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르겐 로이스, 코지만 단노리처 지음, 류동수 옮김, 1만6000원
며칠째 집안 창고에 파묻혀 오래된 짐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다시 살아도 미니멀리스트로는 살 수가 없을 테지만, 사계절이 두 바퀴를 돌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면 버리는 게 옳다는 게 나의 앙상한 ‘버리기 기준’이다. 그 기준에 맞추어 이것저것 버릴 것들과 보관할 것들을 각기 분류한다. 물론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 몇 가지 예외의 품목들도 있다. 언젠가 열어보면 추억이 되었든 기억이 되었든 아무튼 과거의 어떤 시간을 되살려 줄 것 같은 노후한 전자기기들이 그렇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여러 대 쌓여 있는 박스, 구형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용 오디오 기기 같은 것들 앞에서 나는 이번에도 오래 갈팡질팡 했다. 사실 이것들을 살 때는 더 진땀이 났을 것이다. 사고 싶은 물건은 언제나 나의 경제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하는 비장한 다짐은 “오래 오래 쓰겠다!”는 것이다. 그 다짐은 사실상 순진한 변명 같은 것에 불과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물건은, 특히 전자제품은 출시된 그 시점이 가장 아름답다. 기능적으로든 마케팅적으로든 말이다. “수치로 표시되는 더 나은 성능값을 지닌 모든 후속모델들은 결과적으로 그 이전 모델의 즉각적인 엔지니어링 기술면에서의 노후화를 야기”한다. 그것의 일상화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오락용 전자제품 부문에서는 평균적인 제품 수명주기가 전구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아졌다. 어떤 제품의 유지기간을 인위적으로 짧게 해도 때로는 그것이 고객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객이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기기를 스스로 못 쓰게 되기 전에 이미 후속모델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물건이 물건을 대체하고 소비가 소비를 연쇄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성장이라고 말하며,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솔깃해 한다. “성장은 문제가 아니라 해법입니다. 왜냐하면 성장이 환경보호의 진보로 나아가는 열쇠며 청정기술의 투자를 위한 필요 자원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했던 연설이다. 모든 선진국의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었으며, 더 넓게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의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 지배하는 견해에 따르면 그 어떤 방법도 성장을 비켜나가지는 못한다. 어쩌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도 성장이 생겨날지 모른다. 혹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치창출, 즉 경제성장은 자연의 사용과 오염 배출이라는 짐으로부터 분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면서도 원자재와 에너지는 더 적게 쓰고 쓰레기도 더 적게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멋지게 들린다. 문제는 다만, 그게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성장, 어쩌면 그것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은 어쩌면 신의 영역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꽃 한 송이의 성장은 고작 몇 주다. 어린아이는 스무 해가 지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보이는 성장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는 것은 세계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따름이다. 스위스의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빈스방거는 경제성장이라는 불가침의 신조와 작별하기를 권한다. “국민생산의 ‘영원한’ 성장은 더 이상 목표일 수 없다. 오히려 오늘날 및 미래에 점점 더 관건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세계의 물질적 한계를 인정한 가운데 정신과 판타지의 창조적 능력에 더 많은 여지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둔 자리 앞에 앉아서 쩔쩔매고 있는 와중에 나는 어쩌면 새로운 기준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목록들은 매우 꼼꼼해야 할 텐데,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들을 이렇게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물건들을 사야 하는가?”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위르겐 로이스, 코지만 단노리처 지음, 류동수 옮김, 1만6000원
며칠째 집안 창고에 파묻혀 오래된 짐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다시 살아도 미니멀리스트로는 살 수가 없을 테지만, 사계절이 두 바퀴를 돌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면 버리는 게 옳다는 게 나의 앙상한 ‘버리기 기준’이다. 그 기준에 맞추어 이것저것 버릴 것들과 보관할 것들을 각기 분류한다. 물론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 몇 가지 예외의 품목들도 있다. 언젠가 열어보면 추억이 되었든 기억이 되었든 아무튼 과거의 어떤 시간을 되살려 줄 것 같은 노후한 전자기기들이 그렇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여러 대 쌓여 있는 박스, 구형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용 오디오 기기 같은 것들 앞에서 나는 이번에도 오래 갈팡질팡 했다. 사실 이것들을 살 때는 더 진땀이 났을 것이다. 사고 싶은 물건은 언제나 나의 경제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하는 비장한 다짐은 “오래 오래 쓰겠다!”는 것이다. 그 다짐은 사실상 순진한 변명 같은 것에 불과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물건은, 특히 전자제품은 출시된 그 시점이 가장 아름답다. 기능적으로든 마케팅적으로든 말이다. “수치로 표시되는 더 나은 성능값을 지닌 모든 후속모델들은 결과적으로 그 이전 모델의 즉각적인 엔지니어링 기술면에서의 노후화를 야기”한다. 그것의 일상화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오락용 전자제품 부문에서는 평균적인 제품 수명주기가 전구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아졌다. 어떤 제품의 유지기간을 인위적으로 짧게 해도 때로는 그것이 고객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객이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기기를 스스로 못 쓰게 되기 전에 이미 후속모델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물건이 물건을 대체하고 소비가 소비를 연쇄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성장이라고 말하며,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솔깃해 한다. “성장은 문제가 아니라 해법입니다. 왜냐하면 성장이 환경보호의 진보로 나아가는 열쇠며 청정기술의 투자를 위한 필요 자원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했던 연설이다. 모든 선진국의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었으며, 더 넓게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의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 지배하는 견해에 따르면 그 어떤 방법도 성장을 비켜나가지는 못한다. 어쩌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도 성장이 생겨날지 모른다. 혹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치창출, 즉 경제성장은 자연의 사용과 오염 배출이라는 짐으로부터 분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면서도 원자재와 에너지는 더 적게 쓰고 쓰레기도 더 적게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멋지게 들린다. 문제는 다만, 그게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성장, 어쩌면 그것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은 어쩌면 신의 영역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꽃 한 송이의 성장은 고작 몇 주다. 어린아이는 스무 해가 지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보이는 성장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는 것은 세계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따름이다. 스위스의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빈스방거는 경제성장이라는 불가침의 신조와 작별하기를 권한다. “국민생산의 ‘영원한’ 성장은 더 이상 목표일 수 없다. 오히려 오늘날 및 미래에 점점 더 관건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세계의 물질적 한계를 인정한 가운데 정신과 판타지의 창조적 능력에 더 많은 여지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둔 자리 앞에 앉아서 쩔쩔매고 있는 와중에 나는 어쩌면 새로운 기준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목록들은 매우 꼼꼼해야 할 텐데,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들을 이렇게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물건들을 사야 하는가?”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