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환경운동연합 이민호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저는 스물 네 살입니다. 제 동갑 『함께사는길』에게 발간 24주년 축하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열 살 넘어 스물 되기 전까지 제게 『함께사는길』은 분노와 공포, 그리고 아픈 기억의 편지와도 같았습니다. 새만금갯벌을 반대하는 대열 속에 초등학생이던 제가 서있었습니다. 그 갯벌의 동죽과 칠게가 불쌍해서 분노했다는 게 제 참여의 이유였습니다. 고교시절 후쿠시마의 핵발전소사고로 핵의 공포가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걸 보았습니다. 그 속에 저도 있었습니다. 저는 또 4대강사업으로 사라져간 아름다운 강들의 풍경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합니다. 『함께사는길』에 실린 기사들을 읽으며 저는 나의 분노, 나의 공포, 나의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민했습니다. 내게 ‘함께 사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가,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게 삶의 길이며 방법인 ‘함께 사는 길’과 그런 고민을 담은 글들이 있는 『함께사는길』은 같은 의미라는 것 또한 알게 됐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함께사는길』에 담긴 기사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꼭지들에 실린 ‘살아 있는 것들이 사라져간다. 우리가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과 글들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고 그게 말하자면 어린 날의 제가 받은 녹색의식화 교육쯤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던 『함께사는길』이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저도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동갑으로서 함께 성장했던 지난 24년이 고맙습니다. ‘함께’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 『함께사는길』의 스물네 해에 고맙고, 그걸 알아보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선택을 한 스물네 살의 저 자신이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환경연합의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한 명의 활동가가 되어 길거리로 나아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분들과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토론회를 조직해 참여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비극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침묵의 살인자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조직하려 온오프라인 양면에서 활동하고 뛰었습니다. AI로 1300만이 넘는 생목숨이 매장될 때 억울하고 속상해 밤마다 가슴에 술을 붓고 아침이면 붉은 눈으로 현장에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두 해를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아마도 먼 후일 저는 이 시기를 ‘분노의 시절’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겪겠지요! 싸워도 줄지 않는 환경문제와 그것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나쁜 사회구조에 질려, 그 막강한 힘에 겁먹어 ‘공포의 시절’을 지나게도 되겠지요. 지키지 못해 원죄가 되는 자연의 상실을 또 쓰리게 새기는 ‘기억의 시절’ 또한 만나게 되겠지요.
어려서 그런 시절을 겪으며 저는 나만 바라보고 살기보다 ‘함께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제는 더욱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은 걱정하는 자가 아니라 감당하며 나아가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명을 지키는 길 가는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요.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강을 복원하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대신 해와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자주 시련 속에 서겠지요. 저는 걷겠습니다. 그 길, ‘함께 사는 길’을! 우리가 다시 스물 네 해를 걸어간다면 적어도 우리는 새로운 공생의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함께사는길』의 독자이자 같은 길 가는 동행,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당신과 저, 『함께사는길』, 우리. 스물넷, 먼 길 함께 갈 청춘입니다.
글 |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미세먼지 담당 활동가
서울환경운동연합 이민호 활동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저는 스물 네 살입니다. 제 동갑 『함께사는길』에게 발간 24주년 축하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열 살 넘어 스물 되기 전까지 제게 『함께사는길』은 분노와 공포, 그리고 아픈 기억의 편지와도 같았습니다. 새만금갯벌을 반대하는 대열 속에 초등학생이던 제가 서있었습니다. 그 갯벌의 동죽과 칠게가 불쌍해서 분노했다는 게 제 참여의 이유였습니다. 고교시절 후쿠시마의 핵발전소사고로 핵의 공포가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걸 보았습니다. 그 속에 저도 있었습니다. 저는 또 4대강사업으로 사라져간 아름다운 강들의 풍경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합니다. 『함께사는길』에 실린 기사들을 읽으며 저는 나의 분노, 나의 공포, 나의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민했습니다. 내게 ‘함께 사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가,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게 삶의 길이며 방법인 ‘함께 사는 길’과 그런 고민을 담은 글들이 있는 『함께사는길』은 같은 의미라는 것 또한 알게 됐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함께사는길』에 담긴 기사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꼭지들에 실린 ‘살아 있는 것들이 사라져간다. 우리가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과 글들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고 그게 말하자면 어린 날의 제가 받은 녹색의식화 교육쯤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던 『함께사는길』이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저도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동갑으로서 함께 성장했던 지난 24년이 고맙습니다. ‘함께’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 『함께사는길』의 스물네 해에 고맙고, 그걸 알아보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선택을 한 스물네 살의 저 자신이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환경연합의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한 명의 활동가가 되어 길거리로 나아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분들과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토론회를 조직해 참여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비극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침묵의 살인자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조직하려 온오프라인 양면에서 활동하고 뛰었습니다. AI로 1300만이 넘는 생목숨이 매장될 때 억울하고 속상해 밤마다 가슴에 술을 붓고 아침이면 붉은 눈으로 현장에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두 해를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아마도 먼 후일 저는 이 시기를 ‘분노의 시절’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겪겠지요! 싸워도 줄지 않는 환경문제와 그것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나쁜 사회구조에 질려, 그 막강한 힘에 겁먹어 ‘공포의 시절’을 지나게도 되겠지요. 지키지 못해 원죄가 되는 자연의 상실을 또 쓰리게 새기는 ‘기억의 시절’ 또한 만나게 되겠지요.
어려서 그런 시절을 겪으며 저는 나만 바라보고 살기보다 ‘함께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제는 더욱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은 걱정하는 자가 아니라 감당하며 나아가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명을 지키는 길 가는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요.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강을 복원하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대신 해와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자주 시련 속에 서겠지요. 저는 걷겠습니다. 그 길, ‘함께 사는 길’을! 우리가 다시 스물 네 해를 걸어간다면 적어도 우리는 새로운 공생의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함께사는길』의 독자이자 같은 길 가는 동행,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당신과 저, 『함께사는길』, 우리. 스물넷, 먼 길 함께 갈 청춘입니다.
글 |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미세먼지 담당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