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208] 돌아봄과 내다봄

2024-01-02

환경운동의 대적은 많은 경우 자본과 권력이다. 만 30년 전, 1992~1993년의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정권에서 벗어나, 여전히 권위주의 정부의 한계를 지녔으되 민간정부로의 전환에는 성공한 상태였다.

이 시기 한국 사회는 두 가지 중요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요구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 하나는 ‘한국은 더 이상 개발 도상이 아닌 이미 성공한 개발국가’이므로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OECD에 가입해 글로벌 경제규칙의 적용을 받는 경제를 운용하라’는 요구였다. 이 요구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1993년 4월 <OECD가입 실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또한 OECD 가입을 위해 경제체질을 바꾸는 ‘신경제 5개년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그러나 정권의 비호 아래 노동자와 환경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제를 개혁하려는 이 계획은 이내 정경복합 수구연대의 저항에 의해 좌초됐다. 금융실명제 등 부분적 성과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경제체질 개선은 중단됐다. 이는 국가의 보호 아래 자본과 서비스 시장을 가동해 온 한국 경제가, 그런 보호 장막을 걷고 국제기준에 따라 경쟁하라는, OECD의 요구를 수용하고 감당할 만한 경제체력의 준비를 방기한 것으로, 이후 한국의 OECD 가입이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추진되고, 단기간에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조금융을 받는 사태로 이어진다.

경제를 국제기준에 맞추라는 요구에 더해 당시 한국 사회에 전해진 다른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의 압력은 이제 개발은 ‘환경의 고려 아래 진행돼야 한다’는 요구였다. 그 요구는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가 채택한 여러 국제협약들로 구체화됐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 ‘아젠다21’,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조약’ 등 지구환경 보호를 위한 거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정부 차원의 참여는 당연한 일이었고, 특기할 것은 한국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대규모 참가단을 구성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이듬해 환경운동연합 창립에 참여한 반공해운동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1993년 4월 2일 창립한 환경운동연합은 일정하게, 이전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주요 책무였던 반공해운동을 주요 사업으로 승계했다. 당시 가장 큰 공해 피해 이슈는 원진레이온 사태였다. 인견 제조업체인 원진레이온(현 남양주 다산신도시 일원. 1966년부터 가동)은 이 공장에 의해 당시 일대의 지역경제가 돌아간다고 할 정도로 지역의 사회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회사가 노동자를 이황화탄소 중독자를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1987년이 되어서야 겨우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1년 국회의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왔고 정부는 노동자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1993년 6월 8일 그간 이 공장의 노동자들 건강 피해가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직업병 인정 사망자 8명, 직업병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노동자만 637명에 이르고, 직업병 판정을 받기 전 사망했거나 중독에 이어진 정신질환과 중독 뒤 강제퇴사로 생계 곤란과 질병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원진레이온이 부른 죽음은 더 많다. 1993년 7월 10일 서울지법은 원진레이온을 폐업조치했다.

1993년으로부터 만 30년, 오늘의 한국 사회는 반칙 없는 경제, 정치의 비호 없는 경제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개발과 환경의 길항에서 또한 얼마나 멀어졌는가? 서로 비호하는 정치와 자본이 추진하는, 사실은 경제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개발과 사업의 희생양인 사람(노동자)과 자연(생태)의 피해는 얼마나 줄었는가?

2023년 정부는 대기업에 유리한 감세정책을 내놓고 핵발전 증대와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축소, 산업계의 탄소감축 의무를 다른 부문에 전가하고 유예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LG와 애경 등 대기업이 생산한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이래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 대신 면피에 주력할 뿐이고, 낙동강 상류에서 지역의 사회권력을 장악한 채 민족의 젖줄을 각종 화학물질로 오염시키고 노동자를 아르곤가스(비소) 중독으로 사망케 하는 등 전형적인 공해산업체인 영풍그룹 석포제련소을 폐업조치하기는커녕 공해 유발, 노동자 건강 피해에 대해 단기 영업중지 정도의 규제만 내려, 사실상 이 업체의 환경과 보건 불탈법을 눈감아 주고 있다. 정치가 사람 대신 참사 유발 기업, 공해기업을 편드는 현실은 원진레이온이 이황화탄소 중독자를 강제퇴직시키면서 공해를 숨겨 1986년 2만5000시간 무재해 표창을 노동부에서 받았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 상호 비호하는 권력과 자본은 시민과 노동자에게만 피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기후, 반생태적 개발사업의 전형인 가덕도신공항사업, 제주제2공항사업, 새만금사업, 설악산과 지리산국립공원 개발사업 등 다수 개발로 인한 자연의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정상화, 공해의 구축, 사람과 자연의 보호라는 과제는 여전하다.

서른 해 전 여름의 시작점에서 『함께사는길』은 환경운동연합 기관지로서 창간호를 냈고 만 30년 동안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감시하고 사람과 자연의 피해를 대변하는 보도활동을 해왔다. 2024년 1월호 통권 367호를 끝으로 『함께사는길』이 활동을 접는다. 미디어의 형태와 진화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는 결정이다. 『함께사는길』이 오늘의 칼럼에서 되돌아본 30년 시민환경운동의 과제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환경운동 진영이 슬기롭게 풀어갈 것을 기대하고 믿는다. 지지와 후원을 시민 독자들께 당부드린다. 시민 독자들과 동행한 지난 30년은 영광스러웠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서른 해의 동행에 감사드린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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