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125]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에게 보내는 레드카드

마이클 만, 톰 톨스 지음/ 정태영 옮김, 미래인


“과학자들이 합의하는 대로 따르겠다.” 정치인들의 흔한 수사다. 그리고 매우 ‘미끄러운’ 수사다. 이를 테면, 과학자들이 100퍼센트 의견 일치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자신이 듣고 싶은 극소수의 의견을 누군가라도 제시하고 나서면 그걸 자신의 유리한 근거로 삼아 버린다. 어쨌든 극소수의 의견 역시 과학이니까!

“예를 들어, 과거 10~20년 사이에 특정한 몇 해의 기온만을 고르고 골라서 지구온난화가 ‘멈추었다’는 주장을 개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련의 흐름이 시작된 첫해만을 선별해서 아전인수 식으로 논리를 편다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과학계에서 그런 멈춤이 ‘가짜 멈춤’으로 통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기후변화 부정론자 스콧 프루잇을 환경보호청의 수장으로 세우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버린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는 식의 한줄 평가만큼 기운을 빼는 얘기가 또 있는가. 일부일지언정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들도 어느새 점차 설자리를 잃고 만다. 아직은 속단할 수 없는 단계라는 식의 말장난은 불확실성의 늪으로 대중들을 몰고 가며,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그 혼란의 스케일만큼 무너진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히는 대목은 사실상 ‘기후변화’라기보다는 ‘누가’, ‘왜’에 관한 부분이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현실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설왕설래가 많은 것에 대해서 저자 마이클 만은 단호하게 말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이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가리키는 (화석연료를 그만 태우는) 해결책을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 불필요하다는 아젠다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대규모로 진행 중인 허위정보 유포작전 때문이다.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압도적인 과학적 합의와 맞닥뜨릴 때마다 우습지도 않은 언어 곡예를 일삼는다.” 

기후변화의 맥락에서는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4대강사업을 시작할 때도, 두꺼운 녹초 층이 강을 숨 막히게 만든 상황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우습지도 않은 언어 곡예’가 어지럽게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극소수 환경학자들의 의견들을 근거로 삼은 아무 말 대잔치는 4대강사업을 반대하던 이들의 상식적인 언어를 무력하게 만들어왔다. 여전히 4대강사업으로 홍수를 예방할 수 있다거나 농업용수 공급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주장들은 공공연히 돌아다닌다. 한숨만 나는 일인데, 정치와 자본이 혼탁하게 뒤섞이고, 거기에 함께 장단을 맞춘 환경과학자들이 빚어낸 가장 황당하고 참혹한 재앙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대목들이 있다. 가령, 이런 것.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은 자연을 숭배하는 광신도라고 비난당했으며, 전 세계를 말라리아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앨 고어는 몸무게, 전기요금, 일상적인 사고와 같은 소재들로도 온갖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 혹은 회의적 환경론자들은 ‘에너지 빈곤’이라는 신개념을 들고 나와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고 매우 유효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개발도상국가가 처한 에너지 빈곤을 해결할 가장 유효한 수단이 바로 화석연료라는 주장이다. 대규모 발전시설과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전선을 개발도상국에 설치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거대한 집단이 가난을 걱정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대목들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전장에 있다. “우리에겐 주어진 임무가 있다. 보존해야 하는 바다가 있고, 보호해야 하는 열대림이 있다. 지켜야 하는 농경지와 해변이 있다. 수호자가 되어줄 무수한 생명체들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공동체가 있다.” 혹은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야 할 어떤 집에 위태롭게 서 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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