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귤은 여름귤이다, 제주도 할망들은 ‘나쓰미깡’이라고 부른다. 땀이 쪼르르 흐르는 때가 오면 주먹보다 크고 단단한 귤이 노랗게 열린다. 달콤새콤한 감귤과 달리 씁쓰레하게 신 맛 때문에 생과육을 입에 넣으면 양쪽 눈이 차례로 감긴다. 귤껍질도 두꺼워 칼집을 내지 않은 채 맨손으로는 깔 수가 없다. 제주에 내려와 두 해쯤은 마당에 열린 이 하귤의 쓸모를 알지 못해 해마다 그저 관상용으로만 두고 보았다. 그러다가 몇몇 지인들의 폭풍 같은 잔소리 덕에 이걸 과일청으로 만들어 두었다가 시원한 음료로 마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해는 동네 언니들과 모다들엉 몇 병의 하귤청을 만들었다.
“아이들 주잰 하나하나 그냥 옛날부터 심엉 먹었던 건디…. 그게 토종이랜 귀헌 거랜 허난 반갑다. 우리 아이덜은 농사 안 지으난 죽으민 어실거여. 경해도 누군가는 나 씨 가져강 키와 줄 테쥬.”
하귤의 토종씨앗을 보유하고 있는 강병출 할머니가 『제주도 우영엔 토종이 산다』에서 밝힌 이야기다. 아이들을 주려고 심었는데 그게 귀한 거라니 더 없이 좋고, 그 아이들은 이제 농사를 짓지 않으니, 여성농민회에 씨앗을 맡기셨단다. 뜬금없이 들릴 테지만, 나는 울컥했다. 누군가는 나 씨 가져강 키와 줄 테쥬, 라니….
“까맣게 그을린 벽체, 가마솥이 걸려 있는 세 개의 아궁이, 대나무 채반, 키, 솔박 등 낡고 닳고 손때 묻은 부엌 살림살이들이 매우 탐나는 이 댁은 집도 토종이다! 새로 지은 본채만 빼면 뒤편의 옛집과 창고는 옛날 그대로였다. 집 뒤꼍 우영에는 100년도 넘은 토종 감나무가 굳건히 서 있고, 그 아래는 토종 미나리가 자라고 있었다. 첫 조사 갔던 날 몸이 많이 좋지 않으셨던 어르신이 두 달 쯤 지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게 되었다. 부모님께 대물림 받은 마늘을 40년 이상, 이웃에게 얻은 쪽파를 20년, 100년이 넘은 토종 감나무와 그 아래 미나리를 50년 동안이나 길렀다. 어르신과 수십 년을 함께 한 토종 작물들이 어떻게 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장면 또한 한 번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좀 덜 뜬금없지 않나 싶다.
2012년 7월부터 다섯 달 동안 제주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토종씨앗 보유자를 찾아내고 씨앗을 수집한 기록이 담긴 이 책은, 말하자면 씨앗 보고서쯤이 될 텐데 매우 정서적으로 읽히는 장면들이 있다. 스르륵 스르륵 책장을 넘기면서 읽고 덮어 두었던 이 책을 몇 번 더 뒤적뒤적 하면서 마치 소설 읽듯 읽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판단컨대, 씨앗을 건네던 이들이 무심히 만들어온 생활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종씨앗을 보유한 이들의 90퍼센트 이상이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토종씨앗은 개량종 씨앗에 비해서 돈은 안 되고 손은 많이 간다. 밭에다가 무언가를 심고 가꾸고 먹고, 보존하고, 물려주는 일상적이고 번거로운 모든 종류의 행위들이 역사다. 대목대목 울컥했던 이유다.
“늙은이들은 어떵어떵 허여도 집구석에 옛날 씨 모당 나두주. 나도 어른덜 주는 씨로 농사지었주. 그땐 장에 강 사오는 거 꿈도 못꿨주. 조 끝디서 빌어당 썽이네 그해 농사지엉 거두어, 혼말 두말 종자 때 주었주. 그때가 참 좋았주게. 지금은 돈 어시믄 농사 못 지엉 먹엉 살커라. 농약방에 강 씨도 사고 농약도 사고 해야 되는디. 나나 놈이나 옛날 농사 거추룩 지으멍 살민 친환경이고 토종이랜 골을 필요가 없쥬. 이추룩 고생하멍 초지는 것 보난 아쉽다 아쉬워.”
늙은이들은 어떻게든 집에 옛날 씨를 모아 둔다. 나도 어른들께서 주시는 씨앗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때는 시장에서 사오는 일은 꿈도 못 꾸었다. 근처에서 빌려다 쓰고 그해 농사 짓고 거두어들여 종자를 주었다.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돈 없이는 농사 지어 살지 못한다. 농약방에 가서 씨도 사고 농약도 사야 하는데.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옛날처럼 농사 지어서 살면 친환경이니 토종이니 애써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렇게 고생하며 찾아다니는 걸 보니 아쉽고 또 아쉽다. 지금, 이곳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좋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하귤은 여름귤이다, 제주도 할망들은 ‘나쓰미깡’이라고 부른다. 땀이 쪼르르 흐르는 때가 오면 주먹보다 크고 단단한 귤이 노랗게 열린다. 달콤새콤한 감귤과 달리 씁쓰레하게 신 맛 때문에 생과육을 입에 넣으면 양쪽 눈이 차례로 감긴다. 귤껍질도 두꺼워 칼집을 내지 않은 채 맨손으로는 깔 수가 없다. 제주에 내려와 두 해쯤은 마당에 열린 이 하귤의 쓸모를 알지 못해 해마다 그저 관상용으로만 두고 보았다. 그러다가 몇몇 지인들의 폭풍 같은 잔소리 덕에 이걸 과일청으로 만들어 두었다가 시원한 음료로 마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해는 동네 언니들과 모다들엉 몇 병의 하귤청을 만들었다.
“아이들 주잰 하나하나 그냥 옛날부터 심엉 먹었던 건디…. 그게 토종이랜 귀헌 거랜 허난 반갑다. 우리 아이덜은 농사 안 지으난 죽으민 어실거여. 경해도 누군가는 나 씨 가져강 키와 줄 테쥬.”
하귤의 토종씨앗을 보유하고 있는 강병출 할머니가 『제주도 우영엔 토종이 산다』에서 밝힌 이야기다. 아이들을 주려고 심었는데 그게 귀한 거라니 더 없이 좋고, 그 아이들은 이제 농사를 짓지 않으니, 여성농민회에 씨앗을 맡기셨단다. 뜬금없이 들릴 테지만, 나는 울컥했다. 누군가는 나 씨 가져강 키와 줄 테쥬, 라니….
“까맣게 그을린 벽체, 가마솥이 걸려 있는 세 개의 아궁이, 대나무 채반, 키, 솔박 등 낡고 닳고 손때 묻은 부엌 살림살이들이 매우 탐나는 이 댁은 집도 토종이다! 새로 지은 본채만 빼면 뒤편의 옛집과 창고는 옛날 그대로였다. 집 뒤꼍 우영에는 100년도 넘은 토종 감나무가 굳건히 서 있고, 그 아래는 토종 미나리가 자라고 있었다. 첫 조사 갔던 날 몸이 많이 좋지 않으셨던 어르신이 두 달 쯤 지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게 되었다. 부모님께 대물림 받은 마늘을 40년 이상, 이웃에게 얻은 쪽파를 20년, 100년이 넘은 토종 감나무와 그 아래 미나리를 50년 동안이나 길렀다. 어르신과 수십 년을 함께 한 토종 작물들이 어떻게 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장면 또한 한 번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좀 덜 뜬금없지 않나 싶다.
2012년 7월부터 다섯 달 동안 제주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토종씨앗 보유자를 찾아내고 씨앗을 수집한 기록이 담긴 이 책은, 말하자면 씨앗 보고서쯤이 될 텐데 매우 정서적으로 읽히는 장면들이 있다. 스르륵 스르륵 책장을 넘기면서 읽고 덮어 두었던 이 책을 몇 번 더 뒤적뒤적 하면서 마치 소설 읽듯 읽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판단컨대, 씨앗을 건네던 이들이 무심히 만들어온 생활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종씨앗을 보유한 이들의 90퍼센트 이상이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토종씨앗은 개량종 씨앗에 비해서 돈은 안 되고 손은 많이 간다. 밭에다가 무언가를 심고 가꾸고 먹고, 보존하고, 물려주는 일상적이고 번거로운 모든 종류의 행위들이 역사다. 대목대목 울컥했던 이유다.
“늙은이들은 어떵어떵 허여도 집구석에 옛날 씨 모당 나두주. 나도 어른덜 주는 씨로 농사지었주. 그땐 장에 강 사오는 거 꿈도 못꿨주. 조 끝디서 빌어당 썽이네 그해 농사지엉 거두어, 혼말 두말 종자 때 주었주. 그때가 참 좋았주게. 지금은 돈 어시믄 농사 못 지엉 먹엉 살커라. 농약방에 강 씨도 사고 농약도 사고 해야 되는디. 나나 놈이나 옛날 농사 거추룩 지으멍 살민 친환경이고 토종이랜 골을 필요가 없쥬. 이추룩 고생하멍 초지는 것 보난 아쉽다 아쉬워.”
늙은이들은 어떻게든 집에 옛날 씨를 모아 둔다. 나도 어른들께서 주시는 씨앗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때는 시장에서 사오는 일은 꿈도 못 꾸었다. 근처에서 빌려다 쓰고 그해 농사 짓고 거두어들여 종자를 주었다.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돈 없이는 농사 지어 살지 못한다. 농약방에 가서 씨도 사고 농약도 사야 하는데.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옛날처럼 농사 지어서 살면 친환경이니 토종이니 애써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렇게 고생하며 찾아다니는 걸 보니 아쉽고 또 아쉽다. 지금, 이곳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좋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