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는 게 차일피일 미루느라 봄 배웅 대청소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냉장고 정리를 하겠다고 작심을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쩍 벌어졌다. 어처구니가 없는 주체도 나 자신, 그 대상도 나 자신. 냉장고 저 안쪽에 깊숙하게 처박혀 있던 것들, 냉장고 아래 칸에 비좁게 비집고 들어서 있는 것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낯선 소스들, 1+1 행사에 이게 원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집어왔으나 한 봉만 간신히 먹어 다른 한 봉은 고스란히 남은 냉동식품, 그것들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냉동고에 있는 것들은 절반을 버린 것 같다. 심지어 언제 얼려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것은 쿡방의 스타쉐프를 흉내내느라 샀고, 어떤 것들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산 것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이미 살 때부터 꼭 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싸니까 쟁여두고 먹자고 했던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잘 동여매서 분리수거 하는 동안의 심정은, 이제 정신 차리고 잘 사야지! 사실 1+1 상품이 함정이 무엇인지, 파격 세일 제품들 뒤에서 누구의 등골이 휘는지 사실은 모르지 않는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감사세일 상품이 참 많기도 하더라.
“냉장고의 문제점은, 소비자 개인의 선택지를 무한한 것처럼 확장시킨다는 점에 있다. 냉장고의 용량과 크기가 소비의 규모를 결정할 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구분을 완전히 망각하는 저장 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냉장고를 잘 관리하려 해도 맞벌이와 육아, 잦은 잔업과 야근에 지친 가족들이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방치되기 일쑤라는 점이다.”
내 얘기다. 우리 집 냉장고 얘기다. 갈팡질팡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아침부터 끙끙 댄 냉장고 비우기는 온종일 프로젝트였지만, 지금 당장 마트에 출동하면 한 시간 안에 냉장고를 빈틈없이 채워 넣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비어있는 냉장고를 빈 채로 두는 것. ‘가능하면’ 유지해 볼 테지만, 함부로 ‘도전’을 외치지 못하겠다.
카트 안에 담기는 것들은 대부분 ‘이 정도는 우리 가족한테 꼭 필요하지.’,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오늘은 운이 좋군. 할인행사에 제대로 걸렸네! 행운 두 팩!’ 이런 것들이다. 말하자면 나는 물건들이 아니라 쾌감을 고른다. ‘비어 있는 냉장고’ 안에는 삶의 원칙과 철학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나는 어느새 공간을 넓게 활용했다는 최신형 냉장고가 내년쯤 가격인하를 한다고 하면 그 앞에서 이모저모 뜯어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냉장고는 이미 십년하고도 두세 해가 훌쩍 넘었으니까.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어디 동네 마트뿐이던가. 나는 이미 삼 년째 블랙프라이데이를 위한 쇼핑 목록을 만들며 살고 있다. 클릭과 동시에 엄청난 할인이 주는 짜릿함, 현명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만족감, 이걸 몰랐을 시절에는 얼마나 바가지를 쓰는 멍청한 소비를 했던가 하는 자책, 블랙프라이데이는 그야말로 축제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내 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제국이 허용하는 달콤하고 유혹적인” “예속된 사람들에게 허용하는 방탕의 의례”로서의 카니발리즘에 가까우며, “한 해 동안 벌었던 것의 상당부분을 선물로 내놓는 증여의 행렬”이자 그 증여와 선물로 공동체가 풍요로워지며 이웃과 함께 나누는 포틀레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내 입은 공동체와 함께 살기에 대해서 말하고, 내 손은 마트 진열대에 놓인 감사세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닿는다.
냉장고와 마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저장과 폐기의 관계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짝패 키워드 앞에서 나는 변명이 많고 구차한 소비의 신민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에 대한 끝없는 변명마저 냉장고에 넣고 얼려버릴 기세의 구차함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는 게 차일피일 미루느라 봄 배웅 대청소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냉장고 정리를 하겠다고 작심을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쩍 벌어졌다. 어처구니가 없는 주체도 나 자신, 그 대상도 나 자신. 냉장고 저 안쪽에 깊숙하게 처박혀 있던 것들, 냉장고 아래 칸에 비좁게 비집고 들어서 있는 것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낯선 소스들, 1+1 행사에 이게 원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집어왔으나 한 봉만 간신히 먹어 다른 한 봉은 고스란히 남은 냉동식품, 그것들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냉동고에 있는 것들은 절반을 버린 것 같다. 심지어 언제 얼려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것은 쿡방의 스타쉐프를 흉내내느라 샀고, 어떤 것들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산 것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이미 살 때부터 꼭 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싸니까 쟁여두고 먹자고 했던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잘 동여매서 분리수거 하는 동안의 심정은, 이제 정신 차리고 잘 사야지! 사실 1+1 상품이 함정이 무엇인지, 파격 세일 제품들 뒤에서 누구의 등골이 휘는지 사실은 모르지 않는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감사세일 상품이 참 많기도 하더라.
“냉장고의 문제점은, 소비자 개인의 선택지를 무한한 것처럼 확장시킨다는 점에 있다. 냉장고의 용량과 크기가 소비의 규모를 결정할 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구분을 완전히 망각하는 저장 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냉장고를 잘 관리하려 해도 맞벌이와 육아, 잦은 잔업과 야근에 지친 가족들이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방치되기 일쑤라는 점이다.”
내 얘기다. 우리 집 냉장고 얘기다. 갈팡질팡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아침부터 끙끙 댄 냉장고 비우기는 온종일 프로젝트였지만, 지금 당장 마트에 출동하면 한 시간 안에 냉장고를 빈틈없이 채워 넣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비어있는 냉장고를 빈 채로 두는 것. ‘가능하면’ 유지해 볼 테지만, 함부로 ‘도전’을 외치지 못하겠다.
카트 안에 담기는 것들은 대부분 ‘이 정도는 우리 가족한테 꼭 필요하지.’,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오늘은 운이 좋군. 할인행사에 제대로 걸렸네! 행운 두 팩!’ 이런 것들이다. 말하자면 나는 물건들이 아니라 쾌감을 고른다. ‘비어 있는 냉장고’ 안에는 삶의 원칙과 철학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나는 어느새 공간을 넓게 활용했다는 최신형 냉장고가 내년쯤 가격인하를 한다고 하면 그 앞에서 이모저모 뜯어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냉장고는 이미 십년하고도 두세 해가 훌쩍 넘었으니까.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어디 동네 마트뿐이던가. 나는 이미 삼 년째 블랙프라이데이를 위한 쇼핑 목록을 만들며 살고 있다. 클릭과 동시에 엄청난 할인이 주는 짜릿함, 현명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만족감, 이걸 몰랐을 시절에는 얼마나 바가지를 쓰는 멍청한 소비를 했던가 하는 자책, 블랙프라이데이는 그야말로 축제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내 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제국이 허용하는 달콤하고 유혹적인” “예속된 사람들에게 허용하는 방탕의 의례”로서의 카니발리즘에 가까우며, “한 해 동안 벌었던 것의 상당부분을 선물로 내놓는 증여의 행렬”이자 그 증여와 선물로 공동체가 풍요로워지며 이웃과 함께 나누는 포틀레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내 입은 공동체와 함께 살기에 대해서 말하고, 내 손은 마트 진열대에 놓인 감사세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닿는다.
냉장고와 마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저장과 폐기의 관계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짝패 키워드 앞에서 나는 변명이 많고 구차한 소비의 신민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에 대한 끝없는 변명마저 냉장고에 넣고 얼려버릴 기세의 구차함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