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사이드는 범죄다!

2024-01-02

국제적으로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제노사이드를 빗댄 에코사이드는 생태 학살을 뜻하는 용어로 미국의 한 식물학자에 의해 시작됐다. 아서 갈스턴은 콩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콩의 성장을 촉진하는 화학물질을 발견했다. 그는 또 용량이 과할 경우 급속도로 식물의 성장을 촉진해 잎이 떨어지고 결국 식물이 고사한다는 사실 또한 발견했다. 식량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그의 연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활용되고 말았다.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당시 미군은 베트남군이 숨어있는 정글을 고사시키고 식량을 끊기 위해 베트남 밀림 지역을 중심으로 대량의 고엽제를 뿌렸다. 이 때문에 울창한 숲과 함께 베트남 생태계는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피해는 밀림을 넘어 사람에게도 이어졌고 그 피해는 장기간 지속됐다. 이같은 사실에 충격을 받은 아서 갈스턴은 1970년 워싱턴에서 열린 전쟁과 국가적 책임에 관한 회의에서 생태계의 막대한 피해와 파괴 행위를 제노사이드에 빗대 에코사이드라 규정하며 의도적인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국제조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에코사이드’를 저질렀다는 비난이 나왔고 에코사이드가 국제사회에 처음 언급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끝났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에코사이드가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수많은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에코사이드에 대한 논의와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는 50년이 넘은 지금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 에코사이드 흐름

지난해 11월 24일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는 ‘에코사이드, 전환시대 담론이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포럼을 열고 에코사이드와 관련된 국내외 논의를 현장 활동과 사법적 측면에서 들여다봤다. 

발표자로 나선 황준서 <End Ecocide Korea> 활동가는 현재 <국제에코사이드금지운동재단>을 중심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에코사이드를 처벌할 수 있도록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로마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캠페인이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은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4가지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는데 5번째 범죄로 에코사이드를 추가하자는 캠페인이다. 

<국제에코사이드금지운동재단>의 전문가그룹은 2021년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개정안에 제출할 에코사이드 법안 초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에코사이드는 자연환경에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저질러진 불법 또는 무분별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황 활동가는 “군대의 광범위한 환경파괴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여겨져 온 기업의 환경훼손 또한 범죄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미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 중 바누아투, 파나마, 벨기에, 뉴질랜드, 핀란드, 룩셈부르크 등이 지지의 뜻을 밝힌데 이어 최근 유럽의회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에코사이드란 용어조차 낯선 것이 현실이다. 김보미 사단법인 선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에코사이드의 범죄화에 대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지 않으며 사법부에서도 에코사이드에 대한 진지한 판단을 내린 판결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최근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직접행동에 대한 형사소송 항소 사건에서 에코사이드를 언급한 사례를 소개했다. “두산중공업의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생태학살에 가깝고, 이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규정하는 가장 중대한 국제범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준의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들어 피고인들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하여 한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피고인들의 에코사이드 주장에 대한 판단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피고인들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보아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소송에서 에코사이드를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며 “우리 사법부가 기후변화와 에코사이드에 대한 논의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대하며,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사법부의 역할을 다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자 변호사는 에코사이드 규범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현재 진행 중인 에코사이드 규범화에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환경 파괴 행위가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사회 경제적 이익이 환경적 피해보다 큰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생태중심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모순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에코사이드는 범죄다”

이날 참가자들은 법 개정만큼이나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황준서 활동가는 에코사이드 캠페인에 대해 “사회적 언어에 대한 지지가 많아질수록 에코사이드의 주요 주체들인 국가와 기업도 결국 일정 부분 사회적 압력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현영 변호사도 “결국 법은 사람이 만든다. 전환이 필요한 시대에 다양한 상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법이 에코사이드를 심판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이다. “에코사이드는 범죄다!” 소리가 높아질수록 법도 세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글 | 함께사는길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23 | TEL.02-735-7088 | FAX.02-735-1240
제호: ECOVIEW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등록일자 2015.09.30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