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15] 보내지 못하는 편지

잘 지내나요?

보내지 못하는 편지지만 생각나서 몇 자 적어요.

요즘 동네 도서관에 들러 단편소설 한 편씩 읽고 와요.

딱 1년 정도 아침마다 단편소설과 시를 읽겠다는 목적 없는 계획을 세웠어요.

한가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수천 수백이라면 나는 대강 절반 정도 실험해 본 셈이네요. 글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기에 시작한 일인데 그냥 저냥 소일거리로 그만이네요.

혹시 저처럼 적적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겠죠?

오늘 도서관 가는 길에 문득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내가 이러려고 ○○○이 된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든다.”

지난해의 유행어였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말에 모순이 있다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꼬였을까?”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 말의 모순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더군요. 그러니까 난,

“내가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 그 많은 길을 걸었구나. 모든 게 과정이었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 걸 보니 퍽 괜찮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과정 안에서 삶의 방향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었거든요. 운이 좋았는지 아님 내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당신도 지금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죠.

모두 좋은 사람이길.

그리고 언제나 사랑하고 사랑 받길.

늘 건강하세요.

 

정유년에 옛 친구가 

 

글 ·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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