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또 다시 200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사라졌다. 꽃가루를 매개하던 꿀벌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꽃벌과 잎벌 같은 다양한 종류의 야생벌들과 등에 같은 파리류의 곤충들, 나비와 나방, 딱정벌레 등 다양한 생물들이 야생의 수분을 매개하며 지금까지 생태계를 유지해왔다.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저마다 꽃가루를 옮겨주던 특별한 생물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개망초에 앉은 폴리네이터(수분매개자), 버들깨알바구미
꿀벌의 위기 아닌 생물다양성의 위기
1990년 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곤충 개체수의 25%가량이 감소하였고, 지난 20년간 보라매공원, 한강공원 등에서 야생벌 개체수는 90%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곤충이 사라지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도시가 개발되며 이들이 살아갈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기후변화와 더불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농업은 곤충의 먹이원이 되는 식물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네오니코티노이드 등 곤충에 치명적인 화학적 농약을 이용한 방제가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이에 노출된 곤충의 면역력이 약화되며 외래 질병에 의한 피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꿀벌의 위기가 아닌 ‘생물다양성의 위기’이다.
‘벌 볼 일 있는 사람들’의 야생벌 조사
서울환경연합과 벌볼일있는사람들, 생명다양성재단은 꽃가루 매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실천행동으로서 2023 야생벌 시민조사단 활동을 진행하였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꿀벌에 비해 조명되지 못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벌의 개체수와 서식지를 파악하여 벌 보전활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다. 31명의 시민조사단이 모여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전문가와 함께 △길동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 △월드컵 평화의 공원에서 2차례씩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남산공원에서 한 차례 야간등화조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전문가와 함께하는 공동 현장조사 뿐만 아니라 생활권 주변에서 꽃에 찾아온 곤충들을 관찰하고 네이처링 ‘유니벌스’ 미션에 기록하도록 하며 일상적인 시민과학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었다.
야생의 꽃가루 매개 곤충들
조사 결과 다양한 야생 꽃가루 매개 곤충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야생벌 시민조사의 조사결과를 취합하면 654건 11목 76과 218종에 달하는데 그중 329건(50.3%)의 관찰기록이 곤충이 꽃에 찾아온 꽃가루 매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딱정벌레도 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의 관찰기록을 살펴보면 △벌목(15과 75종 444건)에 해당하는 곤충이 제일 많았고 △파리목(12과 37종 95건) △나비목(17과 52종 38건) △딱정벌레목(13과 21종 30건) 순으로 많이 관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꽃가루 매개 상태별로는 △벌목(235건) △파리목(58건) △딱정벌레목(17건)순으로 많은 것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벌목 관찰기록을 과별로 분류하면 꿀벌과가 15종 150건으로 제일 많았고, 꼬마꽃벌과가 10종 32건, 가위벌과가 10종 1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주변의 꽃가루 매개 곤충이 꿀벌만이 아닐뿐더러 다양한 곤충들이 꽃가루를 매개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현장조사에서 관찰된 곤충 기록은 총 321건으로 이 중 벌목에 대한 관찰기록은 175건에 달한다. 대상지별로 비교하면 △길동생태공원이 10목 43과 81종 142건으로 제일 높았고 △월드컵 평화의 공원이 7목 26과 50종 100건 △여의샛강생태공원이 8목 25과 43종 79건으로 나타났다. 길동생태공원과 여의샛강생태공원의 경우 ‘생태공원’이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한 화학방제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길동생태공원의 종다양성과 관찰기록이 높게 나타난 것은 이러한 영향으로 보인다. 반면 샛강생태공원의 관찰기록이 다른 대상지보다 낮게 나타난 것은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공원이 물에 잠기는 샛강생태공원의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남산은 나비야!
지난 9월 22일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벌이 활동하지 않는 야간시간대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을 확인하고자 남산공원에서 야간등화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산 야간등화조사에서 동정한 48건의 관찰기록 중 제일 많이 관찰된 것은 △나비목(11과 33종)이었으며 △딱정벌레목(5과 6종)과 △노린재목(4과 5종)이 뒤를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덧붙여 남산 야간등화조사에서 국내미기록종 나방 Mimicia pseudolibatrix를 기록하였는데, 나비목 명나방상과 명나방과 비단명나방아과 Mimicia속에 속하는 이 나방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일대에 분포하며 낙엽부엽토를 갉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야간등화채집조사를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고, 국내미기록종 나방을 기록한 것은 조사단의 과학적 성과 중 하나다.
시민과학자들이 탐사 도중 발견한 국내 미기록종 수분 매개자
벌뿐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
부들레야에 내려앉은 수분 매개자, 배추흰나비
사철나무 꽃에 매달린 수분 매개자, 붉은등우단털파리
2023년 11월 18일 오전 10시, 환경센터 2층 열린공간에서는 야생벌 시민조사단의 활동결과공유회가 진행되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에 전문가로서 함께한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이흥식 박사는 “서울에서도 보전이 잘 된 편에 속하는 세 곳을 선택하여 관찰을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곤충 중에서도 벌은 생태계에서 조절자 역할을 하는 생물군”이기에 “다양한 생물이 있을 때 벌도 잘 살 수 있다”며 “벌뿐만 아니라 모든 곤충을 아낄 수 있는 마음을 키울 것”을 참여자들에게 당부했다.
여의샛강생태공원 현장조사와 남산 야간등화조사에 함께한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야생벌 시민조사단을 통해 “꽃가루 매개 곤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꽃과 꽃에 모이는 곤충들을 관찰”한 것은 “자연이 처한 위기를 돌아보고 관심을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성민규 연구원은 이런 점에서 꽃가루 매개 곤충은 수분매개자임과 동시에 “우리가 다시 자연과 연결되고 자연이 처한 여러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자연매개자인 것” 같다며 “꽃가루 매개 곤충이 아니었다면 꽃이 피는 것도 몰랐을 줄사철나무 위에 아주 작은 꽃벌들과 뒤영벌, 풀잠자리 애벌레 등을 관찰했고, 남산 야간등화조사를 통해서는 참새만한 박각시나방이 밤하늘을 선회하고 서양등골나물에 앉아 꿀을 먹는 나방들을 함께 관찰하며 시민참여자들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에서 232건으로 가장 많은 관찰기록을 남긴 윤영옥 씨는 “이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는 재래꿀벌과 양봉꿀벌도 잘 구별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활동을 통해서 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러면서 전에는 양재천에서 보지 못하던 왕가위벌, 장미가위벌, 흰장미가위벌 같은 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되었다”는 회고를 전했다.
입주 2년차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정은영 씨는 “요즘 공원 아파트라고 해서 아파트를 굉장히 예쁘게 꾸미는데 외래종 꽃들이 많고 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꽃의 구조 때문인지 곤충을 찾아볼 수 없다”며 야생벌 시민조사단에 참여한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고 말했다.
도시를 바꾸자, 생태적으로!
남산 야간등화 조사 중인 시민과학자들
길동 생태공원 현장조사에 나선 시민과학자들
탐사 과정에서 시민조사단이 얻은 경험과 자산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성민규 연구원은 ‘공간’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꽃가루 매개 곤충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활동은 꽃가루 매개 곤충의 중요성을 인식한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워싱턴 DC를 비롯해 미국의 주요 도시에는 ‘꽃가루 매개자 거리(Pollinator street)’가 조성되고 있고, 이런 공간에서 시민들은 꽃가루 매개자를 관찰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숨 쉬는 바이오필릭시티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환경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도시민들이 원하는 자연이 형형한 공간이다. 시민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가 그 도시의 모양을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은 시민들이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야생곤충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와 자연을 연결해 줄 수 있도록.
세계 벌의 날(5월 20일)을 맞아 누하동 환경센터 회화나무 아래에서 기념 피케팅에 나선 시민과학자들
글 |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
사진제공 | 서울환경연합
지난 겨울 또 다시 200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사라졌다. 꽃가루를 매개하던 꿀벌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꽃벌과 잎벌 같은 다양한 종류의 야생벌들과 등에 같은 파리류의 곤충들, 나비와 나방, 딱정벌레 등 다양한 생물들이 야생의 수분을 매개하며 지금까지 생태계를 유지해왔다.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저마다 꽃가루를 옮겨주던 특별한 생물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개망초에 앉은 폴리네이터(수분매개자), 버들깨알바구미
꿀벌의 위기 아닌 생물다양성의 위기
1990년 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곤충 개체수의 25%가량이 감소하였고, 지난 20년간 보라매공원, 한강공원 등에서 야생벌 개체수는 90%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곤충이 사라지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도시가 개발되며 이들이 살아갈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기후변화와 더불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농업은 곤충의 먹이원이 되는 식물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네오니코티노이드 등 곤충에 치명적인 화학적 농약을 이용한 방제가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이에 노출된 곤충의 면역력이 약화되며 외래 질병에 의한 피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꿀벌의 위기가 아닌 ‘생물다양성의 위기’이다.
‘벌 볼 일 있는 사람들’의 야생벌 조사
서울환경연합과 벌볼일있는사람들, 생명다양성재단은 꽃가루 매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실천행동으로서 2023 야생벌 시민조사단 활동을 진행하였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꿀벌에 비해 조명되지 못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벌의 개체수와 서식지를 파악하여 벌 보전활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다. 31명의 시민조사단이 모여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전문가와 함께 △길동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 △월드컵 평화의 공원에서 2차례씩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남산공원에서 한 차례 야간등화조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전문가와 함께하는 공동 현장조사 뿐만 아니라 생활권 주변에서 꽃에 찾아온 곤충들을 관찰하고 네이처링 ‘유니벌스’ 미션에 기록하도록 하며 일상적인 시민과학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었다.
야생의 꽃가루 매개 곤충들
조사 결과 다양한 야생 꽃가루 매개 곤충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야생벌 시민조사의 조사결과를 취합하면 654건 11목 76과 218종에 달하는데 그중 329건(50.3%)의 관찰기록이 곤충이 꽃에 찾아온 꽃가루 매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딱정벌레도 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의 관찰기록을 살펴보면 △벌목(15과 75종 444건)에 해당하는 곤충이 제일 많았고 △파리목(12과 37종 95건) △나비목(17과 52종 38건) △딱정벌레목(13과 21종 30건) 순으로 많이 관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꽃가루 매개 상태별로는 △벌목(235건) △파리목(58건) △딱정벌레목(17건)순으로 많은 것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벌목 관찰기록을 과별로 분류하면 꿀벌과가 15종 150건으로 제일 많았고, 꼬마꽃벌과가 10종 32건, 가위벌과가 10종 1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주변의 꽃가루 매개 곤충이 꿀벌만이 아닐뿐더러 다양한 곤충들이 꽃가루를 매개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현장조사에서 관찰된 곤충 기록은 총 321건으로 이 중 벌목에 대한 관찰기록은 175건에 달한다. 대상지별로 비교하면 △길동생태공원이 10목 43과 81종 142건으로 제일 높았고 △월드컵 평화의 공원이 7목 26과 50종 100건 △여의샛강생태공원이 8목 25과 43종 79건으로 나타났다. 길동생태공원과 여의샛강생태공원의 경우 ‘생태공원’이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한 화학방제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길동생태공원의 종다양성과 관찰기록이 높게 나타난 것은 이러한 영향으로 보인다. 반면 샛강생태공원의 관찰기록이 다른 대상지보다 낮게 나타난 것은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공원이 물에 잠기는 샛강생태공원의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남산은 나비야!
지난 9월 22일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벌이 활동하지 않는 야간시간대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을 확인하고자 남산공원에서 야간등화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산 야간등화조사에서 동정한 48건의 관찰기록 중 제일 많이 관찰된 것은 △나비목(11과 33종)이었으며 △딱정벌레목(5과 6종)과 △노린재목(4과 5종)이 뒤를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덧붙여 남산 야간등화조사에서 국내미기록종 나방 Mimicia pseudolibatrix를 기록하였는데, 나비목 명나방상과 명나방과 비단명나방아과 Mimicia속에 속하는 이 나방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일대에 분포하며 낙엽부엽토를 갉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야간등화채집조사를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고, 국내미기록종 나방을 기록한 것은 조사단의 과학적 성과 중 하나다.
시민과학자들이 탐사 도중 발견한 국내 미기록종 수분 매개자
벌뿐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
부들레야에 내려앉은 수분 매개자, 배추흰나비
사철나무 꽃에 매달린 수분 매개자, 붉은등우단털파리
2023년 11월 18일 오전 10시, 환경센터 2층 열린공간에서는 야생벌 시민조사단의 활동결과공유회가 진행되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에 전문가로서 함께한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이흥식 박사는 “서울에서도 보전이 잘 된 편에 속하는 세 곳을 선택하여 관찰을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곤충 중에서도 벌은 생태계에서 조절자 역할을 하는 생물군”이기에 “다양한 생물이 있을 때 벌도 잘 살 수 있다”며 “벌뿐만 아니라 모든 곤충을 아낄 수 있는 마음을 키울 것”을 참여자들에게 당부했다.
여의샛강생태공원 현장조사와 남산 야간등화조사에 함께한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야생벌 시민조사단을 통해 “꽃가루 매개 곤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꽃과 꽃에 모이는 곤충들을 관찰”한 것은 “자연이 처한 위기를 돌아보고 관심을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성민규 연구원은 이런 점에서 꽃가루 매개 곤충은 수분매개자임과 동시에 “우리가 다시 자연과 연결되고 자연이 처한 여러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자연매개자인 것” 같다며 “꽃가루 매개 곤충이 아니었다면 꽃이 피는 것도 몰랐을 줄사철나무 위에 아주 작은 꽃벌들과 뒤영벌, 풀잠자리 애벌레 등을 관찰했고, 남산 야간등화조사를 통해서는 참새만한 박각시나방이 밤하늘을 선회하고 서양등골나물에 앉아 꿀을 먹는 나방들을 함께 관찰하며 시민참여자들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에서 232건으로 가장 많은 관찰기록을 남긴 윤영옥 씨는 “이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는 재래꿀벌과 양봉꿀벌도 잘 구별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활동을 통해서 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러면서 전에는 양재천에서 보지 못하던 왕가위벌, 장미가위벌, 흰장미가위벌 같은 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되었다”는 회고를 전했다.
입주 2년차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정은영 씨는 “요즘 공원 아파트라고 해서 아파트를 굉장히 예쁘게 꾸미는데 외래종 꽃들이 많고 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꽃의 구조 때문인지 곤충을 찾아볼 수 없다”며 야생벌 시민조사단에 참여한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고 말했다.
도시를 바꾸자, 생태적으로!
남산 야간등화 조사 중인 시민과학자들
길동 생태공원 현장조사에 나선 시민과학자들
탐사 과정에서 시민조사단이 얻은 경험과 자산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성민규 연구원은 ‘공간’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꽃가루 매개 곤충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활동은 꽃가루 매개 곤충의 중요성을 인식한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워싱턴 DC를 비롯해 미국의 주요 도시에는 ‘꽃가루 매개자 거리(Pollinator street)’가 조성되고 있고, 이런 공간에서 시민들은 꽃가루 매개자를 관찰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숨 쉬는 바이오필릭시티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환경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도시민들이 원하는 자연이 형형한 공간이다. 시민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가 그 도시의 모양을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은 시민들이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야생벌 시민조사단은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야생곤충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와 자연을 연결해 줄 수 있도록.
세계 벌의 날(5월 20일)을 맞아 누하동 환경센터 회화나무 아래에서 기념 피케팅에 나선 시민과학자들
글 |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
사진제공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