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이맘때에 너를 얻었다. 일찍이 너와 같은 물건이 여럿 있었으나 하나 같이 내 손을 쉽게 떠나 잃는 바 되었다. 더러는 취재 간 현장에 두고 오기도 하였고 더러는 달리는 차 안에 두고 잊고 내리기도 하였다. 그것들과 나의 인연이 그것뿐이라고 나는 애써 자위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그릇을 탐하였다.
너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출근하며 따뜻한 커피를 받아 오면 오전 내내 한 모금씩 홀짝일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의 그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너는 여전히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그제야 흡족하게 한 잔이 족히 남은 커피를 따라 마실 수 있었다. 보온력만큼 차가움도 곧잘 품었다. 보온·보냉력이 좋다는 것은 너와 같은 물건의 큰 덕이어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는 신통했다. 너는 내가 잠시 잃거나 잊거나 하여도 곧 다시 내 손에 돌아와 주었다. 너의 미덕은 구성이 단순한 것에도 있었다. 너는 머리는 검은 플라스틱 한 덩이였고 몸체는 스테인리스 두 겹일 뿐이었다. 머리와 몸체 사이에 고무패킹이 있었지만 나는 평소 이것을 그다지 중하다 여기지 않았었는데 그것은 오착이었다. 슬프게도 패킹이 낡아버렸다. 너는 더 이상 따뜻함도 차가움도 전처럼 오래 머금지 못했고 마침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내용물이 흘러넘쳤다. 가방 안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가방을 온통 적시기도 했다.
더 이상 너를 들고 다니기 어려워 나는 이제 너를 머리와 몸체를 분리해 배출하기로 하였다. 너는 한낱 기물일 뿐이니 네가 무슨 마음이 있어 나와의 이별을 슬퍼할 것이겠냐마는 나로서는 오래 지녀 생긴 애착이 있으니, ‘남겨진 자의 이 정을 어쩌할까(生者若爲情-조선 영조 때 사람 조태억의 挽詩, 「哭子」의 4수 4구를 빌려옴)’.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7000만 개, 연간 260억 개의 1회용 컵을 사용한다. 1회용 컵은 플라스틱(PET)과 내부가 비닐 코팅된 종이 소재로 만든다. PET는 원재료의 성질이 각기 다른 것들이 많고 종이컵도 비닐 코팅한 것들이라 재활용하려면 별도 선별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부분 사용 후 세척해 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용물이 남거나 오염된 것들은 재활용이 어렵다. 결국 소비량의 10퍼센트 정도만 재활용될 뿐이다.
현재 ‘1회용 컵 보증금제도’가 시범운영되고 있다. 본격 제도 시행은 2019년부터다. 돈으로 의식을 살 순 없다. 1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과 자연을 해치는 아름답지 않는 행동이라는 문화적 각성을 일으킬 사회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오래 쓰던 텀블러를 분리배출하면서 물건을 아끼는 마음과 자원순환에 관한 사회의식이 사실 경계 없는 하나의 ‘뜻’임을 알게 된다. 1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들자. 사실 어린이집에서 이미 배운 ‘사람과 자연을 위한 공생의 예의’이다.
5년 전 이맘때에 너를 얻었다. 일찍이 너와 같은 물건이 여럿 있었으나 하나 같이 내 손을 쉽게 떠나 잃는 바 되었다. 더러는 취재 간 현장에 두고 오기도 하였고 더러는 달리는 차 안에 두고 잊고 내리기도 하였다. 그것들과 나의 인연이 그것뿐이라고 나는 애써 자위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그릇을 탐하였다.
너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출근하며 따뜻한 커피를 받아 오면 오전 내내 한 모금씩 홀짝일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의 그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너는 여전히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그제야 흡족하게 한 잔이 족히 남은 커피를 따라 마실 수 있었다. 보온력만큼 차가움도 곧잘 품었다. 보온·보냉력이 좋다는 것은 너와 같은 물건의 큰 덕이어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는 신통했다. 너는 내가 잠시 잃거나 잊거나 하여도 곧 다시 내 손에 돌아와 주었다. 너의 미덕은 구성이 단순한 것에도 있었다. 너는 머리는 검은 플라스틱 한 덩이였고 몸체는 스테인리스 두 겹일 뿐이었다. 머리와 몸체 사이에 고무패킹이 있었지만 나는 평소 이것을 그다지 중하다 여기지 않았었는데 그것은 오착이었다. 슬프게도 패킹이 낡아버렸다. 너는 더 이상 따뜻함도 차가움도 전처럼 오래 머금지 못했고 마침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내용물이 흘러넘쳤다. 가방 안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가방을 온통 적시기도 했다.
더 이상 너를 들고 다니기 어려워 나는 이제 너를 머리와 몸체를 분리해 배출하기로 하였다. 너는 한낱 기물일 뿐이니 네가 무슨 마음이 있어 나와의 이별을 슬퍼할 것이겠냐마는 나로서는 오래 지녀 생긴 애착이 있으니, ‘남겨진 자의 이 정을 어쩌할까(生者若爲情-조선 영조 때 사람 조태억의 挽詩, 「哭子」의 4수 4구를 빌려옴)’.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7000만 개, 연간 260억 개의 1회용 컵을 사용한다. 1회용 컵은 플라스틱(PET)과 내부가 비닐 코팅된 종이 소재로 만든다. PET는 원재료의 성질이 각기 다른 것들이 많고 종이컵도 비닐 코팅한 것들이라 재활용하려면 별도 선별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부분 사용 후 세척해 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용물이 남거나 오염된 것들은 재활용이 어렵다. 결국 소비량의 10퍼센트 정도만 재활용될 뿐이다.
현재 ‘1회용 컵 보증금제도’가 시범운영되고 있다. 본격 제도 시행은 2019년부터다. 돈으로 의식을 살 순 없다. 1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과 자연을 해치는 아름답지 않는 행동이라는 문화적 각성을 일으킬 사회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오래 쓰던 텀블러를 분리배출하면서 물건을 아끼는 마음과 자원순환에 관한 사회의식이 사실 경계 없는 하나의 ‘뜻’임을 알게 된다. 1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들자. 사실 어린이집에서 이미 배운 ‘사람과 자연을 위한 공생의 예의’이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