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른해질 무렵 동네를 어슬렁거리다보면 어제 보았던 풍경이 오늘은 조금 달라져 보일 때가 있다.
슈퍼 아줌마의 머리 모양이 달라져 있거나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었거나 나뭇잎의 색이 어제보다 조금 짙어졌다거나 하는 소소한 변화들을 보게 된다.
유독 유심히 보는 장소가 있는데 동네에 하나뿐인 동물병원이 그중 하나다. 이 동물병원은 구조된 유기견들이 보호소로 보내지기 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어느 날, 산책길에 고양이 간식을 사러 동물병원에 들렀을 때 일이다. 원장선생님께서 카운터에 앉아 야구배트를 닦고 계셨다. 선생님에게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야구경기를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야구배트를 닦고 있는 원장선생님의 발밑으로 작고 노란 털 뭉치가 굴러다니기에 자세히 보니 작은 강아지 한 마리였다. 복슬복슬한 털때문에 눈코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말 그대로 털 뭉치로 보였던 것이다.
이 강아지는 앞다리로 바닥을 밀듯이 걸었고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뒷다리가 한 쪽 없어요. 눈도 한 쪽 안보여요.”
선생님 말씀에 놀라서 다시 보니 뒷다리 정강이 밑으로 다리가 없었고 한쪽 눈도 안구가 척출된 상태였다. 나는 성대 제거수술로 제대로 짓지도 못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원장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누군가가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동물병원 앞에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 아이 기르실 거예요?”
내가 놀라 물으니 원장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떡이셨다.
추운 날 새끼를 낳으러 들어왔다가 아예 눌러 앉은 얼룩고양이와 산에 버려졌던 늙고 병든 하얀 강아지 그리고 봉다리에 담겨 버려진 봉다리까지.
선생님은 다리가 불편한 봉다리를 위해 유일한 취미였던 주말야구를 그만두셨다고 한다.
12월을 앞둔 지금, 책임을 다하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글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