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슈가 말고 제로라벨 주세요!

2024-01-02

어느 해부턴가 음료 시장에 제로슈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로슈가 음료 출시 초반에는 기존 제품과 맛의 차이가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으나, 제품 고유의 맛을 구현하려는 기업의 노력과 당류 섭취를 줄이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제로슈가 음료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제로슈거 식품 구매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3%나 늘어났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성장이다.


생활 속 ‘오염자 부담 원칙’ 

음료 매출 1-2위 기업인 롯데칠성과 코카콜라는 라벨 분리 및 재활용에 노력하지 않아 시민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제로슈가 열풍과는 정반대로 다량의 설탕을 섭취하는 탕후루도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로콜라에서 아낀 설탕, 탕후루에서 몰아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지나친 당류 섭취가 청소년 건강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탕후루 프랜차이즈 대표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탕후루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이슈로 “탕후루 반입 금지”가 있다. 탕후루 꼬치를 들고 온 고객이 매장을 왔다 가면 바닥이 끈적해지고, 설탕 묻은 뾰족한 꼬치와 종이컵으로 인해 매장 쓰레기봉투에 구멍이 생기고, 벌레가 꼬이는 등의 불편이 따르면서 내려진 영업방침이다. 

구매한 곳에서 다 먹고 오거나, 탕후루 쓰레기를 처리하고 오지 않으면 가게 출입 자체가 금지되는, 이른바 “NO 탕후루 ZONE”의 등장은 탕후루를 소비하는 고객에게 적극적인 제재 수단으로 작동하였고, 이러한 압박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진 탕후루 업체가 탕후루 전용 쓰레기통을 고안하여 매장마다 비치하도록 이끌었다.

일련의 사례들은 “발생한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고 와야 한다.”는 외부의 요구를 기업이 수용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972년 OECD 위원회가 권고한 “오염자 부담 원칙”과 완전히 동일한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국가 간 또는 국제환경법과 같은 거창한 제도나 용어의 개입 없이도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혹은 그 장소에서) 그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것이 순리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라벨 때문에 재활용 어려워

제로슈가 음료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탕후루 쓰레기 처리 문제를 보면서 설탕과 대체당의 유해성 혹은 무해성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쓰레기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은 제로슈가가 아니라 제로라벨이 필요한 시대”라는 자각이다.

2018년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생활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다. 

우리가 무심히 버리는 쓰레기를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출발한 이 정책은 2020년 12월 25일,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또는 150세대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되거나 중앙집중식 난방을 하는 아파트에 한정하여 시작되었고 그 이듬해 같은 날에는 전국의 단독주택과 상가로 확대되었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되면서 페트병에서 라벨을 분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는데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물속에서 비중 분리가 가능한 재질의 라벨들도 있지만 수축필름의 경우는 페트와 함께 가라앉기 때문에 분리가 어렵고, 접착제가 남아서 끈적이는 통에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프로젝트팀인 “쓰레기고객센터”는 10월 16일부터 11월 14일까지 플라스틱 병입 음료를 소비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구글 설문을 진행하여 “라벨 분리 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청취하였는데 설문 결과 167건의 상품 데이터와 144건의 의견이 수집되었다.

전체 167개 건수 가운데 “손으로 뗄 수 있고 한 번에 분리되는 제품”이 73개(편리성 상), “손으로 뗄 수 있지만 한 번에 분리되지 않는 제품”이 78개(편리성 중), “손으로 떼기 어려워 도구가 필요한 제품”이 16건(편리성 하)으로 조사되었다.

“손으로 뗄 수 있지만 한 번에 분리되지 않는 제품”은 롯데칠성음료가 19%, 코카-콜라음료가 18%를 차지하였고, “손으로 떼기 어려워 도구가 필요한 경우 제품”은 코카-콜라 음료가 44%, 롯데칠성음료가 32%를 차지하였다. 이들 두 기업은 라벨 제거 후 접착제 흔적이 남거나 잔여 라벨이 남는 제품의 업체 명단에서도 상위에 랭크되었는데, 코카-콜라음료가 37%로 1위, 롯데칠성음료가 21%로 2위를 차지했다. 음료 매출 1, 2위를 다투는 기업임에도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제로라벨이 필요하다”

지난해 11월 29일 대구환경연합 자원순환프로젝트팀 ‘쓰레기고객센터’는 서울환경연합과 공동으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플라스틱 병입음료를 제조 및 판매하는 기업의 무라벨 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서울환경연합


지구 온난화와 쓰레기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포장하고 유통하고 전시하고 판매하고 소비하고 버려지는 그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방식인 일회용이 많을수록, 자원으로 재활용 가능한 것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비율이 많을수록, 온실가스 배출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우리 앞을 막아설 수밖에 없다.

2023년 11월 7일에 발표된 일회용 사용규제 철회에서 보듯이 우리 정부는 환경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실천 또는 기업의 자율이라는 미명에 맡겨두기를 좋아하는데, 위의 간단한 조사결과만 보더라도 정부가 강력한 규제정책을 입안하여 기업의 의무적 참여를 끌어내지 않는다면 개인의 실천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기업은 제품 차별화, 필수정보 전달 등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의 안전 및 알 권리 보장을 담보하는 선에서 생산 단계부터 라벨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고, 사회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는 진정한 ESG 기업이 많아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 시민들은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플라스틱 병입 음료 라벨 생산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제로슈가가 아니라 제로라벨이 필요하다”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글 | 김민조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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