기자회견 ⓒ환경보건시민센터
지난 8월 29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온 피해자와 유족은 두 명이었고, 나머지 10여 명의 피해자들은 전화 연결을 통해 그동안 환경부가 폐암 피해 신고를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환경부가 이제는 폐암을 가습기살균제 관련 질환으로 인정하고 신속심사 대상 질환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판정은 신속심사와 개별심사로 이루어지는데, 신속심사는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난 뒤 일정 기간 내에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등 요건이 부합하면 자동으로 피해판정을 빨리하는 제도이고, 개별심사는 심사위원들이 피해자 한 명의 정보를 놓고 논의를 통해 피해판정을 하는 제도인데 길면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직접 파악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의 사례는 12건이며,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조인재(1965년생, 여자)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한 폐암 피해자 조인재 씨의 직업은 간호사다. 그녀는 평소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조인재 씨는 병원 응급실 접수대에서 혼자 근무하다가 2007~2009년 옥시와 롯데, 애경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었다. 흡연도 하지 않던 그녀는 가습기살균제 노출 10년 뒤인 2016년 폐암이 발병하여 폐 우상엽 2/3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녀는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를 환경부에 신고했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 환경부는 그녀에게 폐암 피해를 판정하지 않고 있다.
사례 2. 김정희(1963년생, 여자)
2010년 폐암으로 사망한 故 김정희 씨는 1997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사용 시작 10년 뒤인 2007년 40대에 폐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러나 폐암이 악화된 그녀는 2010년 사망했고, 2017년 가습기살균제의 정체를 알게 된 가족들은 환경부에 온 가족의 건강피해를 신고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현재까지 환경부는 남편과 자녀의 피해만 일부 인정할 뿐 폐암으로 사망한 김정희씨의 피해는 판정하지 않고 있다.
사례 3. 모은주(1980년생, 여자)
모은주 씨는 2007년 첫 아이를 출산할 때부터 2011년 둘째 아이 출산 때까지 옥시, 애경,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 등 4년간 다양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15년의 잠복기간이 지나고 2022년 그녀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실조차 거의 잊을 뻔했던 모은주 씨는 2020년 당시 가습기살균제를 조사하는 국가기관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연락을 받고 자신의 제품 구입내역을 찾아냈다. 폐암 수술 후 회복 중인 그녀는 환경부에 피해신고를 준비하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들은 발암 가능성 시사하는데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자 7859명 중 폐암 피해자는 206명이다. 환산하면 피해자 10만명 당 2621명이 폐암에 걸린 꼴인데,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폐암 발병률 10만명 당 56.4명의 46배가 넘는 높은 비율이다.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실험적 증거들도 이미 나왔다. 정부의 지원으로 2021년 고대안산병원 연구진은 해외 학술지인 「PLOS ONE」에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폐 노출 시 장기 영향을 평가하는 동물실험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장기노출시 쥐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해당 연구진은 2022년 사람의 폐세포에 저농도의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장기간 노출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BMC Pharmacology and Toxicology」 학술지에 게재하였는데,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사람 폐세포의 폐암 관련 유전자를 유의미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사람의 폐에 발암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폐암 유발 가능성을 시사한 논문
위 연구들은 환경부가 발주하여 진행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2년이나 차일피일 가습기살균제 인정질환 결정을 미뤄왔다. 전문가로 구성된 피해구제심사위원들이 빨리 폐암 피해를 논의하자고 해도 환경부는 다음에 논의하겠다며 여러 번 논의를 미뤄왔는데, 환경부가 폐암을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면 기업으로부터 특별법으로 거둔 피해구제기금이 빨리 소진될까 걱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피해자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등 떠밀린 개별심사로 1명 폐암 인정 그쳐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하자, 환경부는 황급히 지난 9월 5일 피해구제위원회를 개최하고 폐암 ‘1명’을 포함한 피해자 136명을 추가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정된 폐암 피해자 1명은 신속심사가 아닌 개별심사였고, 여전히 200명이 넘는 폐암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언제 인정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8월 29일 기자회견을 마친 가습기살균제 폐암 피해자들은 연신 활동가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들은 언론이 폐암 피해에 큰 관심을 갖고 취재를 했고, 환경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곧 자신들의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이야기했다. 기자들마저 활동가들에게 ‘환경부가 심사를 한다는데 이제 폐암이 인정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환경부가 등 떠밀리듯 진행한 1건의 폐암 개별 심사는 전체 폐암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폐암이 신속심사 대상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여전히 피해자들은 언제 판정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기다림은 종류에 따라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의 기다림은 이미 아픈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하기엔 아직도 폐암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환경부는 피해자들의 기다림과 고통을 이해하고 있을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가습기살균제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폐손상처럼, 천식처럼, 호흡기계 질환처럼, 이번에도 폐암 피해자들은 긴 싸움을 시작했다. 국가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편이 아니다.
글 | 김영환 환경보건시민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