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흑두루미 군단이 서산 NGO들이 제공한 먹이를 싸우지 않고 골고루 질서 있게 섭취하고 있다
충남 천수만 들녘의 가을밤. 야간 강습을 하는 공수특전단원처럼 어둠 속에서 낙하하는 커다란 새는 무엇일까?
선발대를 따라 대규모 무리가 순차적으로 내려 앉으면, 어느덧 천여 마리가 된다. 울음소리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다름아닌 겨울철새 흑두루미(Hooded Crane, 천연기념물 228호,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다.
흑두루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까지 머무르는 곳은 충남 천수만이다. 특히 3월 초에는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했던 무리까지 합류해 최대 6000마리 이상의 대군단이 북적거릴 때도 있다.
귀향길 충남 천수만을 찾아온 흑두루미 가족이 보름달 사이로 날고 있다
눈이 쌓인 천수만 들녘에서 먹이를 찾던 흑두루미들이 다른 동료들이 발견한 먹이터로 몰려들고 있다
두루미나 재두루미보다 덩치가 작은(약 100 cm) 흑두루미는 그 습성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필자는 중국, 러시아의 두루미와 재두루미 번식지는 조사를 해 보았지만 흑두루미 번식지는 가본 적이 없다. 최근 밝혀진 흑두루미 번식생태는 두루미나 재두루미와 달리 집단번식을 하며, 둥지가 개활지가 아닌 산림을 낀 습지라고 한다.
천수만의 먹이터에서 배고픈 흑두루미들이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경쟁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차분하게 질서를 지킨다. 적당히 먹고, 순차적으로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좁은 장소에서 밀도 높게 부딪히면, 서로 다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다.
흑두루미 무리 중에는 이따금 검은목두루미나 캐나다두루미, 혹은 그들과의 잡종이 존재한다. 서로 다투는 일도 없고 무리 속에 섞여 가족처럼 행동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흑두루미는 이종에 대한 포용력이 남다른 것 같다.
흑두루미들이 충남 천수만에 땅거미가 지자 물이 차 있는 잠자리로 몰려들고 있다
늦가을 천수만에 찾아온 흑두루미 부부가 첫눈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지 수컷이 울자, 암컷이 따라 울고 있다
동북아에 서식하는 흑두루미는 대략 1만 6천 여 마리이다. 이들 중 3분의 2 정도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서 월동하고 나머지는 중국 중남부에서 월동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월동하던 장소는 경기 파주 교하와 경북 낙동강 중류였다. 그러나 도시화 이후 서식조건이 악화되고 먹이가 부족하자,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이즈미로 이주했다. 이즈미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공급하자, 따듯하고 손쉽게 먹이 조달이 가능한 곳으로 옮긴 것이다.
지난해 일본 이즈미에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해 많은 개체가 떼죽음을 당하자, 그 중 수천 마리가 전남 순천만과 충남 천수만으로 피난 온 적도 있다. 천수만과 순천만 모두 월동하는 흑두루미에게 일본의 이즈미처럼 먹이를 공급한다. 흑두루미는 장거리 여행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천수만의 경우 대지가 꽁꽁 얼고 눈이 쌓이면 먹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전 의장을 비롯한 지역활동가들이 서산 버드랜드와 조류 애호가들의 협조를 받아 흑두루미에게 볍씨를 제공한다. 매년 3월, 일본에서 월동한 흑두루미들이 고향인 러시아로 가는 도중 한반도에 중간 기착할 때는 그 양을 몇 배 늘리기도 한다.
천수만에서 월동 중인 흑두루미들이 눈으로 뒤덮인 들녘에서 낙곡을 찾고 있다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 후 충남 천수만에 중간 기착한 흑두루미들이 농경지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레미콘의 굉음소리에 아침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겨울철 찾아온 흑두루미가 굶주려 폐사하는 일은 사라져 다행이다. 하지만 집단생활을 하는 흑두루미에게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은 치명적일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대량 밀집하는 것보다는 제2, 제3의 이즈미, 천수만, 순천만이 생겨 이들의 월동지를 안전하게 분산 시켰으면 좋겠다.
글∙사진 | 김연수 생태사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흑두루미 군단이 서산 NGO들이 제공한 먹이를 싸우지 않고 골고루 질서 있게 섭취하고 있다
충남 천수만 들녘의 가을밤. 야간 강습을 하는 공수특전단원처럼 어둠 속에서 낙하하는 커다란 새는 무엇일까?
선발대를 따라 대규모 무리가 순차적으로 내려 앉으면, 어느덧 천여 마리가 된다. 울음소리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다름아닌 겨울철새 흑두루미(Hooded Crane, 천연기념물 228호,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다.
흑두루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까지 머무르는 곳은 충남 천수만이다. 특히 3월 초에는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했던 무리까지 합류해 최대 6000마리 이상의 대군단이 북적거릴 때도 있다.
귀향길 충남 천수만을 찾아온 흑두루미 가족이 보름달 사이로 날고 있다
눈이 쌓인 천수만 들녘에서 먹이를 찾던 흑두루미들이 다른 동료들이 발견한 먹이터로 몰려들고 있다
두루미나 재두루미보다 덩치가 작은(약 100 cm) 흑두루미는 그 습성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필자는 중국, 러시아의 두루미와 재두루미 번식지는 조사를 해 보았지만 흑두루미 번식지는 가본 적이 없다. 최근 밝혀진 흑두루미 번식생태는 두루미나 재두루미와 달리 집단번식을 하며, 둥지가 개활지가 아닌 산림을 낀 습지라고 한다.
천수만의 먹이터에서 배고픈 흑두루미들이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경쟁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차분하게 질서를 지킨다. 적당히 먹고, 순차적으로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좁은 장소에서 밀도 높게 부딪히면, 서로 다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다.
흑두루미 무리 중에는 이따금 검은목두루미나 캐나다두루미, 혹은 그들과의 잡종이 존재한다. 서로 다투는 일도 없고 무리 속에 섞여 가족처럼 행동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흑두루미는 이종에 대한 포용력이 남다른 것 같다.
흑두루미들이 충남 천수만에 땅거미가 지자 물이 차 있는 잠자리로 몰려들고 있다
늦가을 천수만에 찾아온 흑두루미 부부가 첫눈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지 수컷이 울자, 암컷이 따라 울고 있다
동북아에 서식하는 흑두루미는 대략 1만 6천 여 마리이다. 이들 중 3분의 2 정도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서 월동하고 나머지는 중국 중남부에서 월동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월동하던 장소는 경기 파주 교하와 경북 낙동강 중류였다. 그러나 도시화 이후 서식조건이 악화되고 먹이가 부족하자,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이즈미로 이주했다. 이즈미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공급하자, 따듯하고 손쉽게 먹이 조달이 가능한 곳으로 옮긴 것이다.
지난해 일본 이즈미에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해 많은 개체가 떼죽음을 당하자, 그 중 수천 마리가 전남 순천만과 충남 천수만으로 피난 온 적도 있다. 천수만과 순천만 모두 월동하는 흑두루미에게 일본의 이즈미처럼 먹이를 공급한다. 흑두루미는 장거리 여행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천수만의 경우 대지가 꽁꽁 얼고 눈이 쌓이면 먹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전 의장을 비롯한 지역활동가들이 서산 버드랜드와 조류 애호가들의 협조를 받아 흑두루미에게 볍씨를 제공한다. 매년 3월, 일본에서 월동한 흑두루미들이 고향인 러시아로 가는 도중 한반도에 중간 기착할 때는 그 양을 몇 배 늘리기도 한다.
천수만에서 월동 중인 흑두루미들이 눈으로 뒤덮인 들녘에서 낙곡을 찾고 있다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 후 충남 천수만에 중간 기착한 흑두루미들이 농경지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레미콘의 굉음소리에 아침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겨울철 찾아온 흑두루미가 굶주려 폐사하는 일은 사라져 다행이다. 하지만 집단생활을 하는 흑두루미에게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은 치명적일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대량 밀집하는 것보다는 제2, 제3의 이즈미, 천수만, 순천만이 생겨 이들의 월동지를 안전하게 분산 시켰으면 좋겠다.
글∙사진 | 김연수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