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살대를 위하여 150] 공학의 실패

‘원자력발전소를 방사능 폭탄으로 바꾸는 노심용융사고의 발생 확률은 10만 년에 1회이고 그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격납고(원자로 건물의 돔형 시멘트격벽) 밖으로 퍼지는 수준의 사고는 100만 년에 한번이다.’ 2011년 후쿠시마핵사고가 발생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현 한동대 총장)가 한 발언이다. 정영익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본부 본부장도 2012년 ‘국산 신형경수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권고 안전기준보다 10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원자력 산학동맹이 원자력발전소의 공학적 안전기준에 대해 일관되게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2017년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재개를 주장한 찬핵 측 논리로 되풀이됐다. 

 일본원자력위원회는 후쿠시마핵사고 발생년도인 2011년 11월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대형사고빈도는 10년에 1번’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실적분석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이른바 10만 년에 1번이라는 주장은 IAEA가 확률론적안전성분석(PSA)을 통해 제시하는 원자로 1기의 안전목표 기준이다. 결국 10만 년에 1회 사고란 목표를 사실로 둔갑시킨 사기다. 전세계 원자력발전소 상업운전 역사상 노심용융사고는 3회, 사고 원자로의 수는 그 2배인 6기였다. 노심용융까지는 아니어도 대형사고 범주에 드는 사고 횟수까지 합치면 총 9회에 이른다. 벌어진 사고 빈도가 확률적 사고 빈도를 100배나 넘는다. 

 문재인 정부는 비록 ‘핵산업 자연사’ 기획에 가까운 매우 느린 탈핵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책 방향은 확실히 탈핵의 경로를 밟아가고 있다. 이 정권의 반대편에 있는 가장 극렬한 정치세력은 이른바 태극기부대로 불린다. 이들은 2018년 12월 중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를 띄우고 서명전에 돌입했다. 태극기부대는 이미 거리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친박 플랭카드를 든 이들의 모임이 아니다. 원자력산업에 진출한 기업, 원자력 공기업, 찬핵 국회의원 등 찬핵동맹이 결합된 ‘탈핵 반대 정치연합’이다. 

 지난 1월 11일 정부의 탈핵정책을 견인해야 마땅할 여당의 중진의원인 송영길 의원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주장했다. ‘탈핵 반대 정치연합’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송 의원은 문재인 대선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튼튼한 지역구를 가진 송 의원이 2020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창출에 직접 공헌한 정권의 에너지 정책기조를 뒤집는 발언을 했을 리 없다. 그는 그 이후 대선을 고려해 이른바 에너지 전환에 보수적인 중간지대 투표층으로 자기 확대를 꾀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정치 공학적 판단이다. 정치적 신념은 역사적 정향과 일치해야 한다. 에너지 이외 부문에서는 ‘그래도 진보적!’이라고 변명할 순 없다. 탈핵은 진보의 한 부문이 아니라 진보의 방향이다! 틀린 방향으로의 선회는 그냥 공학적 이익을 좇는 전향일 뿐이다. 정치 공학의 한 실패를 본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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