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203] 버섯의 서사와 함께 사는 길

2024-01-02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꽃처럼 소란스러운 색깔이나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버섯은 불현듯 나타나, 다행이도 내가 그곳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불확정성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 끝의 버섯』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키워드는 이런 것들이다. 엉망이 된 삶, 불확정성, 그리고 버섯……. 1945년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그 땅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바로 송이버섯이었다. 이 서사 하나만으로도 희망의 언어를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인류학자인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실재하는 버섯을 찾아 나섰고, 버섯이라는 비인간 생물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적 파괴가 진행되는 우리 세계 안에서 협력적 생존 가능성을 탐구한다.  


송이버섯은 보통 파괴된 숲에서 자라나고, 인공적인 재배가 불가능하다. 송이버섯은 척박한 토양을 분해하여 소나무에 양분을 공급하고, 나무에게서는 탄수화물을 얻는다. 매우 신기한 일이지만, 숲을 향한 인간의 무분별한 교란 역시 송이버섯의 생태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20세기 이후 미국은 산림 자원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산불을 금지하고 대규모 벌목을 감행하여 숲을 폐허로 만들었는데, 이러한 조건이 송이버섯의 생장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세계 끝의 버섯』은 이렇게 버섯의 세계에 대해서 씀으로써 우리 세계의 또 다른 생존 방식을 진술한다. “생존하기 위해 항상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생존이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가 함께 변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존재들이 협력과 오염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다양성이 만들어진다.

또한 송이버섯은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 매우 비자본주의적인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북미에서 송이버섯의 채집은 다양한 이주민들에 의해서 수행된다. 말하자면 프리랜서들이다. 이들은 기업의 신규 인력 모집, 훈련, 규율 등에 따르지 않고도 버섯을 찾아내는데, 이런 종류의 채집은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노동의 양태와는 사뭇 다르다. 한편 송이버섯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일본에서는 교환 가치만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가장 낮은 등급의 송이버섯은 마켓에서 팔리고, 가장 높은 등급은 선물로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적 가치 체제가 비자본주의적 가치 체제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 버섯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송이버섯의 생장과 그것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 혹은 자본주의를 사유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풍경은 단순화되고, 단순화된 풍경은 자산 생산 후 유기된 공간, 즉 폐허”로 변하게 된다. 도처의 폐허에서 삶은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끊임없이 배회한다. 버섯의 서사가 시작되는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원자폭탄이 터진 자리이거나 파괴된 숲의 한복판이 송이버섯의 세계였다. 그러므로 세계의 파국이 예비된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내야 할 생존의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자본의 축적이 일어나기 어려운 곳,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변두리로부터 버섯은 자라남으로써, “인간은 송이버섯을 통제할 수 없”음이 증명된다.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 길잡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폐허 이후의 생존을 도모해도 좋은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다. 

『세계 끝의 버섯』의 세계관에 따라, 어떤 세계가 파국을 맞이하는 때, 하나의 역사가 끝나는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모든 존재를 버섯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모든 가장자리를 함께 사는 길이라고 부르지 못한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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