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광고 문구 읽는 걸 좋아한다. 오늘 읽은 인테리어 회사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삭막함과 세련됨은 한 끗 차이”
상당 부분 공감한다. 내가 물건을 늘어놓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분명 사전적 의미가 다른 단어인데 인테리어라는 영역에서는 등을 맞대고 있는 느낌이다. 과하다 싶을 만큼 비어있어야 세련되어 보인다는 뜻이겠지. 나 같은 경우 세련됨은 모르겠으나 생활의 동선이 단순해지는 건 사실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이 두 단어는 과연 등을 맞대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삭막’한 수준이라고 ‘세련’된 인간은 아니다. 관계 안에서 세련미는 구현되기 어렵고 관계가 삭막한 이유에 따라 각자의 밑바닥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 보기엔 삭막하게 살고 있지만 세련된 사람이 아니고 지질하게 밑바닥을 보이며 살고 있기에 나만의 일정한 선도 없다. 나는 줄넘기 혹은 줄다리기를 하듯 관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뭔가 실수하고 ‘내가 당신의 선을 넘었다면 미안’ 그런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아갈 뿐이다.
세련됨이란 표현도 모호하다. 취향은 개인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쿨’한 상태를 세련된 인간관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쿨한 상태도 개개인이 가진 온도차 때문에 평균을 측정하기 어렵다.
조금 안다고 너무 질척대는 건 아닐까?
아는 사이에 너무 모르는 척 지내는 건 아닐까?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을 깊이 아주 오래 알고 지내고 싶다는 욕망과 관계 안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내고 싶은 욕망이 때때로 마찰음을 내며 충돌한다.
마찰음을 감지한다고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치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거니 하다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초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니 겨울나무의 잔가지들이 보인다. 저 많은 가지를 달고 나무는 근심이 없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한다. 아마도 없었으리라. 단 하나의 가지만 생각을 뻗어도 허둥대는 나에 비하면 나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계절의 변화를 경험했을 테니.
만나고 겪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나에게 말해준다.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위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 겨울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나는 광고 문구 읽는 걸 좋아한다. 오늘 읽은 인테리어 회사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삭막함과 세련됨은 한 끗 차이”
상당 부분 공감한다. 내가 물건을 늘어놓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분명 사전적 의미가 다른 단어인데 인테리어라는 영역에서는 등을 맞대고 있는 느낌이다. 과하다 싶을 만큼 비어있어야 세련되어 보인다는 뜻이겠지. 나 같은 경우 세련됨은 모르겠으나 생활의 동선이 단순해지는 건 사실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이 두 단어는 과연 등을 맞대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삭막’한 수준이라고 ‘세련’된 인간은 아니다. 관계 안에서 세련미는 구현되기 어렵고 관계가 삭막한 이유에 따라 각자의 밑바닥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 보기엔 삭막하게 살고 있지만 세련된 사람이 아니고 지질하게 밑바닥을 보이며 살고 있기에 나만의 일정한 선도 없다. 나는 줄넘기 혹은 줄다리기를 하듯 관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뭔가 실수하고 ‘내가 당신의 선을 넘었다면 미안’ 그런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아갈 뿐이다.
세련됨이란 표현도 모호하다. 취향은 개인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쿨’한 상태를 세련된 인간관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쿨한 상태도 개개인이 가진 온도차 때문에 평균을 측정하기 어렵다.
조금 안다고 너무 질척대는 건 아닐까?
아는 사이에 너무 모르는 척 지내는 건 아닐까?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을 깊이 아주 오래 알고 지내고 싶다는 욕망과 관계 안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내고 싶은 욕망이 때때로 마찰음을 내며 충돌한다.
마찰음을 감지한다고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치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거니 하다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초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니 겨울나무의 잔가지들이 보인다. 저 많은 가지를 달고 나무는 근심이 없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한다. 아마도 없었으리라. 단 하나의 가지만 생각을 뻗어도 허둥대는 나에 비하면 나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계절의 변화를 경험했을 테니.
만나고 겪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나에게 말해준다.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위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 겨울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